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사리(Sari)
인도는 정과 부정의 의복이 있다. 이 개념은 카스트에서 나온 개념으로, 정은 깨끗하단 뜻이요, 부정은 깨끗치 못하다는 뜻이다. 인도인들은 나름대로 깨끗하고 깨끗하지 못한 것을 나누는 기준이 있다. 카스트로 정한 직업, 즉 깨끗한 직업을 가진 계층은 높은 카스트이며, 이런 높은 카스트들은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부정하고 낮은 카스트와 접촉을 꺼린다. 그래서 불가촉 천민이란 계급이 아직 인도에 남아있다. 특이 이 정과 부정의 개념은 음식에도 까다롭게 적용되는데, 자기보다 낮은 계급이 만든 음식은 먹지 않는 것. 인도인들이 손으로 식사를 하는 것도 부정한 계급이 만든 수저를 사용하면 오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손으로 식사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의복에 적용되는 정과 부정의 개념은, 바느질과 관련되어 있다. 즉, 바느질을 한 옷은 부정한 옷이요, 바느질을 하지 않은 옷은 정한 옷이다. 흔히 인도의 전통 의상으로 잘 알려진 사리는 바느질을 하지 않은 정한 옷에 속한다. 남성의 옷 중에도 도띠가 바느질을 하지 않은 정한 옷이다.
인도 남성
도띠(Dhoti)
도띠는 여성의 사리와 아주 비슷하다. 인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볼 수 있고, 사리와 마찬가지로 바느질 하지 않은 한 장의 천으로 되어있는 정한 옷이다. 길이는 사리보다 짧고, 룽기보단 길다. 또 흰색을 입는 것이 일반적이다. 입는 방법은 사리와 다르다. 사리는 한쪽 끝에서 시작해 입는 반면, 도띠는 가운데부터 시작해 입는다. 또 한끝을 다리 안에서 밖으로(결국, 다리 사이로) 걷어올려 허리춤에 고정시켜 입고, 그 위에 꾸르따를 많이 입는다. 긴 셔츠와 같은 형식이다.
룽기(Lungi)
룽기는 인도 남부의 전통 복장이었지만, 오늘날은 남녀 모두 입는 대중적인 옷이다.
허리에 둘러 발목까지 늘어뜨리는 옷이며, 도띠보다 길이가 짧다.
세르와니(Sherwani)
세르와니는 인도의 남성이 입는 일종의 코트다. 주로 북부 귀족층에서 입었던 옷으로, 무갈 시대부터 시작된 이 옷은 주로 델리와 바라나시의 장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몸에 맞게 입는 옷으로, 길이는 무릎이나 그보다 길게 해서 입고, 앞부분에 단추를 달아 열 수 있게 되어있다. 남성의 옷 중 우아한 편에 속하며 주로 행사 때 많이 입는다.
꾸르따 삐자마(Kurta Pijama)
꾸르따 삐자마는 인도 북부지방 남성들의 평상복이었다. 꾸르따와 삐자마로 나뉜다. 꾸르따는 상의, 보통 무릎 정도의 길이로 입지만 엉덩이까지 내려 입기도 한다. 단추가 있고, 소매는 긴 것이 대부분이다. 전통적으로 흰색이 많지만, 요즘은 다양하고 화려한 색도 많이 즐겨 입는다. 삐자마는 빠자마라고도 한다. 헐렁하게 입는 바지류인데, 허리에 끈을 묶어 입고, 전통적으로 흰색이 많다.
북부 남성들은 살와르 까미즈와 아주 유사한 빠탄 수트(Pathan suit)를 많이 입는다. 인도 전역에 걸쳐 일종의 긴 재킷인 아쯔깐(Achkan)도 볼 수 있다. 긴 소매에 길이는 무릎이나 그 밑까지 오며, 앞쪽에 단추가 달려있고, 북부에서 많이 보인다.
