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당신의 가련하고 무익한 종 - 칼 라너
당신의 진리를 깊이 파악하지도 않고
내 어찌 전해줄 수 있겠습니까?
만일 당신의 복음이 내 마음속 깊이 뿌리박지 못했다면
내 어찌 그것을 설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내가 당신의 생명으로 살지 않는다면
과연 당신의 생명을 전달해 줄 수 있겠습니까?
내가 당신의 무구한 진리를 선포할 때에도
여전히 나는 그 진리와 더불어
내 자신의 옹졸함과 평범함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내 어찌 청중들로 하여금
당신과 나를 구별하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내 어찌 그들의 마음속에 설교자인 나를 잊고
오직 당신의 말씀을 모시도록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나는 당신의 빛을 전달하는 전도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내 생명의 기름으로 그 빛을 꺼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당신의 등잔불 앞에 서 있어야 하고
그러자니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을 가로막는 역할밖에 못합니다.
나는 땅거미 져 어두운 이 세상의 그림자를
더욱 어둡고 기다랗게 만들기만 하는 존재인가 봅니다
나는 사제생활의 막판에 가서도
다만 당신의 가련하고 무익한 종에 불과한 것임을
빤히 알고 있습니다.
- K. 라너 '침묵속의 만남' 중에서
*기적이란
인간이 실존의 깊은 곳에서의 호소(부름)에 기쁘게 귀를 기울일때
자기 생활 속에 개개의 놀라운 사건,
경험세계에 끊임없이 따라다니면서 동시에 이것을 넘어서는 사건,
그러한 사건에 기쁘게 마음을 열때 비로소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정신적 본성이 지닌 독특한 내적 개방성(開放性)이고 전면적(全面的)인 열림이다.
인간은 그 본성에서 보아 원칙적으로 자기 경험세계의 피안을 인지할 수 있는 존재이고,
하나님께 가까이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물론 인간은 이 하나님과의 친근함을 끊임없이 새롭게 전개해 가야 한다.
그때문에 세계 내의 것에 고집하고 자기의 본성을 덮어 감추려는 어떠한 집착도 타파해야 한다.
자기 본질의 원초적인 품위를 소박하게 성취해 나가야 한다.
기쁘게 믿고 하나님에게 자기를 맡기고 유한한 자기의 실존을 성실하게 긍정해야만 한다.
이것은
인간에게 자기가 지배할 수있는 영역이 궁극적으로는 얼마나 의지할 수 없는 것인가를 자각하게 한다.
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감탄할 마음을 눈뜨게 한다.
이렇게 하여
인간은 깊고 성실한 생각을 한 다음에 자기의 경험세계속에서 구체적으로 자기에게
호소하고 있는 사건을 받아들인다.
그것을 통해서 자기가 역사속에서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고,
또 대화해야만 하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다.
성경도 역시 이 인간의 기초적인 신앙심이 기적 체험의 전제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예수는 "너의 믿음이 너를 구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칼 라너의 그리스도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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