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 三 暮 四
자연이 본래 한얼굴임을 모른 채 사물의 개별성을 고집하여 헛되이 지력을 소모하는 것을 「아침에 세 개(朝三), 저녁에 네 개(暮四)」라 한다. 사육사가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 주겠노라』 하자 원숭이들이 벌컥 성을 냈다. 사육사가 다시 『그렇다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겠노라』고 하자 모두 흡족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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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儒家)는 사상의 깊이에서는 몰라도 문체의 매력에 있어서는 도가(道家)에 한발 뒤진다. 공자는 설교조였고,맹자는 논증적이었다. 이들의 문체는 대체로 건조하고 딱딱하다. 묵자의 경우는 더하다. 법가(法家)의 저작인 『상군서』 또한 강압적이고 단조롭다(한비는 예외다). 장자는 당대의 모든 언설이 하나의 중심적 교의에 고착됨으로써 편협과 폐단을 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주를 규율하는 도(道)는 다양한 중심과 복합적 맥락을 갖고 있어 교조나 구호로는 그 실재를 적절히 드러낼 수 없다. 이와 같은 인식이 장자로 하여금 풍부한 상상력과 신화적인 제재, 우화로 가득한 독특한 문체를 선택하게 했으리라 생각한다.
장자는 자신의 글에 세 가지 문체가 뒤섞여 있다고 밝혔다.
첫째는 중심 되는 철학적 교의를 직설적으로 제시한 글이다. 이것을 이름 그대로 「근엄하고 무거운 글」, 즉 중언(重言)이라고 했다. 가령 『장자』의 첫권인 「소요유(逍遙游)」는 다양한 언설이 교직되어 있지만 그 핵심은 『지인(至人, 경지에 이른 사람)에겐 에고가 없고(無己), 신인(神人)에겐 의식적 행동이 없으며(無功), 성인(聖人)에겐 우리의 상대적 범주와 판단을 적용할 수 없다(無名)』에 집약되어 있다. 이것이 중언의 예에 속한다.
둘째는 그의 이야기 솜씨다. 근엄한 학자들은 이 능력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전달하는 솜씨 또한 중요하다. 아니 이 둘은 궁극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문체는 사람이며,형식이 내용을 결정한다. 이 점에서 학자들은 코미디언과 대중강연자들로부터 적극적으로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장자는 탁월한 이야기꾼이었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묘사했다.
『과장이 심해 조리가 없었고, 내키는 대로 거침없이 내뱉느라, 발밑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도도한 변설은 다하지 않는 샘에서 물을 퍼내듯 무궁무진했다. 이를 말 그대로 「국자로 퍼내는 말(치언)」이라고 했다.
셋째는 우화다. 『장자』는 우화의 보고이다. 분량으로 보아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직설로 다가서기 힘든 비판이나, 인간의 상식과 허위를 뒤집는 역설에는 우화가 제격이다. 『장자』에는 수많은 가상인물, 신화 속의 동물과 의인화된 물건들이 등장하여 사실과 환상의 세계를 자유로이 넘나든다. 공자와 노자가 만나 도를 논하고, 귀뚜라미가 자기 세계에 갇혀 붕새의 뜻을 비웃으며, 우물의 개구리가 망망대해에 대해 듣고는 얼이 빠져버리기도 한다. 뱀과 바람이 자연의 유기적 신비를 노래하기도 하며, 장자 자신이 나비가 되어 무아(無我)와 필연의 세계를 그리기기도 한다. 『장자』는 우화의 파노라마이다. 대표적인 우화 하나만 들어보자.
장자의 대표적 우화
공손룡(公孫龍)이 위모(魏牟)에게 말했다.
『어려서 나는 옛 성왕의 가르침을 배웠고, 자라서는 인의(仁義)의 도덕을 알았다. 동이(同異)를 뭉뚱그리고 견백(堅白)을 뒤섞으며, 남이 부정하는 것을 긍정하고, 남이 논박하는 것을 정당화시켰다. 나는 온갖 학자들의 지혜를 곤혹케 하고, 뭇 사람들의 말문을 궁하게 했다. 나는 내가 최고의 경지에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장자의 말을 듣고는 놀라 멍멍해져버렸다. 내가 그보다 논변이 빠지는가, 혹은 지혜가 그만 못하냐. 그런데도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하겠다. 어떻게 된 판국인지 내게 그 연유를 일러다오』
위모는 책상에 기대 한숨을 내쉬고선 하늘을 우러르며 웃었다.
