言/오래묵을詩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와카(단가)들

oldhabit 2009. 3. 2. 22:10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와카들

 


동해바다의 자그마한 갯바위 하얀 백사장

나는 눈물에 젖어

게와 벗하였도다


새로 산 잉크 병마개 열고 나니

신선한 냄새

주린 뱃속 스미어 슬픔 자아내누나


내 굶주리던 어느 날

야윈 꼬리 흔들며

배고파 나 바라보는 개 얼굴 더 좋구나


책 사고 싶어, 책을 사고 싶어서,

떼 쓸 생각은 아니지만,

처에게 말해 보네.


갓 출판된 책 서구판 원서 책장

향기 맡으니

오직 책 더 사고파 돈 생각 절로 나네


왠지 모르게,

오늘 아침 마음이, 조금이나마 밝아진 듯 하구나.

손톱을 깎아 보네.


너무도 파란

구슬픔의 옥구슬 베개 삼고서

솔잎 스치는 소리를 밤새워 듣는구나


무거운 짐을 내려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네,

병원의 침대에서 깊은 잠들었을 때.


슬프게도,

병이 낫기를 바라지 않는 이상한 마음 나에게 있네.

이 무슨 마음인가.


새로운 몸을 가지고 싶다 생각했네.

수술로 생긴 상처

자욱을 쓰다듬네.


너의 부모도,

부모의 부모도 닮지 말아라

이렇게 아버지는 생각한단다, 아가야.


사람이 모두 집을 가진다는 슬픔이여

무덤에 들어가듯

돌아가서 잠자네


불빛조차 없는 방에 나홀로

아버지와 어머니

벽에서 지팡이 짚고 나오네


차마저 끊고는,

나의 회복을 기원하는 어머니

오늘 또 무언가 화나셨네.


장난하듯이 엄마를 업어 보니

너무 가벼워 참을 수 없는 눈물

세 걸음 못 걸었네


나를 의지해 따라 나선

아는 이 한 없는

벽촌 살림 꾸리는 어머니와 아내여


친구가 모두 나보다 훌륭하게 보이는 날은

꽃 사들고 돌아와

아내와 즐겼노라


낮잠을 자는 아이의 베개맡에

인형을 사와 살며시 놓아두고,

혼자서 즐기누나.


고향 마을의 정거장 앞 대로변의

개울가에 있던

호두나무 아래서 조약돌 주웠었네


문득 느꼈네

고향에 있으면서 매일 들었던 정다운 참새 소리

삼년 듣지 못함을

 

풀밭에 누워

아무 생각이 없네

내 이마에 똥 싸고 새는 하늘 즐기네

 

왠지 모르게 기차를 타고 싶은 생각 간절해

기차를 내렸을 때

갈 곳도 없으면서

 

길거리에서 큰 개가 늘어지게 하품을 한다.

나도 따라 해 본다

대단히 부러워서

 

일을 하여도

일을 해도 여전히 고달픈 살림

물끄러미 손바닥 보고 또 보고 있네.

 

서글프게도

머릿속 깊은 곳에 절벽이 있어

날마다 흙더미가 무너져 내리는 듯

 

서글퍼져서

언덕에 올라 보면

이름 모를 새 날아와 쪼아 먹네 빨간 장미 열매를

 

고향 마을의

그윽한 보리 내음 맡고 싶어라

여인의 그 눈썹이 마냥 좋았었는데

 

꽁 꽁 언 새파란 잉크병을

불에 쪼이며

눈물만 쏟고 있네 등잔 불빛 밑에서

 

이 세상에서 밝은 것만을 취해 빨아들인 듯

새까만 그 눈동자

지금도 보고 싶어

 

언제부턴가

마음 속이는 것을 알게 되었다

콧수염 기른 것도 그 무렵이었지

 

창문의 유리

먼지와 빗물 자국 얼룩져 버린 그 뿌연 유리에도

슬픔은 서려 있네

 

이 세상에서 애써 벗어나려고

버둥쳤더니

방탕이란 이름만 끌어 안게 되었네

 

이내 몸 품은 사상이란 모두가

돈이 없음에 연유한 것이리라

가을 바람이 분다

 

