言/사는이치知

책 - 가장 소중한 것부터 버려라

oldhabit 2010. 10. 12. 21:16

 

성불(成佛)은 멀고, 생활은 가깝다고..

가장 소중한 것부터 버려라, E. 플라트너, 가야넷

 

 

활어 스트레스론의 억측

적절한 스트레스는 건강에 이롭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즐겨 드는 예가 있다. 바다에서 횟집으로 활어를 차량으로 실어오는 경우 활어만을 실어 오면 차의 진동으로 인한 멀미로 운송 도중에 죽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차량의 저장탱크 안에 활어의 천적을 풀어놓으면 죽는 활어의 숫자가 현저하게 줄어든다는 사실. 이러한 사실을 들어가며 적절한 스트레스는 건강에 도움이 됨을 그들은 역설한다.

그러나 이런 예를 즐겨드는 사람들이라면 다음의 질문에도 답을 준비해 두어야 할 것이다. 먼저 천적에게 잡혀 먹느냐 마느냐, 생사가 걸린 문제가 어찌 '적절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데서 그칠 것인가라는 질문. 또 하나 무엇하나 거칠 것 없이 유유자적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 경쟁의 무대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여유로운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장수하는 비결은 무엇이냐는 질문. 썩 시원한 대답을 기대하긴 어려울 듯하다.

   
▲ ‘70세에 당신은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80세에 당신은 청년이다. 90세에 조상들이 당신을 천국에 초대한다면, 100세까지는 기다리라고 말해라. 100세가 된다면 한 번 고려해볼 만하다.’ 일본의 오키나와 섬에 전해지는 속담이다.(사진출처/전원생활)
한 일간지가 소개하는 오키나와 장수촌의 비밀은 이렇다. 소식(小食), 규칙적 운동, 여유가 장수의 비결이란다. 소식과 규칙적인 운동이야 상식에 속하는 일이니 젖혀두고라도 문제는 여유가 어떻게 장수의 비결이냐는 문제다.

신문이 소개하는 비결은 흥미롭다. 도교와 유교가 결합된 독특한 오키나와의 토속신앙은 매사에 여유를 갖고 속도를 늦추게 한단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이른바 '오키나와 시간'(Okinawa time)에 맞춰 생활을 하는데 예를 들어 파티가 8시에 시작하기로 되어 있으면 대부분의 손님들은 9시에 도착하고 10시나 11시쯤 도착해도 지각했다는 사실에 대해 결코 부끄러워하거나 미안해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의 '코리안 타임'과 다를 바 없다. '오키나와 시간'은 그동안 극복되어야 할 '악습(惡習)'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서양인들의 눈에 부러운 장수 비결로 비춰지고 있단다. 장수와 행복의 비결은 ‘느릿한 삶’에 있다는 증좌.

대체 천적과 활어 운운하며 적절한 스트레스가 건강의 비결이니 하는 말을 늘어놓는 심사의 배후에는 어떤 무의식이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생산에는 일정량의 스트레스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받는 스트레스가 적절한 생산을 위해 필요한 것인지에는 의문이 따른다. 욕망은 언제나 필요를 초과한다. 자본주의 시대의 욕망은 한 인간이 먹고 숨쉬는 생존의 차원을 훨씬 초과한다. 생존의 차원을 넘어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필요를 위한 생산이라고 보기에 오늘날의 생산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과욕에서 비롯되는 이 거대한 생산의 시스템을 운용하는 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활어의 스트레스론>이라면 지나친 해석일까.

아예 꿈조차 잃어버리고, 어디로 간다는 목적도 없이 가는 삶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 소위 밥줄에 목매고 있는 사람들이 이런 예를 즐겨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 꿈과 의지와 뜻은 아예 한 쪽에 밀어두고, 생활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안달복달하며 살아가는 삶을 어떤 식으로든 미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무의식이 이런 예를 즐겨 말하는 사람들의 사고의 저변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꿈을 저버리고, 아예 꿈조차 잃어버리고, 어디로 간다는 목적도 없이 이끌려 가는 삶을 어떤 식으로든 미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무의식이 <활어의 스트레스론>을 생산하고 유포하는 데 일조하지 않았을까. <활어의 스트레스론>이 말하는 건강 비결은 늘 적절한(?) 스트레스에 노출되라는 것이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면역력과 성욕의 저하, 뇌세포의 파괴 등 수많은 성인병의 원인이 된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어의 생사여탈권을 쥔 천적 운운하며 스트레스가 건강에 기여한다는 <활어의 스트레스론>은 과연 누구를 위해 이로운지는 곰곰 생각해볼 일이다.