『그대는 어찌 우물 속 개구리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는가. 개구리가 동해바다의 거북에게 이렇게 말했다네.
「얼마나 즐거운가, 나는 우물 난간에 폴짝거리며 노닐다가 (피곤하면) 깨진 우물벽에 들어가 쉬며, 물 속에서는 겨드랑이로 헤엄치다 (또 피곤하면) 턱을 물 위에 내놓고 쉬노니. 뻘 속에 뛰어들면 몸과 발등을 숨겨 (위험을 피하지). 주변을 둘러보아 나만한 장구벌레나 올챙이 게가 어디 있으리. 게다가 웅덩이며 우물을 독차지한 즐거움이란 더할나위 없는 것. 자네, 이리 와서 어디 한번 둘러보게」
(그 권유를 따라) 동해의 거북이 (우물 속으로) 왼쪽 발을 내려놓기도 전에 오른쪽 무릎이 걸려버렸다. 발을 도로 빼낸 거북은 미안해 하며 바다에 대해 이렇게 들려주었다.
「(바다는) 천 리로도 그 너비를 재지 못하고, 천 길로도 그 깊이를 가늠하지 못한다네. 우왕(禹王)의 시대, 10년에 9년 동안 홍수가 쏟아졌지만 (물이) 불어나지 않았고, 탕왕(湯王)의 시대, 8년에 7년 동안 가뭄이 타들어갔어도 (물이) 줄어들지 않았지. 시간이 흘러도 그만, 물이 들어오고 나가도 그만이라. (외부의 변화에 영향받지 않는 것), 이것이 바다의 큰 즐거움이라네」
이 말을 듣고 우물 속의 그 개구리는 깜짝 놀라 얼이 빠져버렸다지』
이들 셋은 서로 얽혀 있다. 중언을 교의의 골격으로 하고, 치언이 이를 부연하는 살이 된다. 우화는 이렇게 이루어진 교설에 숨을 불어넣고 생기를 띠게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학계는 중언의 뼈대만을 중시할 뿐, 그 교설을 둘러싼 살과 피는 등한시한다. 또 문화계나 문학 일각에서는 외피나 기교에만 치우쳐 삶의 골격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보이지 않는다. 장자는 사상의 깊이와 문체의 매력에 있어서 동시에 뛰어났다. 그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심오한 철학자이면서 동시에 탁월한 산문작가였다.
하층 농민 출신 장자
장자는 기원전 4세기 전국의 혼란과 전쟁의 한가운데 살았다. 유가의 옹호자인 맹자와 거의 동시대이며 순자의 바로 앞세대에 속한다. 고향은 은나라의 유민들이 살던 송나라의 몽(蒙), 지금의 하남성 상구(商丘) 근처다. 은자 무리가 그렇듯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최초이자 유일한 전기인 사마천의 『사기』는 장자가 한때 그곳의 옻나무밭을 관리하는 직책을 맡은 적이 있다고만 적고 있다. 수도인 주(周) 왕실의 도서관장을 지낸 선배 노자에 비하면 그의 경력은 초라하고 보잘것없다. 노자가 귀족계급 출신이었던 데 비해 장자는 몰락한 지식인 아니면 하층농민 출신이었을 것이다. 장자는 평생을 가난과 궁핍 속에서 보냈다. 부와 권력에 대한 질시와 경멸 또한 신랄하기 그지없었다. 한 상인이 진나라 왕으로부터 수레 1백 대를 하사받고 장자에게 자랑을 늘어놓았다.
장자는 예의 그 치언의 독설로 이렇게 대꾸했다.
