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렸을 때 프랑스 작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팬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추천해주셨던 <개미> 소설을 읽은 뒤 초등학교 때 그의 모든 책을 전부 읽었습니다. 그때 나이로는 이해가 안 되는 내용들도 많았고, 소설 중간 중간에 나오는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부분은 읽기 힘들어 건너뛰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어려워도 재미있었고, 베르나르의 생각들이 저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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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 |
그중 최근에 나왔던 소설, <신>은 베르나르식 세계관에 종지부를 찍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동안 <타나토노트>와 <천사들의 제국>으로 이어지는 3부작을 완결 내는 작품이기도 했고, 그 엔딩도 신선했고요. 하지만 내용 전개는 그동안 보여주었던 것과 비슷해서 아쉬움이 남기도 했습니다. <타나토노트>에서 저승 연구자가 된 미카엘 팽송은 ‘천사들의 제국’에서 3명의 인간들을 도와주는 천사가 되더니 그 다음단계인 ‘신’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신 후보생이 된 미카엘 팽송은 신들의 학교에서 인간들을 이끄는 방법을 배워 훌륭한 신이 되어야만 합니다. 결국에는 마지막 한명만이 남게 되지요.
이 소설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각각의 신들이 맡은 민족의 이야기들입니다. 실제 역사적 인물들이 관리하고 조정하는 민족들의 이야기는 지구 역사를 부분 재현하는 듯 합니다. 전쟁으로 밀고나가는 민족이 있는가 하면, 문화적으로 발전되는 민족도 있습니다. 그때 신 후보생들이 이런 식으로 경쟁을 해나가는 모습을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최근 이 소설이 다시 생각나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최근 인터넷에서 부각되고 있는 패러디 시리즈가 있습니다. 사진에는 간디가 나옵니다. ‘순순히 금을 넘기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간디가 말합니다. 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한 간디가 이 게임에서는 Be폭력을 합니다. 바로 문명이라는 게임입니다. 너무 재미있고 중독성이 강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게임 목록에 들어가 있기도 하지요. 수험생이 이 게임을 하면 수능을 망치고, 대학생이 이 게임을 하면 학사경고를 받는다고 합니다. 과장된 면이 있지만 그 정도로 이 게임이 재미있다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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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최근 화제가 되고있는 간디 관련 패러디 |
근데 이 게임은 신 후보생들이 경쟁하는 방식과 굉장히 닮아있습니다. 자신이 일종의 신이 되어서 다른 신들과 겨루는 방식처럼, 이 게임에서는 하나의 민족을 선택해서 결과적으로 승리에 이끌도록 해야 합니다. 그 승리의 조건에는 무력을 이용한 승리도 있고, 지구를 탈출하는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승리도 있으며, UN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한 나라가 승리할 수도 있습니다.
처음 인터넷으로 이 게임을 보았을 때에는 별로 재미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머리를 필요로 하는 게임은 전혀 못하거든요. 그렇지만 이 게임의 악명이 높아 ‘도대체 얼마나 재미있기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몇주일 뒤 일이 생겨 집에 있는 시디를 정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디서 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문명IV의 인스톨 시디를 발견했습니다. 제 추측으로는 컴퓨터를 샀을 때 같이 온 번들 시디인 것 같았습니다. 호기심이 생긴 저는 다음날 컴퓨터를 켜고 시디를 넣었습니다. 설치가 끝난 뒤 게임을 실행시키니, Civilization IV라는 글자와 함께 지구가 배경에 있고, 웅장한 노래가 나오고 있었습니다(나중에 알고 보니, 이 노래의 이름은 'Baba Yetu'이고, 스와힐리어로 된 주님의 기도가 가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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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명IV의 시작 화면 |
굉장히 쉬운 난이도를 선택한 다음에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큰 지도가 나오면서 도시를 지을 수 있는 유닛이 나왔습니다. 이후 게임을 진행하여 고전시대, 중세시대, 르네상스 시대, 근대시대, 현대시대를 거쳐서 우주선을 만들어 승리를 하였습니다. 플레이를 하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점은 이 게임이 굉장히 체계적이었다는 것입니다. 도자기를 만들지 않으면 그 이후의 문화 발달을 진행할 수 없고, 노예제 해방을 위해서는 한 턴의 무정부상태가 필요하다든지. 여러 가지 상황들을 보면서 이 게임은 인류의 역사가 어떤 식으로 발전해왔는지, 또 하나의 기술이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쳤는지 쉽게 알게 해줍니다.
이 게임을 하고 베르나르의 소설과 이 게임의 공통점을 발견한 사람이 저 뿐만은 아닙니다. 그의 소설 <개미>의 마지막 권 개미 혁명에서는 막시밀리앵이 진화라는 게임을 플레이합니다. 여기서 소개되는 진화의 게임 방식은 부족을 선택하는 것, 스페이스 키를 누르면 10년이 지나간다는 것 등을 포함해 문명의 게임 방식과 아주 비슷합니다. 문명 1이 1991년에 나왔고, 개미 혁명이 1995년에 나왔다는 사실에서 보았을 때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문명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을 가능성은 높습니다. 그의 소설을 읽어보았을 때 이 게임에서 영향을 받은 부분이 많이 보입니다. 또 문명의 개발자 시드 마이어와 베르나르 베르베르 둘 다 프랑스인이라는 점이 공통분모이기도 합니다.
예전에 열심히 읽었던 베르나르의 소설을 직접 플레이한 것만 해도 너무 재미있었던 게임입니다. 그리고 이 게임을 한 뒤 <신>을 다시 읽고 싶어졌습니다. 또 이 게임을 플레이 한 결과 이 게임이 왜 재미있다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소문이 사실인 걸 확인한 순간, 시간은 굉장히 많이 지나가 있었습니다. 공부하는 데에도 이렇게 시간을 많이 쏟아야 하는데 말이지요.
이재익 /고등학교 1학년생입니다. 나름 작곡도 하는 컴퓨터 게임광이고.. 글을 쓰고 싶어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