엄양(嚴陽)이라고 하는 선객(禪客)이 조주 선사(趙州 禪師)를 찾아가서 물었다.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합니까?"
조주 선사 "내려 놓아라[放下着]!"하였다.

도대체 아무 것도 지니지 않았는데 무엇을 버리라고 하는 것인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엄양은 다시 물었다.
"이미 한 물건도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무얼 내려 놓으라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짊어지고 가거라."


이 일화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에 집착하는 마음마저 버리라는 조주(趙州) 선사의 가르침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물론 무엇을 이루겠다는 생각이 나쁠 것은 없다. 한 점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도공의 욕망이 걸작을 낳고, 대작을 이루겠다는 예술가의 집착이 명품을 낳는다. 욕망은 개체를 이끌고 가는 힘이고, 성욕은 종족을 이끌고 가는 힘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선사(禪師)들은 묻는다. 대체 왜, 라고. 그러나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성철은 십년 동안 눕지 않는 장좌불와(長坐不臥)로 용맹정진한 자가 아니었던가. 그런 집착의 대인들께서 방하착(放下着)을 말하는 것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이 아닌가. 대체 무엇을 놓으라는 말인가.

성불(成佛)은 멀고, 생활은 가깝다

   
말이 쉬워서 방하착(放下着)이다. 어디 그게 쉬울까. 우리는 집착의 하루하루를 살 뿐이다. 불경께나 읽었다는 사람들이나 필자와 같은 범부나 결국 미망(迷妄)과 집착(執着)의 안간힘으로 하루를 산다. 성불(成佛)은 멀고, 생활은 가깝다. 그러나 꼭 이런 것은 아닌데, 라는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 <가장 소중한 것부터 버려라>(E. 플라트너 저, 유영미 역, 가야넷)는 이런 우리들의 자괴감을 부채질하는 책이다. 하루하루 조금의 불만도 없이 느낄 수 없는 사람이라면 굳이 이런 책을 펴들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 책을 펴들고 허둥지둥 어디론가 분주하게 달려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리라.

<활어의 스트레스론>이 제시하는 건강론에 비해 <가장 소중한 것부터 버려라>가 전하는 우화가 우리들의 건강에 훨씬 이롭지는 않을까. 이 책의 한 페이지를 열어 보자.

어떤 여행자는 여행 중 따사롭게 내려쬐는 햇살을 받으며 배에 앉아 꼬박꼬박 졸고 있는 한 어부를 보았다. 그 여행자는 어부에게 왜 고기를 잡지 않고 졸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어부는 오늘, 내일, 모레, 3일 동안 잡을 분량을 아침에 벌써 다 잡았다며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닌가. 여행자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물고기가 많다면 왜 더 잡으려고 하지 않을까? 여행자는 그 어부를 위해 사업 시나리오를 구상해주었다. 우선, 모터 달린 배를 구입한 후 물고기를 많이 잡아 그것을 팔아서 그것으로 다시 물고기를 더 많이 실을 수 있는 모터 달린 범선을 하나, 아니 두 개 정도 사서 물고기를 더욱 많이 잡아 물고기 가공공장을 차려 국제무역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이다. 여행자는 자신의 아이디어에 열광했다. 그때 어부가 물었다. 그 모든 것을 다 이루고 나면 무엇을 하느냐고. 그러자 여행자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한가로이 햇볕을 쬐면서 바다나 바라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자 어부는 자기가 벌써 그렇게 하고 있지 않느냐고 대답했다.

여행자의 아이디어가 어부의 한 마디에 보기 좋게 나가떨어지는 순간이다. 어떻든 이 책의 필자는 이 우화를 통해 ‘당신이 추구하는 성공의 목표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집착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는 우리에게 권한다. 꽉 조여진 시간의 코르셋을 벗어던지라고.

성공세계는 모순적이고 정신분열증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저자는 행복의 비결을 간단하게 말한다. "버려라, 그러면 삶은 그 이상을 줄 것이다!" 저자는 조주(趙州)와는 다른 방식으로 <방하착>을 말한다. 성공에 대해서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그렇다. 성공하려면 개성이 있으면서도 인습을 존중해야 하고, 사교적이면서도 이기적이어야 하며, 팔방미인이면서도 한 우물을 파야 하고, 협조적이면서도 관철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성공한 사람에게 기대되는 자질이다. 그런 자질들이 동시에 추구될 수 없을 만큼 상반된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다시 말해 성공세계는 모순적이고 정신분열증적인 요소를 갖고 있는 것이다."