『진나라왕이 병에 걸려 의원을 불렀다. 종기를 터뜨려 고름을 짜내는 사람에게는 수레 한 대를 주고, 치질 난 항문을 핥아서 고름을 짜내는 자에게는 수레 다섯 대를 주었다. 치료하는 곳이 추잡할수록 수레의 수도 늘어났다. 당신이 그만한 수레를 받은 걸 보니 틀림없이 치질을 빨아준 모양이구먼』
장자의 명성을 들은 초나라 위왕이 장자의 명성을 듣고, 후한 예물로 그를 재상에 초빙했다. 장자는 그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천금은 큰돈이고 재상은 높은 벼슬이다. 그대는 교제(郊祭,하늘 제사)에 쓰려고 키우는 소를 알겠지. 몇 년을 잘 먹이고 비단으로 감싸지만 종내 죽을 곳으로 끌려간다. 그 순간 소는 구정물 속의 돼지였으면 하고 바라겠지만 이미 때는 늦은 것. 가거라, 내 목에 고삐를 걸지 마라. 더러운 뻘밭에서 꼬리를 끌며 나는 나의 자유를 구가하련다』
이 태도를 우리는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다. 공자가 천하를 주유(周遊)할 때 그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던 은자의 무리를 기억할 것이다. 「세상이 온갖 탁류로 넘실거리는데 그 흐름을 나뭇가지 하나로 막아보려느냐」고 안타까워하던 사람들, 그리고 「차라리 농사일이나 부지런히 익힐 일이지」라며 닭을 잡아주던 사람들이 그들이다. 춘추전국은 주의 봉건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재편되는 과도기였다. 크고 작은 전쟁과 부역에 시달리며 백성들의 삶은 더욱 곤고해져 갔다. 죽음과 기아가 일상이 되어가면서 혹은 숨고, 혹은 도적이 되었으며, 혹은 저항했다. 장자는 이들 피압박민의 고통과 절망을 대변하는 철학자였다. 그의 저술에 꼽추나 언청이 같은 기형아와 더불어 전쟁에서 죽은 해골과 상이자, 그리고 형벌로 발이 잘리고 코를 베인 사람들이 지천으로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무관심에서 오는 평정
장자는 이들을 선동하여 민중혁명을 꾀하지 않았다. 그러기엔 그가 너무나 개인적이고 몽상적이었다. 그렇다고 기존 권력과 손잡고 평화와 질서를 모색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러기엔 권력에 대한 혐오와 비관이 너무나 뿌리 깊었다. 앞의 길이 묵가적 지향이라면, 뒤의 길은 유가적 기획이었다. 그는 이 둘을 거부했다. 오히려 당대에 제시된 모든 처방과 묘책을 거부하고 비판했다. 『장자』의 마지막 「천하(天下)」편은 당대의 학술에 대한 그의 전방위적 비평을 담고 있다.
그는 당대의 학술을 넘어 사회주의적이지도 않고 귀족적이지도 않은 전혀 다른 길을 제시했다. 이를 무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자연주의적이란 말은 어폐가 있다. 민주주의도 제한 없이 할 소리는 아니다. 신비주의적이란 말은 어떨까. 장자는 우주의 필연성을 자각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것을 「운명에의 사랑(amor fati)」이라 부를 수 있을까. 사랑이란 말에는 인위적 의식적 냄새가 묻어 있다. 차라리 자신에 대한 적극적 무관심에서 오는 평정이라면 어떨까. 내가 지금 무슨 횡설수설인가. 그의 생각을 알려면 우선 세계와 영원 혹은 진리에 대한 그의 독특한 시각을 알아보아야 한다.
장자의 글은 직접 읽어야 한다
노자라는 인물과 『노자』라는 저작을 둘러싼 분분한 논란은 도서관을 채울 정도로 호한하다. 나는 노자가 공자와 동시대일 것이며, 그 저작 또한 하나의 통일된 정신에 의해 쓰인 신비스러운 잠언집이라고 생각한다. 절충이나 편집으로는 그런 글이 가능하지 않다. 물론 어울리지 않는 글이 끼어 있고, 가필의 흔적도 분명하다. 그렇다고 진위를 의심하는 것은 잡지나 논문에서 오탈자 하나를 발견하고 책을 쓰레기통에 던져넣는 것처럼 어이없는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장자라는 인물의 실존 여부를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기원전 369년에서 286년 무렵에 살았던 그 사람이 『장자』 33편 가운데 내편(內篇) 7편을 직접 지었을 것이라는 데도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나머지 외편과 잡편이다. 문체의 보폭이 걸리적거리고, 생각의 폭이 깊지 않다는 점을 보면 상당량이 후학의 작품일 것이다. 그렇지만 내 깜냥으로는 「추수(秋水)」편만큼은 장자 자신의 것이라고 믿는다.
『장자』 33편의 핵심은 내편 7편에 있고, 또 그 가운데 핵심은 앞의 두 장 「소요유(逍遙游)」와 「제물론(齊物論)」에 있다. 소요유는 장자가 도달하고자 한 이념을 우화와 비유로 그려내고 있고, 제물론은 그의 사유의 핵심을 논증적으로 조직해 놓은 명문이다. 제물론에는 여러 개의 모티브가 혼재하고 예의 치언과 우언이 중언을 둘러싸고 있다. 자칫 글의 맥락을 놓치면 전체적 메시지를 놓치고 엉뚱한 곳에서 헤매기 쉽다. 그만큼 그의 문체는 분방하다.
