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金文
중국 문자에서 갑골문 다음으로 오래 된 문자이다. 古銅製의 用器나 의장용 무기에 새겨져 있는 文字로서 周代에 가장 성행하였고, 유물도 가장 많다. 일명 鐘鼎文이라고도 한다.
도기에 새겨져 있던 도문이 갑골문으로, 다시 금문으로 발전하였을 것이다. 字體도 닮은 점이 많다.
갑골문과 금문의 차이를 보면 갑골문은 상형의 요소가 아직 많이 남아 있어 字形이 아직 복잡하다. 금문은 상대적으로 상형 요소가 적고, 글자 모양도 간단하다. 갑골문은 상형자의 필획이 생략된 경우가 많다. 따라서 異體字가 많다. 금문은 어느 정도 일정한 형태를 지녔다.
갑골문은 칼로 새기므로 필획이 가늘고, 각이 져서 글자가 모가 난다. 금문은 거푸집을 만들어서 글자를 주조함으로 주조된 글자는 화선지에 붓으로 쓴 글씨에 먹물이 번지듯이 필획이 두툼해진 경우가 많다. 획이 바뀌는 부분도 각이 지기보다는 둥글게 되면서 두툼해져 있다.
金文의 숫자가 갑골문보다 더 많은 것은 아니다. 해독 가능한 문자가 약 1800자이고, 해독이 되지 않는 문자가 약 1200자 정도이다.
대부분이 陰文이고, 陽文은 드물다.
金文이 만들어진 시기는 1) 商代 2) 西周 3) 東周(춘추전국시대) 4) 진, 한시대이다.
8) 시대별 특징
1) 상대
글자 수가 적고, 문장이 아주 짧다. 주로 씨족명, 인명, 조상명 등이 많다. 극히 간단한 문
자는 地名, 人名인 것이 많다.
2) 서주
서주 시대가 되면 금문의 자체가 균형이 잡혀가고, 필획이 웅휘해지며, 단정해진다.
예법의 강조, 국가의 애국이념이 강조되는 내용이 많다. 銘文은 조상이 덕을 기리고(禮)
공적을 기록하거나, 국가의 문서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많다. 문장도 길어진다.
문장의 구조와 문법이 주대의 전적에 쓰여진 것과 같다. 즉 문장의 틀이 잡혀져 있다.
서주시대가 금문의 전성기이다.
3) 東周
BC770년에 주나라는 세력이 약해져서 동쪽으로 천도한다. 이때를 동주 또는 춘추전국시대라고 한다.
동주시대에는 문장이 서사화 되면서 길어진다. 따라서 금문으로 남기기 보다는 대나무나 나무에 남기기를 좋아하였다.
금석의 銘文은 점차 줄어든다.
* 금문은 칼로 새기는 것이 아니고, 거푸집에 글의 형태를 미리 만들어서 주조하는 형식을 취한다. 획긋기에서 붓글씨의 맛을 그대로 낼 수 있다.
서예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이 가능해지므로 서예가 외형의 꾸밈을 중시하는 경향으로 흘러갔다. 서예가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 남방에서는 병기의 장식용으로 조사(鳥辭-새모양의 글씨)를 섰다. 중국 문자의 예술화를 (서예화) 조사에서 찾는 사람도 있다.
9) 시대별 문자
I) 상대 -- 문자적 銅器와 圖形文字의 2種이 있다.
도형문자는 고대의 국명, 족명으로 민족을 상징하는 族徽가 아닐까 한다. 도형문자는 갑 골문에서 보이는 형상을 그대로 옮겨 표 현한 것이 아닐까?
상의 금문은 주의 금문에 비하여 갑골에 가깝다.
대표적인 것으로, 司母戌鼎銘. 戌嗣子鼎명이 있다. 小臣兪?銘은 붓의 움직임이 엿보인다.
ii) 西周
筆法에 波磔(파책-붓으로 옆으로 (오른쪽) 뻗어 나가는 필법)
a) 서주 초기---필법은 상의 영향이 그대로 남아 있다. 왕성한 국력이 반영되어 청동기
물이 커지고, 명문도 길어진다. 대표유물---大盂鼎銘
* 기필과 수필에 붓끝을 드러내므로 끝이 획의 끝이 뾰죽해진다.
* 가운데 부분은 굵어진다. 지나치게 두꺼워지는 것도 있다.
b) 中期 ---금문이 많아진다.(전성기이다.)
