言/젖지않을江

은총을 길어 올리는 마중물

oldhabit 2008. 5. 24. 10:58

며칠째 자신감을 분실한 채
땅 이 꺼져라 한숨만 쉬어댑니다.
길게 쉬어대던 한숨의 끝자락에서 한 생각을 길어올립니다.

어릴적 마당에 놓여있던 펌프에
물을 붓고 몇 번을 움직여주면
신기하게도 물이 콸콸 쏟아지던 기억이 납니다.
그것이 재미있어 자꾸만 물을 부어 보고
속에 무엇이 들어있나 들여다보곤 했습니다.
시원스레 물이 나오다가도 펌프질을 하지 않으면
금새 꼬르륵 소리를 내며 물줄기를 거두던 펌프의 기억이
분실한 자신감을 되찾아줍니다.

‘하느님 뜻대로 살겠습니다’ 라고 철썩 같이 약속하고도
막상 새로운 소임들이 주어지면 참 버겁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 이것을 어찌 할 수 있나?’
‘난 아무래도 능력이 없나 보다.’
자꾸만 뒷걸음질 쳐지는 생각만을 늘어놓으면서
핑계란 핑계는 다 갖다 붙여놓고 있습니다.

내 의지라는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있으면
차고 넘치는 물을 얻을 수 있는데,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있으면
내 안에, 우리 안에 흘러넘치는 풍요의 물줄기를
발견할 수 있는데...
자꾸만 시선이 하느님이 아니라 나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한 바가지의 물이 무엇을 할 수 있나' 라는 절망을 딛고
그 바가지의 물을 펌프에 부을 때 기적은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점점 더위에 지치는 계절입니다.
혹여 자신감이 없어서 마음 고생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한 바가지의 마중물을 시원하게 인생 안에 부어보십시오.
정말 멋진 기적이 일어납니다.

바오로딸 홈지기수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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