言/오래묵을詩

싸리꽃들 모여 핀 까닭 하나를

oldhabit 2010. 12. 22. 23:58

싸리꽃들 모여 핀 까닭 하나를

 

                    -장석남-

 

한 덩이의 밥을 찬물에 꺼서 마시고는

어느 절에서 보내는 저녁 종소리를 듣고 있으니

처마 끝의 별도 생계를 잇는 일로 나온 듯 거룩해지고

뒤란 언덕에 보랏빛 싸리꽃들 핀 까닭의 하나쯤은 알 듯도 해요.

 

종소리 그치면 흰 발자국을 내며

개울가로 나가 손 씻고 낯 씻고

내가 저지른 죄를 펼치고

가슴 아픈 일들을 펼치고

분노를 펼치고

또 사랑을 펼쳐요

하여 싸리꽃들 모여 핀 까닭의 다른 하나를 알아내곤 해요.

 

         시집 '뺨에 서쪽을 빛내다' 창비.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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