인도 여성
사리(Sari)와 쫄리(Choli)
사리는 인도 전역에 걸쳐 볼 수 있는 너무 잘 알려진 인도여성의 복장이다. 하지만 입는 방법이나 형태는 지역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다. 사리 끝을 앞에서 뒤로 넘기는 경우는 남부의 방식이고, 뒤에서 앞으로 넘기는 방법은 북부의 방식이다. 또 외출시 사리의 남는 부분을 머리에 뒤집어도 쓰는데, 사리는 굉장히 긴 천으로 되어있고, 바느질이 되어있지 않아서 입을 때 몸에 옷을 두르는 형태를 띈다. 천의 크기는 통상 폭 1m 내외, 길이는 다양하지만 보통 5~6m정도. 긴 것은 12m를 넘기도 한다.
사리는 원래 맨살 위에 두르는 것이 원칙이지만 보통 쫄리라고 하는 타이트한 상의와 함께 입는다. 쫄리는 허리부분을 노출하는 상의로 배꼽이 드러나는 경우가 보통이다. 소매가 길거나 없기도 하며, 대부분은 반소매의 형태이다. 원래 쫄리는 앞부분만 가리고 등쪽은 가리지 않는데, 그런 형태의 쫄리는 라자스탄에 가면 찾아볼 수 있다.
살와르 까미즈(Salwar Kamiz)
살와르 까미즈는 주로 인도 북부지방에서 입는 의상이다. 주로 까슈미르와 뻔잡에서 즐겼는데, 현재는 인도 전역에서 즐겨입는 옷이 되었다. 무갈 시대에 생겨난 옷으로 원래 무슬림 여인들이 입던 옷이지만, 지금은 종교와 상관없이 입는다. 윗옷은 까미즈이며, 바지가 살와르다. 까미즈는 일종의 긴 셔츠이며, 몸에 밀착되어 몸의 윤곽이 드러나는 형태의 것도 있고, 약간 헐렁한 형태도 있다. 길이는 다양하다. 살와르는 남성용 삐자마란 바지처럼 헐렁하게 입는다. 또 오르나(Orhni)라는 일종의 스카프와 함께 입기도 한다. 오르니는 어깨에 늘어뜨리기도 하고, 머리에 쓰기도 한다. 살와르 까미즈는 입는 용도와 폭이 넓어서 일상생활에 입어도, 파티 갈 때 입어도 무난한 옷이다.
쭈리다르 꾸르따(Churidar Kurta)
인도 여성과 남성이 모두 입을 수 있다. 살와르 까미즈와 비슷한 것이 쭈리다르 꾸르따다. 쭈르다르는 살와르와 거의 유사하며, 엉덩이가 좀 더 타이트하단 점이 다르다. 살와르가 까미즈와 한 짝이라면, 쭈리다르는 꾸르따와 짝이다. 이것은 남성도 입을 수 있다.
가그라(Ghaghra)
서부 인도, 즉 구자라뜨와 라자스탄 여인들이 입는 옷이다. 하지만 사리와 달리 바느질을 한 옷이다. 가그라는 펼치면 도너츠 모양이 되는 큰 치마다. 따라서 입으면 많은 주름이 잡히며, 홀치기 염으로 된 직물을 사용하며, 화려한 자수를 놓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 치마는 통상 발목이나 정강이 중간 정도의 길이로 해서 입는다. 또한 네파(Nefa)라는 허리띠로 묶어 입기도 한다. 오르니나 두빠다 같은 숄과 함께 입기도 한다.
부르까(Burka)
인도 북동부 여성들은 티벳 전통의상을 주로 입는다.
또 전통적 무슬림의 여인들은 부르까라는 긴 베일옷을 입는다.
펀자비
실제로 사리만큼 펀자비도 많이 입고 다닌다. 사리보다 입는 방법도 수월하기 때문이다. 즉, 일상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상의와 긴 바지, 어깨에 두르는 숄을 합해 펀자비 드레스라고 한다.