대표유물--대극정
1) 기필과 수필 부분에 붓끝을 감추는 경향(藏장봉)이 있고, 획의 굵기가 일정하다.
ii) 운필을 둥그스럼하게 하고, 자연스럽다.
iii) 글자의 짜임새도 널찍하고, 똑바로 서있다.
===> 이때부터 글자가 갑골문의 품격을 벗어난다.
c) 晩期 -- 곽季子白盤. 散氏盤, 毛公鼎. 사송궤, 종주정
곽계자백반
산시반
모공정
I) 글체가 대체로 날씬하고, 크기가 비슷해진다.
ii) 필획이 예쁘고, 유창하고, 정교하고, 균형이 잡힌다.
iii) 글자와 글자, 행과 행이 들쑥날쑥하다.
iv) 산시반의 경우 글자가 長方形이고, 옆으로 길어진다. 용필이 유창-분방하다.
===> 금문이 질박하고, 힘이 있는 글자체가 차츰 아름답게 다듬어져 가는 경향을 보인다.
10) 대표적 유물
I) 大盂鼎 --- 지름이 90cm 정도의 대형 청동기로 291자가 쓰여 있다.
왕이 신하에게 정무를 맡기는 내용으로서, 자신의 영광과 왕에게 감사하는 내용
문자가 글자의 체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상대의 필법을 벗어나지 못하고있다.
ii) 毛公鼎 -- 서주 후기의 용기로서, 491자가 쓰여 있다.
왕의 정복을 칭찬, 모공?에게 정치를 위임한다는 내용이고, 감사하는 내용이다.
문자 배열과 결구가 정돈되어 있다, 글자체도 미적 감각을 높여서 쓰고 있다.
iii) 곽계자백반(BC827-BC782) -- 지름이 118cm의 타원 장방형이다.
문자의 배열이 정돈되어 있고, 유려하다.
글자체가 조금 가늘어지면서 새로운 유형의 문자체가 나타나는 것을 보여준다.
iv) 散氏盤(BC878-BC828) -- 357자이다.
산씨의 토지의 경계를 나타내는 내용이다.
금문이 점점 더 아름답게 변해가는데 비하여 고졸하고, 방종한 배열을 하고 있다.
11) 춘추-전국시대(東周)
이때는 노예적 군주국가에서 봉건적 국가로 분화된 시기이다. 자연히 지역적 특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금문의 품격도 다양해진다.
전통적인 銘文, 刻文, 錯金書(착금서-상감한 글자)등 다양한 문자 양식이 나타난다. 글의 위치도 기명의 내부에 쓴 대신에 그릇 외부의 어깨나 복부 부위에 써 넣으므로 장식적인 효과를 거두려고 한다.
글자의 형태도 변화가 일어난다. 예전의 치졸한 자체에서 훨신 더 정돈되고, 아름답고, 날씬한 書品을 보인다.
글자 이외에 새나 벌레 등의 형상을 하여 장식적인 효과를 도모한 것도 나타난다.
각 제후국에서는 자기 나라의 형편에 맞고, 편리하게 자체를 변형하거나, 간략하게 하여 사용하기 편하도록 함으로 바꾸었다. 이런 여건들이 감안되어서 나타난 글자체를 대전(大篆)이라고 한다. 대전의 글자체에는 아직까지도 그림의 형태가 많이 남아 있다.
특히 초(동남쪽), 제(동북쪽), 진(서쪽)의 나라가 각 지역을 대표한 글자체를 만들었다.
초(서, 오, 월, 채)-- 字体가 길고, 정교하다. 획이 구불구불하게 하여 아름답게 표현하였다.
제(거, 중산국) -- 결구가 날씬하고, 깔끔하고, 필획이 단단하여 화려하면서도 옹골차다.
진 -- 정교하고, 단정하다. 書品이 소박하고 시원시원하다. (곽예자백반을 계승)
鄂君?節(악군?절)
대나무 모양으로 만든 청동 허가증이다. 상감기법의 황금글씨로 새겨져 있다. 초의 왕이 작지만 전략적으로 주요한 소국의 왕에게 방행한 허가증으로서, 강을 따라서 물품의 수송을 허가하는 내용이다.(東周-全國시대)
'書 > 篆書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갑골문자 (0) | 2010.04.16 |
---|---|
[스크랩] 중국 서예사(4)--진의 소전 (0) | 2010.04.16 |
어떤 약도(지유명차) (0) | 2010.04.14 |
[스크랩] `애마송병(愛馬頌屛) - 이석구(李石求·1775-1831) (0) | 2010.04.12 |
[스크랩] 사송정 - 대전쓸 때 붓을 다루는 방법 (0) | 2010.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