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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애마송병(愛馬頌屛) - 이석구(李石求·1775-1831)

oldhabit 2010. 4. 12. 12:44

 

 

          




 

고대부터 말은 충신의 상징으로 왕실과 귀족·문인·무인 모두에게 사랑받는 존재였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무장들의 말 사랑은 남달랐다. 한국마사회 마사박물관 소장 '애마송병(愛馬頌屛)'은 무인들의 이와 같은 말 사랑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병풍 속의 글은 조선 후기 총융사(摠戎使)를 지낸 이석구(李石求·1775-1831) 장군이 말에 대한 사랑을 문학으로 옮긴'애마송(愛馬頌)'으로, 북송(北宋)의 학자 주돈이(1017-1073)가 일찍이 연꽃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읊었던'애련설(愛蓮設)' 차용한 것이다.


주돈이의 연꽃사랑


'애련설'의 주요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물이든 육지든 초목의 꽃으로 사랑할 만한 것은 매우 많다. 진나라의 도연명은 유독 국화를 좋아했고, 당나라부터는 세상 사람들이 모란을 좋아했다. 나는 유달리 진흙에서 나오지만 더럽혀지지 않고, 깨끗하지만 교태를 부리지 않으며, (중략) 향이 멀수록 향기롭고 정정하며 깨끗이 서있어 멀리서 바라볼 뿐 가까이 잡고 희롱하지 못하는 연꽃을 사랑한다.

국화는 꽃 가운데 은일자요, 모란은 꽃 중에 부귀한 것이며, 연꽃은 꽃 가운데 군자다. (중략) 모란을 사랑하는 이가 많은 것은 참으로 당연하다!”

이 글에서 주돈이는 세상 사람들이 부귀의 상징인 모란을 좋아하나 자신은 군자의 품성을 가진 연꽃을 사랑한다는 점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은연중에 세속적이지 않은 자신의 고매한 인품을 드러낸 것이다. 주돈이는 조선시대 문인들이 주자 못지않게 흠숭하였던 인물이었으며 그의 ‘애련설’ 또한 많은 선비들이 애송했다고 한다.


'애련설'을 본뜬 '애마송'


이석구 장군의 '애마송'은 이 애련설의 구조를 거의 그대로 빌려왔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애마송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릇 육지에 사는 짐승들 가운데 사랑할 만한 것이 매우 많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유독 소를 사랑하고, 장수들은 유독 말을 사랑한다. 세상 사람들이 가축을 매우 사랑하지만 나는 말을 사랑하니, 용감무쌍하며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고, 전투에 나아가 물러나지 않으니 백수 가운데 충성스러운 것이 말이라 할 만하다. 주인이 죽을 위기에 처하면 제 몸을 바쳐 은혜에 보답하며, 주군에게 신의를 바치니 세상 사람들이 흔히들‘견마의 정성’이라고 칭송할 만하다.

천하를 내달리면 바람과 구름이 일고, 한 번 울부짖으면 천지가 진동하니, 말의 위용은 백수의 우두머리요, 그 공덕을 논하자면 가축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 아! 말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나 같은 이 드물다 들었으니 나만큼 말을 사랑하는 이가 누구이겠는가? 말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마땅하리라!"

원작의 형식을 그대로 빌려온 점이나 맨 끝 문장을 주장하듯 끝내버린 점에서 문학적 완성도는 높이 평가받지 못하지만 말을 사랑하는 마음을 열심히 글로 옮긴 한 무장의 순수한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소박한 무인의 글씨

이석구 장군은 이 글을 열 폭의 병풍에 남겼다. '애마송병'은 마지막 폭에 제목인 '애마송과 '총융사 이석구'라는 관지 그리고 인장이 보인다.

병풍 각 폭의 상단에는 팔각 혹은 각이 둥근 사각형을 오려 붙이고, 각기 다른 '마(馬)'자를 전서로 써서 장식성을 더했다. 진나라 이래 전통 전서체는 위아래로 길고 획들의 비수가 일정한 데 비해 병풍의 열 개 대형 '馬'자들은 전체 형태와 획들의 굵기가 제각각이어서 오히려 말의 움직이는 다양한 모습을 나타내는데 주력한 것으로 보인다.

폭마다 두 행씩 행초로 써내려간 문장은 전문가의 견해에 의하면 뛰어난 서체는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당시 시서화(詩書畵)가 문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해주는 중요한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또 다른 '애마설병'

육군박물관에도 이와 비슷한 병풍이 있어 주목된다. 고종 때 울릉도 검찰사를 지낸 이규원(李奎遠·1831-?)의 '애마설병'으로, 역시'애련설' 차용 작품이다. 문장과 서체가 상대적으로 더 세련된 편이라고 평가되나 무장들의 글에서는 문학적 완성도보다 그들의 지극했던 애마 정신을 읽는 것이 우선이다.

다시 마사박물관 소장 '애마송병'으로 눈을 돌려보면 지극히 고졸해 보이는 이 묵적에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천년을 이어져 내려온 무장들의 말 사랑이 꿈틀대는 것만 같다. 그것은 인간 사이의 우정, 그 이상의 것이었는지 모른다.


글=김정희 KRA한국마사회 홍보실 학예사

사진=KRA한국마사회 마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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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霓苑(예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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