나는 장자에 관한 한 지루한 해설보다는 그의 글을 직접 읽어보라고 권하는 사람이다. 그의 활달한 문체의 화려함과 속도에 비해 나의 산문적 보행은 답답하고 숨막힐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감상에 편하도록 단락을 재배치하고 최소한의 정지작업만 해주기로 한다. 물론 적절한 번역이 있어야 한다. 기존 번역은 아무래도 의미 확인과 맥락 연결, 그리고 무엇보다 문체의 특색까지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는 듯해 어설프나마 내가 직접 해보았다.
우선 인간의 현실을 장자는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육신의 탈을 일단 뒤집어쓰면 생명은 지쳐 쓰러질 때까지 앞으로 나아간다.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대끼며 고삐를 다잡을 수 없이 내몰리는 삶. 참으로 슬프지 아니한가. 일평생을 수고하고도 그 열매를 누리지 못하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면서도 무엇을 위해서인지 모른다. 애달픈 노릇이 아니랴. 사람들은 영원(不死)을 말한다만 그것은 쓸데없는 떠들썩. 육신은 해체되고 정신도 흩어진다. 참으로 애달프지 아니한가. 삶이란 이렇게 곤고한 것일까. 다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만 이리 곤고히 여기는 것인가….
잠들었을 때 막혀 있던 정신은 깨어나며 활동을 시작한다. 주어진 상황과 얽혀 날마다 이어지는 씨름질. 어떤 이는 설렁설렁, 어떤 이는 노련하게, 어떤 이는 음험하게. 자잘한 걱정거리에 잠 못들다 거대한 공포에 질리는 우리네 인생. 시비를 가릴 땐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주저없이 날다가, 붙잡은 것을 지킬 땐 하늘에 맹세라도 한 듯 꿈쩍도 않는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들어간다. 가을과 겨울, 쇠퇴와 소멸의 어두운 그림자에 덮여. 돌이킬 수 없는 길을 따라 점점 빠져드는 늪. 마침내 지치고 눌려, 낡은 하수구처럼 막힌 죽음 가까이의 정신은 떠오르는 빛을 다시 보지 못한다.
장자의 현대성
장자가 그리는 삶의 모습은 2천년 전의 것 같지 않게 현대적이다. 그래서 그의 사상과 실존주의의 비교가 심심치 않게 이루어지고 있다. 곤고하고 희망 없는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의 운명에 대해 장자는 안이한 사회경제적 진단을 내리려 하지 않는다. 그는 즉물과 피상을 넘어 생명의 본질과 그 소외에 대한 철학적 통찰에까지 들어갔다. 그리하여 그는 인간의 비극이 더 많이 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았다. 물론 유가를 비롯한 동서양의 내로라하는 철인들도 이 사실을 확인하기는 했다. 이들은 대체로 삶에 대한 인간의 의지를 긍정한 다음, 이를 분배하고 관리하고 조정하는 인문적 방식을 모색했다. 장자는 이와는 전혀 다른 길을 택했다. 장자는 이러한 욕망이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으로부터의 비본질적인 소외이며, 이 소외를 극복하지 않는 한, 비극은 종식되지 않는다는 것을 거의 예언자적으로 설파했다. 그렇기에 그의 언어는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이며 역설적이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영속시키려 하며 소멸을 두려워한다. 근본적인 사실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의 모든 영위와 문화는 바로 이 하드코어(hard core)를 둘러싸고 펼쳐져 있다. 장자는 이 무의식의 뿌리를 넘어서지 않는 한 해방이나 자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장자도 불교와 더불어 「나 없음(無我)」을 강조한다. 이 역설은 이해하기 쉽지 않고 구현을 시도해 보기는 더욱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철학을 신비주의 범주에 놓고 생각한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도 않다. 제물론의 서두를 보자.
나를 잃어버린 사람
성곽 남쪽의 자기가 책상머리에 기대 앉아 있었다. 하늘에 대고 한숨을 뿜어냈다. 그 모습이 넋나간 사람같았다. 곁에서 모시고 섰던 안성자유(顔成子游)가 말했다.
