言/젖지않을江

나는 세상을 너무 사랑할까 두렵다

oldhabit 2009. 10. 8. 11:34

  나는 세상을 너무 사랑할까 두렵다

 

 

                       -이기쳘-

 

 

나팔꽃 새 움이 모자처럼 불룩하게 흙을 들어 올리는 걸 보면 나는 세상이 나무 아름다워질까 두렵다.

어미 새가 벌레를 물고 와 새끼 새의 입에 넣어주는 걸 보면 나는 세상이 너무 따뜻해질까 두렵다.

몸에 난 상처가 아물면 나는 세상을 너무 사랑할까 두렵다.

 

 

저 추운 가지에 매달려 겨울 넘긴 까치집을 보면 나는 이 세상을 너무 사랑할까 두렵다.

이 도시의 남쪽으로 강물이 흐르고 강둑엔 벼룩나물 새 잎이 돋고 동쪽엔 살구꽃이 피고 서쪽엔 초등학교 새 건물이 들어서고 북쪽엔 공장이 지어지는 것을 보면 나는 이 세상을 너무 사랑할까 두렵다.

 

 

그러고 보면 나는 이 세상 여리고 부드러운 것만 사랑한 셈이다.

이제 좀 거칠어지자고 다짐한 것도 여러 번, 자고 나면 다시 제 자리에 와 있는 나는

아, 나는 이 세상 하찮은 것이 모두 애인이 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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