言/오래묵을詩

여자를 위하여

oldhabit 2010. 2. 19. 10:52

여자를 위하여

 

 

               -이기철-

 

 

너를 이 세상의 것이게 한 사람이 여자다
너의 손가락이 다섯 개임을 처음으로 가르친 사람
너에게 숟가락질과 신발 신는 법을 가르친 사람이 여자다
생애 동안 일만 번은 흰 종이 위에 써야 할
이 세상 오직 하나 뿐인 네 이름을 모음으로 가르친 사람
태어나 최초의 언어로, 어머니라고 네 불렀던 사람이 여자다.

네 청년이 되어 처음으로 세상에 패배한 뒤
술 취해 쓰러지며 그의 이름을 부르거나
기차를 타고 밤 속을 달리며 전화를 걸 사람도 여자다
그를 만나 비로소 너의 육체가 완성에 도달할 사람
그래서 종교와 윤리가
열번 가르치고 열번 반성케 한
성욕과 쾌락을 선물로 준 사람도 여자다

그러나 어느 인생에도 황혼은 있어
네 걸어온 발자국 헤며 신발에 묻은 진흙을 털 때
이미 윤기 잃은 네 가슴에 더운 손 얹어 줄 사람도 여자다
깨끗한 베옷을 마련할 사람
그 겸허하고 숭고한 이름인
여자                      

' > 오래묵을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래  (0) 2010.03.14
사람을 쬐다   (0) 2010.03.12
울어라 봄바람아  (0) 2010.02.03
연가 9  (0) 2010.01.30
향긋한 친밀감을 위하여   (0) 2010.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