상의를 잘 보면 반팔과 긴팔의 두 종류가 있다. 인도는 더운 나라지만 민소매 의상이 없다. 따라서 민소매로 된 펀자비나 사리는 없다. 그러나 인도에서 배꼽티는 야한게 아니다. 사리를 입으면 의레 나오는 것이 배이므로 야하지 않다. 허나 야한차림 취급받는 것은 어깨가 드러나는 상의에 종아리 이상이 드러나는 바지다. 그래서 민소매 옷은 인도인을 자극한다. 하의를 보면, 일반적으로 허리에 끝을 넣어 조를 수 있게 했고, 펄렁한 바지 스타일과, 종아리 부분만 딱 맞게 디자인된 두 형태가 있다. 숄은 색이 예뻐야 옷이 산다. 상의와 하의에 맞는 색깔을 해야 보기에도 좋고, 숄 양쪽 끝에는 끝처리를 하지 않아 올이 곧 풀어질 듯 하지만 그대로 둔다.
베트남, 아오자이
베트남하면 떠오르는 것이 삿갓 같은 모자와 베트남 여성이 입는 전통의상인 '아오자이'다. 여기서 '아오'는 웃옷이란 뜻이고, '자이'는 길다랗다는 뜻이다. 언뜻 보면 원피스처럼 한 벌의 드레스로 생각할 수 있지만, 유심히 보면 속에 바지가 있다.
지금도 베트남은 사회주의 체제이긴 하지만, 전쟁이 끝난 직후 공산주의 통제가 아주 심할 땐 전통의상인 '아오자이' 착용을 금지시킬 때도 있었다. 이유는 자본주의 냄새가 나고, 좀 퇴폐적이란 이유에서다. 그러나 지금은 통제는 없고, 북쪽 하노이 지방에선 남쪽과 달리 평소에 그리 자주 입진 않는다. 남쪽보다 훨씬 사회주의 색채가 강함을 알 수 있다. 반면 남쪽에선 여고생들이 아오자이를 입고 공부한다.
아오자이는 옷이 몸에 꽉 맞게 재단된다. 따라서 기성복이 없고, 다 맞춰 입어야 한다. 한번 맞추는데 약 20곳의 몸 곳곳을 자로 재서 재단에 들어간다. 아오자이의 멋은 그야말로 몸에 딱 맞는 멋이 크다. 따라서 몸의 체형이 그대로 살아나므로 당연히 외국인 눈에 베트남 여성은 아름답고 환상적으로 비춰진다. 시집가기 전의 처녀들은 주로 흰색의 아오자이를, 아줌마들은 색깔있는 아오자이를 입는다. 베트남 남쪽, 호치민시 중심가에 동커이 거리가 있는데, 이 아오자이를 짜는 상점이 많고, 북쪽 하노이에 가면 전푸 거리에 이런 상점이 많다.
중국, 치파오(旗袍)
'치파오'는 중국의 청나라때 유래된 남녀 공용의 전통 복식이다. 원래 박스형이었지만, 현대화되면서 허리선이 들어가고 온 몸이 피트되면서 인체의 굴곡을 살려주는 섹시한 곡선을 드러내어 서양화되었다. 즉, 몸의 곡선을 드러내지 않는 동양 복식의 특징에서 육체의 볼륨을 드러내는 것으로 아름다움의 기준이 서양식으로 변화된 것을 말하며, 이것의 정점은 슬릿(slit, 옷의 한 면이 터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이 입는 치파오의 경우, 옆 선에 상당히 슬릿이 많이 들어가 있는데, 이는 섹시함을 드러내는 직접적인 표현이기도 하지만, 좁고 타이트한 치마에 활동적인 면을 가미한 것이다. 서양의 슬릿이 주로 앞이나 뒷면에 들어간 반면, 동양의 치파오는 절대적으로 옆 선에 넣는데, 은밀하고 더욱 비밀스럽고 자극적인 동양의 성적인 표현을 치파오가 잘 표현해준다. 개량화된 치파오로 면으로 만든 것도 있지만, 몸의 굴곡을 그대로 살리는데 실크만큼 좋은 것은 없다.