불쌍하여라 늙은 나의 아버지

오늘도 내내 신문 읽다 지쳐서

개미와 놀고 계셔

 

가을 가까워

빠알간 전구 다마 따스한 온기

손에 닿는 감촉이 어머니만 같아라

 

 

        코코아 한 잔



나는 안다. 테러리스트의

슬픈 마음을 -

말과 행동으로 나누기 어려운

단 하나의 그 마음을

빼앗긴 말 대신에

행동으로 말하려는 심정을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적에게 내던지는 심정을 -

그것은 성실하고 열심한 사람이 늘 갖는 슬픔인 것을.


끝없는 논쟁 후의

차갑게 식어버린 코코아 한 모금을 홀짝이며

혀 끝에 닿는 그 씁쓸한 맛깔로,

나는 안다. 테러리스트의

슬프고도 슬픈 마음을.

(1911.6.15)

 

 

 

     끝없는 논쟁 후에


책을 읽어가며 계속하는 우리들의 논쟁
그래서 더욱 빛나는 우리들의 눈동자
50년 전의 러시아 청년에게는 지지 않는다.
우리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논쟁한다.
그러나, 누구 하는 주먹을 굳게 쥐고 책생을 치며
<V NAROD!>를 이치는 사람 없다.

우리들은 우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또, 민중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안다.
참으로, 50년 전의 러시아 청년보다도 많이 알고 잇다.
그러나, 누구 하나 주먹을 굳게 쥐고 책상을 치며
<V NAROD!> 외치는 사람 없다.

여기에 모인 이들은 모두 청년이고,
늘 세상에 새로운 것을 창출해 내는 청년들이다.
노인들은 먼저 죽고, 결국 우리네 젊은이가 승리한
다는 것을 안다.
보라, 우리네 눈이 빛남을, 또 그 토론이 격렬함을

그러나, 누구 하나 주먹을 굳게 쥐고 책상을 치며
<V NAROD!>를 외치는 사람 없다.

아아. 양초는 벌써 세번이나 갈아내졌고,
음료수 잔에는 작은 날벌레가 떠 있고,
젊은 부인이 정성스레 바꾸어주지만
그 눈에는, 끝없는 논쟁 후의 피곤이 있다.
그러나, 여전히 누구 하나 주먹을 굳게 쥐고 책상을 치며
<V NAROD!>를 외치는 사람 없다. 



          묘비명

 

우리는 늘 그를 존경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존경한다-

저 교회의 묘지, 밤나무 아래에

그를 묻은 지, 벌써 두 달이 지났건만.

 

실로, 우리네 모임에서 그를 보지 못하게 된 이래

벌써 두 달은 지나가 버렸다.

그는 토론가는 아니었지만

없어서는 안 될 한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그가 말한 것은

'동지여, 나의 무언을 탓하지 말아주오.

나는 논쟁은 잘 못하오,

그러나 언제라도 일어설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소'

 

'그의 눈동자는 늘 논자의 비겁함을 꾸짖고 있었소'

동지의 한 사람은 이렇게 그를 평했다.

그렇다, 나 또한 자주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다시는 그 눈에서 정의의 꾸짖음을 받을 수 없소.

 

그는 노동자- 한낱 기계공이었소.

그는 늘 열심히, 쾌활하게 일했고,

시간만 나면 동지와 토론하고, 또 자주 좋은 책을 읽었소.

그에게는 담배도, 술도 필요 없었소.

 

그의 진지하면서도 굽히지 않는, 사려 깊은 성격은,

저 주라산지의 바쿠닌 동지를 그리워하게 만들었소.

그는 지독한 열병으로 자리에 눕긴 했어도

여전히 죽음에 이르기까지 헛소리 하나 입에 내지 않았소.

 

'오늘은 5월 1일 우리의 날이오'

이는 그가 내게 남긴 최후의 말이었소.

이날 아침, 나는 그를 병문안하고,

그날 저녁, 그는 마침내 영원한 잠 속으로 떠났소.