『어찌된 일입니까. 육신은 마른 나무 같으시고 정신은 다 타버린 재 같으시니. 지금 책상머리에 기대고 계신 분은 조금전의 그분이 아닌 듯합니다』
자기가 말했다.
『좋은 질문이다, 언(偃)아. 나는 지금 나를 잃었다(吾喪我).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느냐… 네가 사람의 울림(人 )은 들어 알겠지만 땅의 울림(地 )은 들어보지 못했을 게다. 땅의 울림은 혹 들어보았다 해도 하늘의 울림(天 )은 들어보지 못했을 게다』
자유가 말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자기가 말했다.
『바람은 우주가 뿜는 숨결이다. 지금은 잠잠하나 한번 일었다 하면 갈라진 틈새들이 한꺼번에 울부짖는다. 귀를 먹먹하게 하는 그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느냐. 깊고 우뚝한 산 속, 아름드리 나무들의 가지각색 구멍들. 콧구멍처럼, 입처럼, 귀처럼, 들보구멍처럼, 술잔처럼, 절구처럼, 깊고 얕은 웅덩이처럼 생긴 것들을 바람이 훑고 지나가면 세찬 급류가 흐르는 소리, 화살이 허공을 나는 소리, 호통치는 소리, 숨을 들이키는 소리, 이름을 부르는 소리, 목놓아 우는 소리, 웅얼거리는 소리, 울부짖는 소리, 그 소리들이 앞에서 부르고 뒤에서 화답하는 것을. 서늘한 가을바람엔 부드럽게, 몰아치는 폭풍엔 거세게 화답하는 소리들. 이윽고 바람이 지나가면 구멍들은 다시 잠잠해진다. 너도 보았겠지, 나무들이 흔들리고 가지가 서걱이는 모습을』
자유가 말했다.
『땅의 울림이란 뭇 구멍에서 나는 소리이겠고, 사람의 울림이란 피리에서 나는 소리겠죠. 그렇다면 대체 하늘의 울림이란 무엇입니까』
자기가 말했다.
『부는 바람에 호응하는 소리들은 (이제 보았듯이) 한결같지 않다. 구멍들은 각각 나름의 개성적인 소리를 발하고 있지. 그렇다면 과연 누구일까, (그들이 그렇게 울도록) 가슴을 휘젓는 사람은… 』
도(道)를 바라보고 그 흐름에 실린 사람은 흡사 「나를 잃어버린」 사람 같다. 그런 사람은 인위나 의도의 흔적이 없으므로 육신은 마른 나무 같고 정신은 다 타 버린 재 같을 것이다. 거기까지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런데 사람의 울림이나 땅의 울림이 무엇이며, 이것이 지금의 주제와 어떤 연관을 지니고 있는지가 궁금할 것이다. 그가 국자로 퍼내는 동이의 물은 대체 얼마인지 가늠할 수 없다. 발랄한 재치와 비유, 이야기를 풀어가는 황홀한 솜씨에 그저 경탄할 뿐이다. 땅에는 수많은 악기들이 있다. 어떤 구멍이든 바람이 지나가면 음악을 연주한다. 문풍지의 떨림이나 처마끝 풍경소리, 후원 대나무밭의 파도소리. 장자를 대할 때는 얼마쯤 신화적 환기력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가령, 한겨울에 지붕과 창을 뒤흔드는 바람소리에 몸을 떨거나, 아무도 없는 깊은 산속이나 계곡에서 태고의 바람소리를 들어보아야만 장자가 알리고자 하는 신화적 상상력에 동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의 울림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언뜻 피리나 날라리를 연상한다. 사람의 숨을 불어 소리를 내는 악기가 이에 속할 것이다. 제자인 자유 또한 스승의 말을 그렇게 해석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글을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장자는 그 오해와 어긋남까지 계산해 놓았다. 그 장치는 놀랍다. 자신의 의도가 일상적 연상을 넘어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알려주는 연출인 것이다.
마음이 연주하는 곡조
기쁨과 노함, 슬픔과 즐거움, 걱정과 후회, 주저와 공포가 우리를 번갈아 찾아온다. 구멍에서 울리는 소리, 습기에서 피어나는 버섯처럼. 주야로 마음속에 갈마들지만 어떤 것이 어떻게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호라! 잠깐이라도 좋으니 이들이 말미암는 생성의 메커니즘을 붙잡을 수 없을까. 이 감정들이 없이는 내가 없고, 또 내가 없으면 이 감정들을 느낄 무엇이 없다. 겨우 여기까지 더듬을 뿐. 아무래도 모를레라, 놀이를 시키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참 주재(主宰)가 분명 있는 듯한데 거기에 이르는 단서가 가려있다. 움직이는 힘은 느껴지나 그 모습은 볼 수 없다. 안을 보면 실재하는데 밖을 보면 형태가 없다.
