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박두규-
나는 불행하게도 이 순간 도심의 거리를 걷고 있다.
한 떼의 구름이 도심을 빠져나가는 이 시간에도
남태평앙 깊은 해류를 타고 고래들은 이동을 하고 있을 것이다.
지리산 작은세개골 두름나무엔 새순이 올라오고
갈기를 세운 말들이 몽골의 초원을 달리고 있을 것이다.
거리를 걸으며 스스로 불행하다고 단정 짓는 나의 오만을
그 오만으로 가득 찬 내 어둠 속 내장들을
태평양의 고래나 두릅나무 어린 새순들은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 종일토록 초원을 달려도 그 끝에 이르지 못하고
거친 숨만 토해야 하는 말 한 마리의 그 깊은 절망을
나는 알고 있단 말인가, 알고 있다.
나의 오만과 그대의 절망의 관계를 모두 알고 있다.
길가의 코스모스도, 꽃을 흔들고 가는 바람도
지하 수백 미터 암반 밑으로 흐르는 물줄기도 모두
우리의 관계와 관계를 가지고 처음부터 동참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의 관계는 누군가의 디카에 찍혀
끊임없이 어디론가 전송되고 있다.
그래서 아파트 열쇠를 놓고 나와, 아내가 퇴근하기까지
앞으로세 시간 이상 도심의 거리를 더 헤매아 하는
나의 불행도 나만의 불행이 아니라
남태평양의 해류를 타고 이동 중인 고래의 불행이다.
지리산 두릅나무의 불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