 

아아, 그 넓은 이마와, 쇠망치 같은 팔뚝,

그리고, 저 삶을 무서워하지 않은 것처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늘 직시하는

그 눈이 지금도 눈 감으면 여전히 내 앞에 있소.

 

그의 유해는, 일개 유물론자로서,

저 밤나무 밑에 묻혀 있소

우리 동지들이 선택한 묘비명은 다음과 같소.

'나에게는 언제라도 일어설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소'

(1911.6.16)

 

 

        낡은 가방을 열고

 

 

내 친구는 낡은 가방을 열고

희미한 촛불이 흩어지는 마루 위에

여러 가지 책을 꺼내 놓고 있었다.

그것은 모두 이 나라에서 금지된 것들이었다.

 

마침내, 내 친구는 사진 한 장을 찾아내어

'이거야' 하고 내 손에 얹어 놓고는

조용히 또 창에 기대어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그것은 예쁘지도 않은 젊은 여인의 사진이었다.(1911.6.16)

 

 

          집

 

 

오늘 아침도, 문득 눈떴을 때

우리 집이라 부를 집이 갖고 싶어져

세수하는 동안에도 그 일만 공연스레 생각했지만

일터에서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와

저녁 후 차 한 잔 마시며, 담배를 피우노라면

보랏빛 연기처럼 자욱한 그리움

하염없이 또 집 생각만 마음에 떠오른다. -

하염없이 또 서글프게도

 

장소는, 기찻길에서 멀지 않은

푸근한 고향 마을 변두리 한구석 골라 본다.

서양풍의 산뜻한 목조 건물 한 채

높지 않아도, 그리고 아무 장식 없어도,

넓은 계단이랑 발코니, 볕 잘 드는 서재 ...

그렇다, 느낌이 좋은 안락한 의자도.

 

이 몇 해 동안 몇 번이고 생각한 것은 집에 관한 것.

생각할 때마다 조금씩 바뀐 방 배치 등을

가슴 속에 그려 보면서

새하얗게 바랜 전등 갓에 시름 없이 시선을 모으면

그 집에 사는 즐거움이 또렷이 보이는 듯,

우는 애 옆에 누워 젖 물리는 아내는 방 한구석 저쪽을 향해 있고,

그것이 행복하여 입가에 속절없이 미소마저 짓는다.

 

그리고, 그 마당은 넓게 하여 풀이 마음껏 자라게 해야지

여름이라도 되면, 여름날 비, 저절로 자란 무성한 풀잎에

소리내며 세차게 흩쁘리는 상쾌한 기분.

또 그 한구석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 심고

하얗게 칠한 나무 벤치를 그 밑에 두어야지-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은 그곳에 나가

저 연기 그윽한 향 좋은 이집트산 담배를 피우면서,

사오 일 간격으로 보내오는 마루젠의 신간

그 책 한 페이지를 접어 놓고,

밥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꾸벅꾸벅 졸기도 할 테지

또 모든 일 하나하나에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넋잃고 듣는

동네 꼬마애들을 모아 놓고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줘야겠지....

 

하염없이 또 서글프게도

어느 사이엔가, 젊은 날에 이르러

세월 사는 일에 지쳐만 간다.

도시 거주자의 분주한 마음에 한번 떠올라서는,

하염없이 또 서글프게,

못내 사무쳐 언제까지고 지워 버리기 아까운 이 생각

그 많은 갖가지 못다한 바람과 함께

처음부터 덧없는 일인 것을 잘 알면서

여전히, 젊은 날 남 몰래 사랑을 속삭이던 그 시선으로

아내에게도 말 못하고, 하얗게 바랜 전등 갓을 응시하고서

나 홀로 살그머니, 또 열심히, 자꾸만 마음속에 되새겨 본다. (1911.6.25)

 

 

 

 

-이시카와 다쿠보쿠-는 일본에서 김소월과 비슷한 위치를 차지하는 시인이라고 한다. 

백석이 좋아했던 시인이라고 하니 더 관심이 간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최초로 근대교육을 받았지만 집안의 몰락과 실패로 불운한 일생을 보내다가 서른도 채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짧은 시에서 생활의 비애가 잘 표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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