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篆書전서

[스크랩] 중국 서예사(4)--진의 소전

oldhabit 2010. 4. 16. 14:08

 

                             태산 각석

  이 각석은 원석은 없고 원나라 때  모방하여 만든 각석이다.   소전이 진예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글이다.

 

                  13) 秦代書法

 진은 주문화를 계승 발전 시켰다. 진시황이 6국을 통일하자 三同政策을 폈다. 즉 車同軌. 行同倫, 書同文이었다.

서동문이란 6국으로 분립되어 있을 때 나라마다 자기에게 편리하도록 만든 字体를 사용하였다. 진은 이 자체를 자신의 자체를 모태로 하여 통일하였다. 이사가 이 일을 맡아 하였고, 이사가 만든 자체를 小篆이라고 한다. 소전은 대전에 비하여 간략하고, 아름답게 만들었다.

 篆書는 크게 대전과 소전으로 나눈다. 대전은 넓은 의미에서 소전으로 통일되기 이전의 글자체를 통칭한다. 즉, 갑골문과 금문도 포함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진나라가 통일하기 이전에 서주 말기의 태사였던 주(籒)가 쓴 史籒篇의 글자체를 말한다.(사진 구할 것)

說問解字(한나라 때 허진이 만든 책으로 일종의 백과사전이다.)에 220여자가 남아 있을 뿐 진본은 없다.

대전은 괵계자백반명과 비슷하므로 대전체의 글자가 이 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대전체에서 보듯이 이때에 글자의 규격화가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서주 선왕 때에 진나라가 서주의 ‘서주대부’라는 작위를 받으므로 주 문화권으로 편입되었다. 이후로 진은 주의 문화를 받아들여서 계승 발전시킨다. 사주편도 이때 받아들였으리라 한다.

 진 景公(BC576-BC537)에 주조한 秦公鐘과 秦公簋의 자체가 서주 말기의 영향을 보여준다. 즉, 서주 말기의 괵계자백반과 史頌簋 --> 石鼓文, 저초문(詛楚文) --> 진공종, 진공궤로 이어짐을 알 수 있다.

 

 

 

진 소판

따라서 小篆은 주나라의 자체를 뿌리로 하였으므로 대전의 풍모가 많이 남아 있다. 또 진의 문자가 중심이 되어서 6국의 문자를 통합하였지만 소전을 만든 이사가 초나라 사람이었으므로 초 문자의 영향도 많이 나타난다.

이사가 남긴 소전체 글자는 묵적은 남아있지 않고, 낭야대각석과 태산각석이 이사의 소전체를 보여주는 당시의 비석이다.

字体를 요약하면 획이 두껍지 않고, 고르며,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혀서 단정하고, 筆勢는 圓勢(角이 지지 않고 둥그스럼하게 한)이고, 글자의 모양은 상하로 길다.

 

                     진 소판 

 

 小箋과 秦箋은 근본적으로 같은 말이지만 일반적으로 비석같은 의례용 글자를 소전이라고 하고, 실용으로 쓰이는 글자체를 진전이라고 말한다. 秦판版銘이 있다.

*진소판명--- 도량형기, 병기 등에 주조된 글자이다. 자체는 소전이나 필획이 方折이 많고, 자형은 大, 小로 다양하다. 배열도 규칙적으로 고르지 않고, 마구 뒤섞여 있다. 민간인들이 정부의 방침에 의하여 소전을 쓰되, 자신들의 창의력으로 조잡하게 글을 사용하였다. 이 글이 현대인의 미감에 맞는다고 하여 요즘에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출처 : 서예세상
글쓴이 : 촌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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