중국에서 중급 이상의 식당에 가면, 아슬아슬한 슬릿의 차파우 차림의 젊은 아가씨들이 문 앞에서 안내를 한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대접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중국 복식은 칼라 부분이 특이하여, 차이나 칼라라는 명칭이 따로 있을 정도다. 대부분의 중국 전통의상은 차이나 칼라로 되어있는데, '창파오'도 마찬가지다. 중국식 조끼 정도로 보면 된다. 주로 원색을 사용하고 안에 중국 특유의 화려한 꽃무늬와 같은 자수가 들어가 상당히 화려하다. 겉감과 안감 사이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솜을 넣고, 귀티나는 옷감을 사용하므로 겉옷 대용으로 입고다니기도 한다.
크게 전통적으로 중국복장을 대변하는 것은 치파오(旗袍)와 중산푸(中山服)로 나뉜다.
치파오(旗袍)
한국은 한복, 일본은 기모노가 있듯이, 중국은 치파오라는 전통의상이 있다. 선이 자연스럽게 흘러 내리는 듯 하고, 모양이 우아한 치파오는 중국 여인들이 특히 즐겨입는 복장이다. 이 치파오는 16C 중엽, 만족의 민족의상이었다.이런 치파오를 누가 설계했으며, 어떻게 보급되었는지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징뽀후라는 동북부 지역에 만족 어민집 딸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부모와 같이 고기잡이를 했는데, 매일 햇볕에 그을리고 바닷물에 젖다 보니 얼굴이 까맣게 타서 사람들에게 '까만 여자애'라고 불렸다. 이 처녀는 얼굴도 예뻤지만 손재주가 뛰어나 대대로 물려 내려온 넓은 치마를 뜯어 고쳐 헝겊으로 단추고리를 댄 긴팔 원피스를 만들어 입었다. 옷감도 많이 절약할 수 있었고, 몸에도 딱 맞는 이 옷은 고기잡이 일하기도 편했다.
어느날, 당시 만족 왕의 꿈에 선왕이 나타나더니, 북국에 한 사람이 흙 용을 타고, 머리엔 평평한 검은 투구를 쓰고, 손에는 팔각 백옥도장을 들고, 몸에는 12열쇠가 달린 옷을 입은 황후가 황제를 도와 나라를 다스릴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전국 각지에서 처녀들을 모았지만 마음에 드는 처녀를 고르지 못한 흠차 대신은 어느날 그곳에 놀러온 '까만 여자애'를 만나게 되었다.
때 마침, 이 처녀는 몸에 단추가 많이 달린 긴팔 원피스를 입고(12열쇠가 달린 옷), 머리에는 흙 대야(평평한 검은 투구)를 이고, 손에는 사각형 두부(팔각 백옥도장)을 쥐고, 토담장(흙 용)을 타고 앉아 번화한 거리를 구경하고 있었던 것이다. 흠차 대신이 보니 이 처녀야 말로 황제가 말하는 황후가 틀림 없었다. 그 '까만 여자애'를 궁중에 데리고 가 헤이황호후(黑皇后)로 봉했다.
하지만 궁중생활에 적응을 못하던 황후는 땅에 질질 끌리는 넓고 긴 치마를 입기가 불편하다고 단추가 많이 달린 긴팔 원피스로 고쳐 입고 다녔다. 이 일을 안 황제는 황후가 제멋대로 궁중복장을 고친 것은 죄가 있다고 여겨, 궁중에서 내쫓으면서 발로 찬 것이 급소를 때려 황후는 죽게 되었다.
