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길, 인간의 길, 생명의 길
오늘날의 사회현실은 과연 어떤한가? 바야흐로 현대시 100년 일제 강점의 질곡도 무너지고,
분단 이래의 고질적인 군사통치의 폭력도 점차 사라져 가는 이즈음
오히려 환경파괴와 오염은 날로 심각해가고 각종 사회병리 현상도 가중되어 가고 있다.
다리가 무너지고, 건물이 폭삭 주저앉아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는가 하면,
자식이 부모의 유산을 노려 부모를 살해하고,
헤아릴 수 없는 반인간적 대형사고는 물론 반인류적 사건․사고들이 줄지어 일어나고 있다.
참으로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 너, 또한 우리 모두 그러한 폭력과 재앙으로부터 예외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러기에 바로 우리들 지친 마음에 참된 시심을 일러주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서시」
참된 인간의 길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그것은 시심을 간직하는 길, 진짜 시인의 길을 걸어가려는 데서
그 바람직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인용시에서 시인이란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첫째 그것은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기도하며 사는 자세가 그것이다.
그런 시가 있지 않던가?
못을 뽑습니다
휘어진 못을 뽑는 것은
여간 여렵지 않습니다
못이 봅혀져 나온 자리는
여간 흉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성당에서
아내와 함께 고해성사를 하였습니다
못자국이 유난히 많은 남편의 가슴을
아내는 못 본 체 하였습니다
나는 더욱 부끄러웠습니다
아직도 뽑아낸지 않은 못 하나가
정말 어쩔 수 없이 숨겨둔 못대가리 하나가
쏘옥 고개를 내밀었기 때문입니다
- 김종철,「고해성사」
와 같이 속죄하는 마음, 참회하는 마음이야말로 시의 근본이고
인간에게 영성을 회복시켜주는 근원적 힘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것은 바로 이 부끄러움을 알고 그렇게 되지 않으려 노력하는데서
인간의 인간다움, 인간의 위의가 지켜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둘째로 그것은 진정으로 괴로움을 아는 마음이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괴로움이 없는 인간, 괴로움이 없는 인간이란 그야말로 인간성이 마비된 인간이 아닐 수 없다.
기계인간, 무쇠인간이 아닌 이상 물질, 영혼과 육체 사이에 끊임 없는 갈등이 존재하며
그 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향한 번뇌가 따를 수 밖에 없다는 듯이다.
부끄러움, 괴로움을 통해 인간은 죄의 길로부터 속죄의 길, 장죄의 길로 나아가게 됨으로써
마침내 인간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셋째로 시인의 길은 <별을 노래하는 마음>을 간직하는 일이다.
그것은 별이 상징하듯이 진․선․미를 향한 동경의 마음이자 갈망의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끊임없이 진실의 길, 착함의 길, 아름다움의 길을 찾아가고자 하는 갈망의 삶,
형성의 삶을 지향한다는 뜻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바로 ‘아가’를 사랑하는 마음이며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고, 하늘의 별과 땅의 꽃
그리고 고향과 조국을 소중히 하는 마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넷째로 그것은 자기 운명을 사랑하는 길이라고 하겠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라는
이 시의 핵심 구절이 그것이다.
삶의 처음도 나에서 비롯되고 그 끝도 나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마디로 그것은 스스로의 운명을 뜨겁게 끌어안고 참되게 사랑하는 길,
즉 운명애의 길이 아닐 수 없다. 나의 운명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길,
그것은 바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자 최대의 행복일 것이다.
그러기에 나의 운명을 사랑해야 하듯이 너의 운명,
나아가서 민족과 인류의 생명,
모든 목숨 있는 것들의 생명을 긍정하고 긍휼히 여겨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종일 헤매어
지친 에버리지
떨어져 시든 꽃잎 위에 엎드리니
내일 떨어질 꽃잎 하나가
보다 못해
미리 떨어져 이불 덮어주는
저녁답
-유안진,「자비로움」
운명애는 바로 인간애의 길이며, 생명사랑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을 가질 때 과연 이 땅에 함부로 남을 해친다든지 나아가서 함부로 죽이는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한마디로 오늘날 인간의 위기는 바로 문학의 위기이자 시의 위기를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다.
그렇다! 바로 이 점에서 지금 오늘날 21세기의 화두는 단연 ‘생명’이다.
21세기는 시를 통해서 생명존중과 생명탐구,
그리고 생명사상의 길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참문학의 회복과 진정한 시정신의 확립을 통해 문명의 위기,
인간상실의 비극을 극복해 나아가야만할 운명의 시간, 결정의 순간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문학사랑, 시사랑의 등불을 이웃에게 하나씩 점화해 나아감으로써
우리는 진정한 생명사랑, 인간사랑,
자유사랑의 정신을 새봄의 풀잎처럼 싱싱하게 키워나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재홍
평론가/경희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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