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리꽃들 모여 핀 까닭 하나를
-장석남-
한 덩이의 밥을 찬물에 꺼서 마시고는
어느 절에서 보내는 저녁 종소리를 듣고 있으니
처마 끝의 별도 생계를 잇는 일로 나온 듯 거룩해지고
뒤란 언덕에 보랏빛 싸리꽃들 핀 까닭의 하나쯤은 알 듯도 해요.
종소리 그치면 흰 발자국을 내며
개울가로 나가 손 씻고 낯 씻고
내가 저지른 죄를 펼치고
가슴 아픈 일들을 펼치고
분노를 펼치고
또 사랑을 펼쳐요
하여 싸리꽃들 모여 핀 까닭의 다른 하나를 알아내곤 해요.
시집 '뺨에 서쪽을 빛내다' 창비.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