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점
-조병화-
일체의 수속이 싫어
그럴 때마다 가슴을 뚫고 드는
우울을 견디지 못해
주점에 기어들어 나를 마신다.
나는 먼저 아버지가 된 것을
후회해 본다.
필요 이상의 예절을 지켜야할
아무런 이유도 나에겐 없는데
살아간다는 것이 지극히 우울해진다.
한때 이 거리가
화려한 꽃밭으로 보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력서를 쓰기 싫은
그날이 있어부터
이 거리의 회화를 나는 잊었다.
한 여자를 사랑한다는
그러한 수속조차 이미 나에겐 권태로워
우울이 흐린 날처럼 고이면
눈 내리는 주점에 기어들어
나를 마신다.
산다는 것이 권태로운 일이 아니라
수속을 해야할 내가 있어
그 많은 우울이 흐린 날처럼 고이면
글 한자 꼼짝하기 싫어
눈 내리는 주점에 기어들어
나를 마신다.
아버지가 된 그 일이
마침내 어쩔 수 없는 내 여생과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