어딘가에 <성공사전>이 있다면 그 책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주관이 뚜렷한 사람은 매사에 의견 충돌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이런 사람이 성공의 자리를 차지하긴 어렵다. 다소 불합리한 명령일지라도 불도저의 정신으로 일을 수행해내는 돌파력은 성공하는 사람들이 지녀야 할 제일의 요건이다. 감성적인 사람, 제 내면의 욕구에 답하기 쉬운 사람들 또한 성공의 자리를 차지하긴 어렵다.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 경제성, 효율성, 차가운 절제의 정신이 그들에겐 필요한 것이다. 회의하는 정신, 의심하는 정신, 왜라고 묻는 정신의 소유자는 성공하기 어렵다. 일단 달성하라, 이것이 성공의 계명이니까.

꾸밈없이 자신을 드러내려는 자는 성공하기 어렵다. 호의와 친절을 가장하고, 때론 분노를 삭히고, 늘 상냥한 태도로, 고객을 관리하고 자신의 뒤를 봐줄 인맥들을 관리해야 하니까. 그러므로 성공하는 자는 꾸미는 자이다. 잘 나가는 상표의 의상을 걸치고, 머리칼은 무쓰를 발라넘기고, 한치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당당하고도 세련된 몸짓을 보여야 한다. 헐거운 복장은 당신의 헐거운 의식을 대변한다. 어깨에 내려앉은 비듬은 당신이 스스로의 관리에 얼마나 허술했는가를 보여주는 지표다. 그러므로 성공한 자들은 자신을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쳐진 엉덩이와 기름기로 팽팽해진 복부에서 민첩함과 엄격함을 찾을 수는 없다. 뛰고 땀흘려라. 건강은 성공하는 자의 필수품이다.

그러나, 자신의 내면의 요구와 성향에 응답하지 않고, 그것을 외면함으로써 달성되는 성공은 어쩔 수 없이 자기를 소외시킨다는 것이 저자, 플라트너의 진단이다. 독일의 교육학자이자 심리학자이면서 뮌헨에서 심리치료실을 열어 심리치료사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임상적 경험을 쌓은 플라트너는 현대인들이 받는 스트레스에 주목한다. 사회적인 성공, 부, 명예, 화려한 경력 등이 행복의 기준이 되어버린 오늘날, 그것들이 주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성공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고 저자는 묻는다.

모방송국의 프로그램 <성공시대>는 분식회계, 변칙증여, 탈세 등을 일삼았더라도 일단 국부(國富)의 증진에 이바지했다면 기꺼이 그들을 성공한 자들로 분류하였다. 가장과 남편으로서의 도덕성이야 어찌 됐든, 일단 큰 부를 달성한 자들은 성공한 자의 부류에 합류시켰다. 물론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프로그램의 주류는 역시 물질적으로 성공한 자들이었다. 부와 명성이 없어도, 비록 그가 이름 없는 삶을 살고 있을지라도 제 신념과 양심에 따라 살아간 자들을 발굴하여 그에게 성공의 이름을 붙여주는 적극적인 취재 의식을 그 프로그램에서 찾아볼 수는 없었다. 이런 프로그램은 무의식중에 성공에 대한 편견을 조장한다. 성공을 하려거든 부를 얻어라. 최소한 명성을 얻어라.

이런 풍토 속에서 어떻게 쉽게 돈을 벌 것인가. 어떻게 쉽게 성공할 것인가를 화두로 삼는 경영서적들의 출간이 봇물을 이루는 것은 당연지사. '부자가 되는 법 시리즈', '~을 알면 돈이 보인다 시리즈'와 같은 실용서, 처세술 관련 서적은 출간과 함께 베스트셀러의 대열에 쉽게 합류한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와 같은 책은 제목에서부터 양자택일의 삶을 강요한다. 사뭇 위협적이다. 경영과 처세술에 관련된 책들이 말하는 자기혁신이란 곧 성공의 조건에 맞게 너를 개조하라는 명령이었다. 그러나 삶의 본질을 묻는 자, 왜, 라고 묻는 자에게까지 그 명령은 유효한 것은 아니다. <가장 소중한 것부터 버려라>의 저자, 플라트너는 우리에게 그런 명령에 휘둘리지 말 것을 권장한다. 저자는 말한다. 방하착(放下着)! 버리면, 삶은 그 이상의 것을 제공해준다.

김보일 (배문고등학교 국어과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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