사람의 울림이란 피리소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이 연주하는 곡조를 가리킨다. 고요히 있던 인간의 마음이 이런 저런 계기로 격랑되어 온갖 감정의 변주를 자아내는 바로 그것을 일러 스승은 사람의 울림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흡사 고요한 교목이 불어오는 바람에 화답하여 가지를 서걱이며 울어대는 것과 동일한 이치이다. 그런데 과연 누가 바람을 불게 하여 대지와 인간의 악기를 울리고 있는가. 하늘의 악기를 연주하는 미지의 손은 어디에 있는가. 장자의 회의론은 여기서 출발한다.
(사람의 몸을 보자) 백 개의 뼈와 아홉개의 구멍, 그리고 오장육부를 갖추고 있다. 이 가운데 어느 것에 가장 큰 사랑을 베풀어야 할까. 너는 그 모두를 한품에 안는가, 아니면 어느 하나를 편애하는가. 이들 신체기관 모두는 종복인가. 종복들이 서로를 다스릴 수도 있지 않을까. 때로는 주인으로, 때로는 종복으로 번갈아 자리를 바꾸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 그들을 지배하는 참 주인(眞君)이 존재한다. 우리가 그 정체를 알건 모르건 상관없이 참 주인은 실재한다.
도가를 자연주의라 불러 그것을 무신론과 연결시키려는 통념이 있다. 그러나 이 말을 사용할 때는 주의해야 한다. 장자는 세계를 이루고(造物) 지배하는(主宰) 신(天君)이 있다고 말한다. 다만 그 신이 인격의 형태로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한 인격이 포괄하기에는 우주가 너무 크고 또한 너무 작다는 직관이 의인화의 유혹을 떨쳐냈다. 신은 그 스스로 있는 자다(自然). 천지를 운행시키면서 동시에 들꽃의 생육과 조락에 관여하는 이 불가해의 신비적 존재에 그는 도(道)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도(道)란 자연을 따르는 것
도는 천지를 뒤흔들고 인간을 뒤흔드는 바람 같은 존재다. 우리 인간은 그 바람의 지휘에 따라 울고 웃어야 할 오케스트라의 단원이다. 봄이 되면 꽃이 피고, 가을이면 잎을 떨구듯 인간은 도의 기획에 몸을 실어야 한다. 기쁜 일이 있으면 웃고, 슬픈 일이 있으면 운다. 그것뿐이다. 문제는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기쁜 일을 고착시키고, 슬픈 일을 차단하려고 하는 데서 생긴다. 그것은 절대자인 자연(自然)에 반하는 상서롭지 않은 일이다. 가령, 쇠가 주물틀에 부어지면서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보자. 「나는 호미 따위는 싫고 황금으로 장식한 천하의 명검이 될 거야」 라고 생각한다면 대장장이는 그 쇠를 재수 없다고 버릴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비극은 도의 자발적인 과정과 유기적인 연관을 벗어나 자신의 의지를 고집하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장자는 인간이 자연의 과정에 개입하고 재단하는 것을 금기시한다. 세계의 중심은 인간 너머에 있다는 것, 그리하여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는 오만을 버리라고 충고해 마지 않는다.
그리하여 자연의 모든 과정은 동등한 가치와 위상을 갖는다. 삶과 죽음은 동일한 과정의 양면이며, 미(美)와 추(醜) 또한 자연의 동일한 선택과 축복이다. 여기서 인간사의 근본범주인 시(是)와 비(非) 또한 자연의 필연성과 혼돈 안에서 빛을 잃는다.
예를 들어보자. (세상에는 가로 놓인) 들보와 (세로 놓인) 기둥이 있고, 얼그러진 문둥이와 쭉 빠진 서시(西施,춘추전국시대 최고의 미인)가 있다. 그뿐인가, 기괴하고 불거진 것들이 잡다하게 널려 있다. 그러나 길(道)은 이들 모두를 한자리에 세운다.
