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화
-길상호-
부르르 몸이 떨려올 때 있어요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뼛속에 심은 기억이 깨어나
꽃 피우는 순간이래요
무슨 꽃이 이렇게
가슴 뻐근하게 하는 꽃이 있냐고
되묻는 나를 쓰다듬으며
꽃은 원래 울먹이며 피는 거래요
낮술을 퍼먹다 나와
밭고랑에 퍼질러 앉은 내게
네게도 한 무더기 꽃 피려나 보다
봄볕처럼 따뜻하게 웃어요
그 말에 더 답답해져 얼굴 돌리면
팔랑팔랑 또 날아와서는
순을 자꾸 꺾으면 가슴이 썩는다고
꽃 피어나려 몸을 흔들면
조용히 숨길 열어주래요
화병으로 돌아가시더니
어찌 그리 유해졌는지
부드럽게 바람을 타다가
말도 없이 유유히 멀어지네요
할머니가 쉬었다 가는 자리마다
자그마한 꽃들 피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