관동에 있던 고향 사람들은 까만 처녀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삼일동안 울며, 그녀를 기념하기 위해 생전에 그녀가 입던 긴팔 원피스를 만들어 입었다. 이상하게도 이 옷을 입은 처녀들은 모두 몸매가 예뻐졌는데, 이는 죽은 황후가 암암리에 그녀들을 위해 치장을 해준 것이란 이야기도 전해진다.
물론 민간 전설에 불과하지만, 이런 전설을 지닌 치파오는 오랜 역사를 거쳐 변화되고 개량되었다. 최초의 치파오 길이는 발목을 넘지 않았다고 한다. 만족 처녀들은 시집갈 때만 발목을 넘기는 결혼 예복인 치파오를 입었다. 일반적으로, 만족 귀족 여인들이나 궁중 여인들은 3㎝ 높이의 나팔형 하이힐을 신었는데, 신발을 덮기 위해 발목을 넘기는 치파오를 입었다.
순치 원년에 청나라가 수도를 북경으로 옮기면서 치파오는 중원 일대에 보급되었고, 나중에 만족과 한족들의 생활이 융합되면서 치파오도 한족 부녀들에게 점차 받아들여지고 발전하게 되었다. 특히 중국이 신해혁명을 거치면서 치파오는 전국으로 펴졌고, 1920년대 말부터 30년대 초까지 서방의 미니스커트가 유행하면서 치파오의 길이도 따라서 짧아져 무릎을 약간 넘겼고, 옷소매도 짧아졌다.
1930년대 중엽에 이르러 치파오의 길이가 다시 길어져 땅에 닿았으며, 옆 트임이 점점 높아져 허벅지에 이르렀고, 허리선은 잘록하게 만들어 여인의 곡선미를 살렸다. 1940년대 와서는 치파오의 길이가 다시 짧아졌을 뿐만 아니라 옷소매가 완전히 없어졌다.
이렇게 치파오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여러 모양과 색상이 다양하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뽐내게 되었다. 또 체형에 따라 그 아름다움도 달라, 마른 체형, 뚱뚱한 체형, 키 큰 체형, 키 작은 체형 모두가 입어도 아름답다.
중산푸(中山服)
쑨원(孫文, 호가 중산이다) 선생이 현재 생활하기 편리하게 고안한 옷으로써, 지금까지 현대 중국인들이 가장 애용하는 복장이다. 현재는 농촌이나 나이 많은 사람들이 입은 모습을 볼 순 있으나, 젊은 사람들은 입은 모습을 보기가 힘들다.
17C 중국은 만주의 통치에 놓이면서 의복에서 만주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중국에서 부자들은 걷거나 활동하는 것을 금기시 했고, 특히 이런 생각은 여성의 복장에도 영향을 미쳐 '전족'이라는 중국 특유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일본, 기모노(きもの)
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이 서구세계에 대해 문호를 개방했을 때부터 일본인은 고유의 옷차림을 하지 않기 시작했고, 서양식 옷차림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 많은 일본인들은 고유의 기모노를 입고, 위에 허리띠인 오비를 맨다. 새해나 졸업시즌에 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여성들이 아름다운 무늬의 기모노를 입는데, 특히 결혼식이나 공식적인 큰 행사에 결혼한 남녀는 가문을 나타내는 검은색 기모노를 입는다고 한다. 질 좋은 비단으로 만든 기모노는 매우 비싸다. 그래서 이 기모노를 잘 간수했다가 어머니가 딸에게,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준다.
기모노를 입으면, 양말과 신발을 신지 않고, 대신 나무로 만든 굽이 높은 나막신인 게타, 목면이나 가죽으로 만든 굽이 낮은 샌들인 조리를 신는다. 샌들 끈에 맞도록 엄지발가락과 둘째 발가락 사이가 갈라진 면버선인 다비를 신는다. 기모노와 비슷한 유카타는 여름 축제나 목욕 후 간편하고 가볍게 신는 목면 옷이다.
패션학 :: 세계 여러나라의 전통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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