言/오래묵을詩

11월

oldhabit 2009. 11. 24. 18:52

  11월

 

                         -이외수-

 

 

세상은 저물어

길을 지운다

 

나무들 한 겹씩

마음 비우고

초연히 겨울로 떠나는 모습

독약 같은 사랑도

문을 닫는다

 

인간사 모두가 고해이거늘

바람은 어디로 가자고

내 등을 떠미는가

 

상처 깊은 눈물도

은혜로운데

아직도 지울 수 없는 이름들

 

서쪽 하늘에 걸려

젖은 별빛으로

흔들리는 11월

 

 

 

          남겨진 가을

 

                                -이재무-

 


움켜진 손 안의 모래알처럼 시간이 새고있다
집착이란 이처럼 허망한 것이다

 

그렇게 네가 가고 나면 내게 남겨진 가을은
김장 끝난 텃밭에 싸락눈을 불러올 것이다

 

문장이 되지 못한 말(語)들이
반쯤 걷다가 바람의 뒷발에 채인다

 

추억이란 아름답지만 때로는 치사한 것
먼 훗날 내 가슴의 터엔 회한의 먼지만이 붐빌 것이다

 

젖은 얼굴의 달빛으로, 흔들리는 풀잎으로, 서늘한 바람으로,
사선의 빗방울로, 박 속 같은 눈 꽃으로
너는 그렇게 찾아와 마음의 그릇 채우고 흔들겠지

 

아 이렇게 숨이 차 사소한 바람에도 몸이 아픈데
구멍난 조롱박으로 퍼올리는 물처럼 시간이 새고 있다

 

' > 오래묵을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향긋한 친밀감을 위하여   (0) 2010.01.09
새 해를 기다리는 노래  (0) 2009.12.02
까치밥  (0) 2009.11.24
구부러진다는 것  (0) 2009.11.04
일 잘 하는 사내  (0) 2009.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