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의 배타성은 어디서 오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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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의 배타성은 어디서 오나? 1. 최근 들어 공과 사를 가리지 못하는 일부 몰지각한 공직자들의 종교 활동이 우리 사회에서 크게 문제가 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개신교 신자들로서, 민주사회의 기본질서에 반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 그들의 행동이 순수한 ‘신앙적’ 동기에서 유발된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계산에 의한 것인지 쉽게 판단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사실은 현 정권의 출범과 더불어 그들의 행위가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도 유교가 한국인의 심성, 사고방식, 생활양식, 가치관 등을 음으로 양으로 지배하고 있지만, 조선조 시대에 불교와 천주교를 탄압했던 것처럼 타 종교를 억압하거나 마찰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오늘의 유교는 종교의 차이를 넘어서 전 한국인을 하나로 묶어주는 일종의 시민종교(civil religion)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불교 신자이건 그리스도교 신자(천주교, 개신교)이건 한국인으로서 유교 윤리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교는 우리 사회에서 거의 대등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 불교와 그리스도교 사이의 완충 역할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우리 사회에는 종교 갈등으로 인한 심각한 사회분열은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장로 대통령’ 이명박 정권의 출범과 더불어 위협을 받고 있다. 예전에 ‘장로 대통령’ 이승만 정권 때에도 정권의 기독교 편향이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그 당시와 현재의 상황은 두 가지 면에서 판이하다. 하나는 이승만 정권 당시 기독교인의 수가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사회적 소수였다는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당시 불교계가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잠을 자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은 이 모든 것이 달라졌다. 기독교는 이미 사회의 주류 종교가 된지 오래고 실제로 불교나 가톨릭보다도 더 큰 사회적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한 편, 불교계는 종교적 각성과 더불어 각종 개혁 세력과 집단이 등장하면서 정치의식이나 사회참여 면에서도 예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 불교계의 집단적 행보는 이러한 달라진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오늘의 불교계와 기독교계(소수 진보적 기독교 진영을 제외한)의 대립은 잠재적으로 매우 위험한 수위에 도달해 있다. 오늘의 이 모임은 일부 기독교 신자 공직자들의 몰지각한 행위가 단순히 부주의나 실수라기보다는 그들의 종교적 신념과 사명감을 반영한 것이며 그러한 신념의 배후에는 타 종교에 대한 한국 기독교계 일반의 배타성과 공격적 선교열이 작용하고 있다는 판단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우리는 묻는다. 한국 기독교의 지독한 배타성과 공격적 선교열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삼천만을 그리스도에게로,’ ‘전 국민 복음화 운동’ 등 비 그리스도인들이 들으면 섬뜩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구호를 아무렇지나 않게 외쳐 온 한국 기독교, 뻔히 위험지역임을 알았을 터인데도, 그리고 엄연히 기독교 선교가 금지된 국가임을 알면서도 무모하게 전도 여행을 감행하는 한국 교회의 선교 열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2. 이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우리가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은, 종교적 배타성과 공격적 선교가 흔히 생각하듯이 한국 기독교계를 지배하고 있는 이른바 ‘근본주의’ 신앙이나 보수적 복음주의 신앙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고 문제의 근본적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리스도교는 본래부터 선교하는 종교다. 처음부터 선교의 사명을 강조하고 실천하는 종교로 시작했다. 기독교인 치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명령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하늘과 땅과 우주만물을 창조한 유일신 숭배(monotheism)의 출현은 인류 역사상 매우 획기적 사건이었다. 유일신 신앙이 출현하기 전 다신 숭배(polytheism) 시대에는 인류는 토착적 지역신, 혈연에 관계된 조상신, 부족신 민족신들을 섬겼다. 따라서 한 집단이 믿고 섬기는 신을 다른 집단들도 믿어야 한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천지를 창조하고 모든 인류를 내고 인류 역사 전체를 관장하는 ‘보편적’ 유일신 신앙의 출현과 더불어 ‘우상숭배’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으며 ‘참 신’과 ‘거짓 신’의 구별이 생겨나게 되었다. 지극히 역설적이지만, 유일신 신앙은 시작부터 보편성과 배타성이라는 양면을 지니고 출발한 것이다. 유일신 신앙의 원조인 유대교의 경우,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과 특별한 관계를 맺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민족신적 개념과 선민의식으로 인해 타 민족, 타 종교에 대한 배타성의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보편주의의 폭력성을 제어하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더욱이 유대교는 역사적으로 타 민족, 타 종교를 정치적으로 지배할만한 힘을 누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을 힘으로 개종시키려는 제국주의적 신앙의 유혹에 노출되지도 않았다. 유대교는 유일신 신앙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메시지를 인류 구원의 보편적 진리로 전파하는 선교적 종교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3. 이와 대조적으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 ‘새 이스라엘’을 자처하는 그리스도교는 처음부터 강력한 선교적 종교로 출발했다. 그리스도교에 따르면,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경륜 상 유대교는 구약의 예언을 성취한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과 더불어 더 이상 존재 이유가 사라진 ‘극복된’ 종교이며 ‘극복되어야 할’ 종교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교는 애초부터 반유대주의(antisemitism)를 안고 출발한 종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가 하면 지중해 문화권 일대로 진출한 그리스도교는 가는 곳마다 토착적 다신 신앙과 문화, 이른바 ‘이방종교’(paganism)를 파괴하거나 대체하는 배타적 종교가 되었다. 그리스-로마-이집트의 다신 숭배적 요소들을 성인 숭배로 흡수하거나 대체하는 한편, 심오한 그리스 철학 사상은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흡수해서 신학을 발전시키고 정교한 교리 체계를 수립함으로써 진리의 ‘보편성’을 강화했다. 유일신 신앙과 그리스 철학의 주지주의적 전통이 손을 잡고 이를 강력한 교권이 뒷받침하면서 그리스도교는 서양 고대와 중세를 지배하는 종교로 군림했다. 율법과 실천 중심의 유대교 신앙이 이론과 교리 중심의 신학적 종교로 변화하면서 ‘정통교리’(orthodox)의 이름 아래 인간의 자유로운 사상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종교가 된 것이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유대교의 유일신 신앙과 그리스 철학이 손을 잡았다 하지만, 둘은 물과 기름처럼 좀처럼 융화되기 어려운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며, 실제로 서구 지성사는 계시(revelation)와 이성(reason), 자연과 초자연, 철학과 종교의 대립과 조화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의 역사였다. 하지만 둘을 결코 하나가 되지 못했으며, 크게 보아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둘은 각기 다른 길을 가게 되었으며 계몽주의 이후의 서구 사상사는 간단히 말해서 이성이 하나님의 위치를 대신하게 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길희성/ 서강대 종교학 명예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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