言/오래묵을詩

울화

oldhabit 2010. 4. 7. 17:04

           울화

 

                       -길상호-

 

 

부르르 몸이 떨려올 때 있어요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뼛속에 심은 기억이 깨어나

꽃 피우는 순간이래요

무슨 꽃이 이렇게

가슴 뻐근하게 하는 꽃이 있냐고

되묻는 나를 쓰다듬으며

꽃은 원래 울먹이며 피는 거래요

낮술을 퍼먹다 나와

밭고랑에 퍼질러 앉은 내게

네게도 한 무더기 꽃 피려나 보다

봄볕처럼 따뜻하게 웃어요

그 말에 더 답답해져 얼굴 돌리면

팔랑팔랑 또 날아와서는

순을 자꾸 꺾으면 가슴이 썩는다고

꽃 피어나려 몸을 흔들면

조용히 숨길 열어주래요

화병으로 돌아가시더니

어찌 그리 유해졌는지

부드럽게 바람을 타다가

말도 없이 유유히 멀어지네요

할머니가 쉬었다 가는 자리마다

자그마한 꽃들 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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