言/젖지않을江

어떤가?

oldhabit 2010. 10. 12. 20:28

어떤가, 몸이여

 

                      -한상봉- 2010.10.7.

 

종이 박스를 구할 수 있는 날이면 그래도 행복했으리라.

작은 육신을 누이고 그 주위에 종이박스를 펼쳐서 둘러 세우고 제법 방같이 꾸민 반 평짜리 공간이 그래도 아늑했으리라.

곱게 신발까지 앞에 가지런히 벗어두고 옹이진 발가락을 부끄럽게 두 겹 양말 속에 감추었습니다.

냄새가 고약하지만 따뜻합니다.

사시사철을 그들은 겹겹이 옷을 입고 지냅니다.

속살을 들키고 싶지 않는 사람처럼 그렇게 옷으로 무장을 한 채, 알아볼 수 없는 만큼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얼굴마저 가립니다.

그래도 나는 나를 숨길 수 없으므로 내 영혼을 무장해제 시키기 위해 아침녘부터 위장에 소주를 붓곤 합니다.

이 안전장치가 없다면 그들은 오래된 노숙(露宿)을 버티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도 한때 노숙자였습니다.

이슬을 피할 한 자락 겉옷을 입고 나무 밑에서 제자들과 힘겨운 잠을 청했을 것입니다.

낮은 피곤할수록 좋지요.

몸을 부려 정해진 목표도 없이 헤매어야 피곤한 육신이 피부에 스며드는 한기(寒氣)를 이기고 잠들게 해줄 테니까요.

삶이란 참 고단한 투쟁입니다.

삶이란 언제나 예측을 벗어나고, 제 맘대로 궤도를 만들어 도는 유성처럼 잡을 방법이 없다고 생각할 때가 간혹 있지요.

 나는 지금 어디서 밥을 빌어먹고 있는가, 생각합니다.

내게 일감을 맡겨준 그 사람에게서 밥을 빌어먹고 있는가?

아님 하늘과 같은 은혜로 우리를 채워주시는 하느님께 기대어 밥 한 술 얻어먹는가?

내가 오늘 하룻밤을 위하여 신문쪼가리와 종이상자를 구하러 다니지 않아도 좋으니

아마도 나는 억세게 운 좋은 사나이로 일기에 기록될 것입니다.

김사인의 시를 읽었습니다.

노숙. 한 생애를 동행하여 준 고마운, 그리고 미안한 육신에게 살살 말을 건네고 있는 거지요.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였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김사인-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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