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원
-조지훈-
아무리 깨어지고 부서진들
하나 모래알이야 되지 않겠습니까.
석탑을 어루만질 때 손끝에 묻는 그 가루같이
슬프게 보드라운 가루가 되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촛불처럼 불길에 녹은
가슴이 굳어서 바위가 되던 날
우리는 그 차운 비바람에 떨어져 나온 분신이올시다.
우주의 한 알 모래
자꾸 작아져도 나는 끝내 그의 모습이올시다.
고향은 없습니다.
기다리는 임이 있습니다.
지극한 소망에 불이 붙어
이 몸이 영영 사라져 버리는 날이래도
임은 언제나 만나뵈올 날이 있어야 하옵니다.
이렇게 거리에 바려져 있는 것도
임의 소식을 아는 이의 발밑에라도 밟히고 싶은 뜻이옵니다.
나는 자꾸 작아지옵니다.
커다란 바윗덩이가 꽃잎으로
바람에 날리는 날을 보십시오.
저 푸른 하늘가에 피어 있는
꽃잎들도 몇 萬年을 닦아온 조약돌의 화신이올시다.
이렇게 내가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것도
스스로 움직이는 생명이 되고자 함이올시다.
출렁이는 파도 속에 감기는 바위
내 어머니 품에 안겨
내 태초의 모습을 환상하는 조개가 되겠습니다.
아- 나는 조약돌
나는 꽃이팔
그리고 또 나는 꽃조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