분리는 생성이요, 생성은 곧 소멸이라, 자연에는 생성도 소멸도 없다. 자연은 「하나」 속에 녹아 있는 것이다. 이치를 꿴 사람만이 (다양한 사물들이) 차별없이 한 얼굴임을 안다. 그리하여 그는 (유용성의 편견이 낳은) 사물의 다양한 외관(用)을 넘어, 있는 그대로의 자연(庸)에 깃들인다. 거기에는 각각 나름의 우주적 기능(用)들이 숨쉬고, 이 우주적 기능들이 자연의 전체적 통일(通)을 구성한다. 이 통일성에서야 진정한 앎이 가능하고, 그 앎을 통해 인간은 길로 다가선다. 여기서 「나」의 주관적 관점은 활동을 그친다. 그렇더라도 의식은 그 소식을 감지하지 못한다. 길이란 그런 것이다.
자연이 본래 한얼굴임을 모른 채, 사물의 개별성을 고집하여 헛되이 지력을 소모하는 것을 아침에 세 개(朝三)라 한다. 아침에 세 개(朝三)란 무엇인가. 사육사가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暮四)를 주겠노라』 하자 원숭이들이 벌컥 성을 냈다. 『그렇다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겠노라』 하자 다들 흡족해 했다. 종류와 개수에 변함이 없는데도 희로가 엇갈린 것은 주관적 감정의 장난이다. 이런 까닭에 그 크신 분(聖人)은 시비와 대립을 하나로 녹여 「자연의 균형(天鈞)」에 몸을 의탁하신다. 이를 일러 「두 길을 함께 간다(兩行)」고 한다.
장자의 독설은 지독하다. 종류와 개수에 변함이 없는데도 일희일비하는 원숭이는 다름아닌 우리 모두의 얼굴이다. 우리는 아직 충분히 진화하지 못한 것이다. 조삼모사(朝三暮四)는 자연의 궁극적인 통일, 무분별의 혼돈을 바라보지 못하고 사물을 구분하고 가치를 매기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풍자하고 있다. 관건은 인간이 삶의 의지를 넘어 죽음을 초연히, 아니 또다른 축복으로 맞이할 수 있느냐에 있다. 장자는 스승이나 친구나 아내의 죽음 앞에서 바가지를 두드리며 웃고 떠드는 장면을 자주 그렸다. 그 앞에서 잡다한 언설과 시비와 논란은 어린애 장난이거나 쓸데없는 법석이다. 삶과 마찬가지로 죽음도 자연의 축복임을 알 때 마음의 현묘한 깊이에서 비로소 관조와 웃음이 피어난다. 장자의 절창 가운데 하나를 소개한다.
어찌 알리, 삶을 기꺼워하는 것이 미혹이 아닌 줄을. 또 어찌 알리, 죽음을 두려워 하는 것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아닌 줄을. 여희(麗姬)는 애(艾)땅 수비대 관리의 딸이었다. 진(晉)나라가 (국경을 침입하여) 데려가려 하자 그녀는 옷섶이 흥건할 만큼 울고불고 했었다.
그러나 막상 왕의 처소에 들어 비단금침을 두르고 산해진미를 맛보고 난 다음에는 처음의 그 어이없는 눈물을 후회했다. 어찌 알리, 죽어 저승에서, 살았을 적 그토록 삶에 집착했던 것을 후회하게 될는지. 꿈 속에서 술을 즐기다가 아침에 깨어나서는 목놓아 울지도 모르고, 꿈 속에서 목놓아 울다가 아침에 깨어나서는 흥겨운 사냥길에 나설지도 모른다. 꿈 속에서는 그러나 그것이 꿈인 줄을 모른다. 혹 꿈 속에서 그 꿈을 해몽까지 하더라만 깨어나기까지는 그것이 꿈인 줄을 모르는 것이다.
큰 깨침이 있어야 우리의 삶이 진정 한바탕 큰 꿈임을 알아채리. 바보들은 자신들이 깨어 있다 여기고, 우쭐거리면서 이 사람은 임금, 저 사람은 머슴이라 짚어댄다. 얼마나 굳어버린 영혼인가. 공자도 그리고 너도 하나의 꿈이다. 너희들이 꿈이라고 말하는 나 역시 꿈이다. 이것은 역설이다. 이 이치를 풀어주려 크신 분이 오시리라. 그날이 오기까지 만 세대가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혹 뉘 알리, 지금 저 길모퉁이에서 그 분과 맞닥뜨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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