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깨어난 자
▲ 스스로 깨어난 자, 붓다, 카렌 암스트롱, 정영목 옮김. 푸른숲 2003 |
전설에 따르면, 고타마는 아버지의 궁전에서 괴로움을 모르고 살도록 강요받았는데, 우연한 기회에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된다. 그의 아버지는 고타마를 데리고 이듬해의 작물을 심기 전에 밭을 가는 의식에 참가한 적이 있다. 아버지 숫도다나는 어린 아들을 유모들에게 맡겼는데, 유모들은 아이를 갯복숭아나무 그늘에 혼자 남겨두고 쟁기질을 구경하러 갔다. 이때에 혼자서 일어나 앉은 고타마는 들판에서 쟁기질하는 것을 보다가 어린 풀이 뽑혀 나가고, 거기에 달라붙어 있던 벌레와 알들이 죽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어린 고타마는 이 살생을 보고 묘한 슬픔을 느꼈다. 마치 자신의 동족이 죽음을 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린 고타마는 자신과 개인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생물들의 고통이 가슴을 꿰뚫었을 때, 자연발생적인 동정심이 생겨나면서 ‘자기 중심주의’에서 벗어나고, 순간적으로 영적 해방을 맛보았다는 것이다.
고타마는 나중에 출가한 뒤로 가혹한 금욕수행을 통해서도 얻지 못했던 비결을 어릴 적 경험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깨달았다. 그 비결은 먼저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은둔’이라고 불렀던 것인데, 고요한 가운데 혼자 있으며 명상에 잠기는 것이다. 만일 어린 시절 유모들이 곁에 남아서 수다를 떨며 그의 정신을 산만하게 했다면 그는 쟁기질에 의해 죽어가는 목숨들의 고통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을 것이고, 연민을 느낄 겨를도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 전우익 선생(1925-2004) |
“아름다운 건 모두 사라지고 징그러움만 끈질기게 살아남아 판을 치는 것 같아요. 떠들썩함에 길든 현대인은 적막함을 견디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게 한없이 떠들고 지껄입니다.”(<사람이 뭔데>, 현암사, 86쪽)
파도가 일렁이는 물결 위에선 제 얼굴이 온전히 비추어질 리 없다. 사람들은 제 얼굴을 제대로 바라볼 엄두가 나지 않아서 쉴 새 없이 호수에 돌을 던지듯이, 자진해서 떠들썩한 분위기를 찾는다.
한편 고타마는 은둔상태뿐 아니라 벌레와 어린 풀 때문에 슬퍼했던 그 동정심으로 가득한 사욕없이 유익한 마음상태를 키우고, 동시에 깨달음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그것을 방해하는 모든 마음상태를 세심하게 피해나가라고 하였다. 이 당시 수행자들은 폭력, 거짓말, 도둑질, 음주, 성교의 다섯가지를 무익한 행동으로 여겨 금하였는데, 고타마는 이 다섯가지 금지에 반대되는 긍정적인 태도를 이끌어내라고 말한다.
수행자는 단지 폭력을 피하는데 그치지 말고, 모든 것과 모든 사람에게 상냥하고 친절하게 행동해야 한다. 나쁜 의지를 가진 감정들이 조금이라도 싹트는 것을 막기 위해 자비에 대한 생각을 키워가야 한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올바른 말’을 하고, 말할만한 가치가 있는 말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도둑질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무엇이든 기꺼이 주는 것에 기뻐하고 개인적인 선호를 드러내지 않아야 하며, 최소한의 것만 소유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껴야 한다. 이렇게 긍정적인 마음의 상태를 의도적으로 계발한다면, 이런 능숙한 행동이 습관으로 바뀌어 제2의 본성이 되고, 수행자는 자신의 내부에서 순수한 가쁨을 느낄 것으로 고타마는 믿었다.
자기 중심주의와 아집에서 벗어나, 비록 현실속에서 고통 가운데 거닐면서도 “내가 고통받는다”고 말하지 않고 “그것이 고통받는다”라고 말할 수 있는 깨달음을 얻은 뒤에, 고타마가 찾아가서 대중들에게 처음 설법을 하였던 곳은 녹야원(鹿野苑)이었다. 사슴공원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붓다와 대중이 만나는 장소였다.
그는 병든 세상과 인간을 치유하는 큰 사슴이었고, 대중은 미처 완쾌되지 못한 작은 사슴이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붓다이든 대중이든 모두가 본래 사슴이라는 점에선 다를 바 없다. 한 전설에선 고타마가 어머니의 심장 높이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전한다. 이것은 심장이 우리 삶의 중심이 될 때만, 즉 다른 사람들의 괴로움을 마치 자신의 괴로움처럼 느낄 때에만 참사람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카렌 암스트롱은 이렇게 말한다. “짐승 같은 사람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앞세우는 반면, 영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인식하고 그것을 덜어주려 한다” 예수와 마찬가지로 붓다가 된 고타마 역시 다른 짐승을 해치지 않고 풀을 뜯는 사슴처럼, 그 사슴의 선한 눈매를 가졌을 것이다. 그들 영적 스승들은 ‘사나운 세상의 공식을 넘어서’ 살았다. 아픈 눈에 눈물을 담고 세상을 바라보았으며, 자기연민으로 몸부림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아파하는 가운데 참된 자기를 발견하였다. 그런 방식으로 자기 몸의 무게를 덜어내고 가볍게 날아올랐다.
카톨릭뉴스 지금여기-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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