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漢文書禮

천자문

oldhabit 2010. 4. 8. 17:21

                                  천자문

 
천자문(千字文)은 우리에게 알려진 연원이 꽤 오래됩니다. 

그 내용 중 많은 부분들이 중국의 삼국시대 이전 문헌에서 발견됩니다.

 

천자문의 최초의 작자는 삼국시대 위나라 학자이며 서예가인 종요(鍾繇)입니다.

그러나 종요가 지은 천자문은 어떤 체계가 서 있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 뒤 육조시대 양(梁)나라의 무제(武帝)는 명필이었던 왕희지의 필적 가운데 자신이 좋아하는 글자 천자를 골라서 문신인 주흥사(周興嗣)로 하여금 한 편의 체계적인 문장을 짓도록 하였습니다.

이에 주흥사는 글자들을 조합하여 사언(四言;네 글자)을 한 구(一句)로 하고 두 구(二句)가 한 연(一聯)이 되며 매 연(聯)의 끝에 운(韻)이 달린 한 편의 고시(古詩)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현재에 보는 천자문이며 이후 초학자의 입문서로 널리 각광을 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주흥사가 하루밤만에 천자문을 지었더니 그 고심이 얼마나 컸든지 머리털이 모두 하얗게 세어버렸다는 고사에서 천자문을 다른말로 백수문(白首文;흰 머리가 생기게 한 글) 이라고도 합니다.


천자문은 옛부터 글씨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교본으로 널리 이용하여 왔습니다.

 

해서천자문은 수나라 승려였던 지영(智永)의 <진초천자문>이 유명합니다.

지영은 왕희지의 7대 손으로 일지기 출가하여 절강성 영흔사에서 조상의 글씨를 30년간 연구하여 대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해서와 초서로 된 천자문 수 백벌을 써서 이웃의 사찰에 골고루 돌렸다고 합니다.

 

원나라 조맹부의 삼체(해서, 행서, 초서)천자문도 유명합니다.

당시의 대표적인 교양인이자 서예가였던 조맹부는 우리 나라 고려 후기와 조선전기의 서예에도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친 송설체의 주인공입니다.

그는 서예에 있어서 안진경의 체를 배격하고 왕희지의 전형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한 인물입니다.

특히 그는 삼체로 천자문을 써서 널리 보급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근대 대만의 우우임은 초서 천자문으로 유명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조선시대 한석봉의 해서천자문이 유명합니다.

석봉체의 전형을 이룬 글씨로 조선시대에 널리 읽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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