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몬 숭배도 교회의 이름으로? | ||||||||||||
[교회와 상업주의-황경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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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붙이기, 영성센터 건립 사업
얼마 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서 인천교구의 한 사제가 교구내에 300억이 드는 “국내최대” 영성교육피정센터를 건립하는 것과 관련해 여러 문제점을 제기했다 (2009년 11월 9일자). 절차상의 일방적 밀어붙이기, 공사비 300억에 대한 정확한 산출근거의 부재, 국내최고의 영성센터가 현시점에 필요한 이유 등, 이 문제와 관련해 일반 평신도가 품고 있을 법한 생각과 불만을 여과없이 전달해 이 문제가 갖는 심각성을 환기했다. 그 가운데서도 “전용면적 17평 미만 주택에 사는 주민이 80%가 넘는 우리 동네 교우들에게 세대당 백만 원이 넘는 돈을 내라는 말을 나는 도저히 할 자신이 없다”는 이 사제의 고백은, 가난한 이를 우선적으로 배려하려는 사목자로서 절실한 고민을 드러내는 한편, 이 센터 건립이 가난한 신자의 삶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있음을 고발하고 있다고 보인다. 그러나 한 사제의 이같은 신실한 고민이 인천교구 평신도 전체의 현실적 문제해결로는 이어질 것 같지 않다. 지난해 10월 25일치 인천교구 주보를 통해 밝혔듯이, 강화에 있는 인천가톨릭대학교 근처 산기슭에 대지 9,000여 평, 연건평 4,000평 규모의 영성센터가 들어설 예정이고 총비용이 약 300억 원이니, 세대 당 평균 100-150만 원을 내야하는 것은 오로지 평신도의 몫으로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평신도는 봉이어야 하는가? 요즘같이 경제가 어려워 너도 나도 “안 쓰고 안 먹자”는 상황에서 그처럼 큰 돈을 내야 한다면, 최소한 그것의 필요성에 동의한다는 형식적인 동의라도 거쳐야 하지 않겠는가?
교회 안의 최고최대 바람, 소공동체운동은 뭐지? 이런 상황에서 보자면, 인천교구의 300억짜리 영성센터 건립도 그리 큰 문제가 아닌 것도 같다. 어쩌다가 조그만 신앙인 공동체로 시작해 그 정신으로 살자고 몇십년 동안 “소공동체 운동”을 벌이고 있는 한국 천주교회가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가? 하느님과 맘몬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한 예수의 말은 이제 교회에서 버림받아 죽어 버린지 오래고, 소공동체 운동도 광내기 위해, 그저 명분만을 위한 위선적 행위였다고밖에 달리 생각할 수 없게 됐다.
나사렛 촌사람이었던 예수같은 사람들 주눅들지 않을까
인천교구는 몇백억짜리 영성센터를 지으면 교회의 영성도 그 돈에 비례해 더 깊고 넓어 질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천진암 성전의 공사책임을 맡은 사제가, “이 성전은 토착화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 일 만큼이나 황당하고 터무니없다. 이렇게 크고 화려한 건물에, 나사렛 촌사람이었던 예수같은 가난한 이들이 주눅이 들어 들어갈 수나 있을까, 생각하기조차 부끄럽다. 물론, 공기 좋고 물 맑은 한적한 시골에 현대식 시설을 지어 교구민에게 쾌적한 분위기에서 피정도 하고 교육도 하도록 하면 이용자에게는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영성교육과 피정을 위해서라면 기존의 가톨릭 센터나, 지역 차원에서는 본당에 있는 교육관을 활용하면 된다. 따라서 장소가 부족해서 교육과 피정을 하지 못해 그 많은 비용을 들여서 영성센터를 지어야 한다는 말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더욱이 “도심 포교”를 외치며 절간을 도회지에 짓고 있는 현재 불교나 다른 종교의 선교활동의 방향을 보고 있노라면, 인천교구의 영성센터는 시대를 거꾸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절차상의 문제나 비용의 문제 뿐만 아니라 더 근본적인 것은 기본 방향부터가 현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라져 가는 가톨릭센터들..
1970년대부터 각 교구에 생긴 가톨릭 센터가 하나 둘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을 성찰하면, 300억짜리 영성센터 건립이야말로 얼마나 시대에 역행하고 있는가가 쉽게 이해된다. 교구 가톨릭 센터는 2차 바티칸 공의회가 끝나고 그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사회와 대화하기 위한 “대화창구”로서 구실을 해왔다. 당시로서는 가톨릭 센터가 그나마 척박했던 사회, 문화 풍토에 다양한 교양 및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더 시설이 좋은 구립 및 시립 센터가 생기는 한편, 교회 차원에서는 대화의 기본정신이 퇴색해가자 가톨릭센터는 점차 교구 단체를 비롯해 상업적으로 사무실을 임대해 주는 “장사”로 돌아서 버렸다. 그나마 건물이 오래되자 가톨릭 센터는 이제 역사의 뒷장으로 사라져 가는 운명을 맞고 있다. 가장 최근의 일로서, 지난 1월 광주시가 1980년 당시 광주시내 곳곳에서 발생했던 계엄군의 잔혹한 시위 진압행위와 이에 저항하는 시민의 투쟁을 전국과 세계에 알렸던 가톨릭센터를 인수하기로 한 것이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광주시는 센터를 인수해 이런 역사를 감안해 가톨릭센터를 민주인권센터로 조성한다고 한다 (전남일보 1월 22일치 참조). 광주대교구의 판단으로 가톨릭센터는 이제 그 운명을 다했고, 시에서 운영하는 시민의 센터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시설과 운영 면에서 더 낫다고 판단한 듯하다.
혹세무민하는 신앙
피터 판(Peter Phan)이라는 이름난 아시아 신학자가 인천 신학교를 방문하고는, “이렇게 넓고 좋은 시설이 외진 곳에 있어 많은 사람이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참 아쉽다”고 한 지적은, 이 300백 억짜리 영성센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대중교통으로 가기 어려운 그곳은 결국 “돈 있고 시간 있는” 사람만이 이용하리라 쉽사리 짐작된다. 더욱이 그 큰 돈을 들여서 짓는 그것의 용도를 가톨릭인만을 위한 시설로 국한한다면 너무도 낭비고, 지역 사회의 일부인 교회가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저버리는 일이 될 것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 끊임없이 대화하려는 자세야말로, 역사 속에 드러나는 하느님을 만나는 길이며 이런 영성이야말로 지금 교회가 지향해야 할 정신이다. 수천명을 한 번에 모아놓고, “스타 사제”를 불러서 하느님 믿어서 “은총도 받고 돈도 잘 벌어 행복한 신앙인”을 선전해대는, 70년대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아류식 신앙을 “영성”이라고 부르고 이를 가르치려 든다면, 인천 교구의 앞날은 어둡고 희망이 없다. 돈을, 맘몬을 교회의 이름으로 숭배하는 것을 “행복”이라고 가르치는 신앙은 혹세무민이요, 예수의 삶을 따르는 가난의 영성과 양립할 수 없다. 한마디로 말해서, 평신도의 처지에서 이 영성센터 건립은 원점에서부터 다시 검토돼야 한다. 주교와 참사 몇 명이 결정해버리고 난 뒤에, 형식적으로 사제에게 알리고, 신자에게는 무조건 봉헌을 강제하는 이런 비민주적 행태가 계속되는 한 교회는 여전히 중세를 헤매일 것이다. 교회 당국은 현대를 사는 평신도가 이렇듯 중세를 헤매고 있는 교회를 밝히 궤뚫어 보고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황경훈(아시아신학연대센터 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