言/사는이치知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oldhabit 2008. 5. 24. 11:48

제목 : 시인을 찾아서
지은이 : 신경림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한 것들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생각은 바로 "위대한 시 하나 하나가 바로 하나의 역사이구나."라는 것이다. 한 시대를 몸으로 마음으로 부닥끼며 살았던 이들의 처절한 눈물어린 노래. 시 하나 하나 모두는 시인들의 눈물의 결정이었다. 그러한 생각을 하며 심지어는 "이전의 역사에서는 야망가들이 역사의 페이지를 장식했지만, 이제는 시인들의 시대가 아닐까?"라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그러나 어쩌면. 너무나도 느린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신경림씨는 나에게 새로운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내가 '시 자체로 그것을 느껴야지 다른것에 편입된 생각으로 시를 판단해선 안된다'라고 변명하며 시를 쓴 그들에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 때, 신경림씨는 내게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 주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마치 내가 전혀 알지 못하던 환상의 세계로 다녀온 듯한 느낌도 들었다. '이러한 세계도 있었구나' 그래.. 내가 인식하고 있던 '시'라는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구나.. 시인들의 그 눈물어린 삶은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리고 그들이 온 가슴을 긁어서 토해 놓은 결정들만으로 그들을 평가했던 나였다.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이 시는 이러이러 해, 저 시는 저러저러 해" 이렇게 평가한 나. 참고서에 적힌대로 시를 보아온 나. 본능적인 느낌만을 추구한 나. 이런 얼간이같은 공상의 마그마 끝에서 녹아 들어가고 있던 나를 끄집어 낸 것은 시인들의 삶이었다, 역사였다, 그것이 바로 시였다.

 

신경림씨의 이 책은 내게 그러한 각성을 안겨준 것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책 그 자체의 내용에서도 우수하지만, 일반 학생들이 시에 대해 가지고 있는 거품을 치워버리고 시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고 있다. 책의 내용은 쉽게 읽을려고만 한다면 정말 한편의 기행문처럼 쉽게 읽을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시인들과 그들의 시, 그리고 작가의 시에 대한 감상과 해석들의 관련성을 짚어서 읽어나가면 신경림씨는 우리에게 시의 세계에 대한 문을 열어주고 있다. 신경림씨는 그 시의 세계에 나를 떠다 밀지 않았다. 단지 문을 열어 보여 주었을 뿐이다. 이것이 "시"라고. 사실 부끄럽게도 나는 이 책 외의 그의 글을 읽은 적이 없다. 서점의 한 모퉁이에서, 신문의 한 페이지에서 그의 시를 보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의 시였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그렇게 순간으로만 시를 읽어 왔으므로 잊으면 다시 보면 그만이었다. 물론 외울 생각은 추호에도 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시를 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를 암송하는데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시"를 본 것이 아니었다. 내가 본 그것들은 모두 지나가다 스쳐 본 벽의 광고지들이었다. 허나 그는 아니었다. 그는 시인들의 발자취를 따라다니며, 그들이 시를 �던 감성의 원천과 마음의 고향을 조금씩 벗겨주고 있었다.

 

여기 저기서 신경림씨의 주관적인 평가가 가미되어 있지만, 그러한 것들은 크게 주제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였다. 오히려 그것은 시인들을 우리 곁에 가까이 접근시키고 있었다. 신경림씨도 한 명의 시인이므로. 이 책에서 신경림씨는 마치 음유 시인처럼 보인다. 불처럼, 또는 물처럼 한 시대를 살아간 영웅들을 노래한 음유 시인. 그는 한 편의 영웅 서사시를 쓴 것이다. 하지만, 분명 시인들은 영웅이 아니다. 그들은 천재였지만, 끝없이 이상향을 동경하던 바보들이었고 결국은 그 이상향에게 배신당한채 쓸쓸히 죽어간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한 쓸쓸함까지도 사랑하지 않았을까? 그러한 면에서 시인들의 세계에서 이들은 영웅이나 마찬가지인 존재들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물론 이러한 추측은 그들의 발 끝을 보고 한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이제 겨우 그들의 발 끝을 보았을 뿐이다. 그들이 생각했던 이상향, 그들이 느꼈던 세상, 그들이 보았던 희망과 절망. 이제 나는 그러한 시인들의 세상에 대해 자그마한 가닥들을 손에 쥐었을 뿐 그것을 더듬어 가보지는 못했다. 그것 또한 내가 쥔 것이 아니라 신경림씨가 쥐어 준 것일 뿐이므로. 이제 내게 남겨진 과제는 그것을 더듬어 더듬어 그들의 세상으로 직접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그것이 신경림씨가 이 책을 쓴 목적이 아닐지. 이제 겨우 시인들의 발 끝을 본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펌-

 

 


순수의 왕자 어린 왕자를 읽고 나서


초등학교때 만화로만 보던 어린 왕자를 벌써 두 번째 책으로 접해보았다
책이란것은 읽을적마다 그 느낌이 새롭기때문에 한권을 지정해놓고 매년마다 읽고나서 느낌이 어떻게 다른지 한번 실험해보고싶었다 그래서 2년전부터 나의 실험대상이 되어준 책이 어린 왕자 였다
처음에 읽을때는 머릿속에 만화를 그려놓고 그걸 영상화 시켜 내용을 이해시켜나갔고 훑어보기만해서 이해안가는 부분도 대충 넘어갔는데 두번째 읽을 때는 내가 과연 이책을 읽었던가? 하고 다른 책을 읽는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마 그게 아주 좋은 징조인것 같아 흐뭇했다. 그리고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속에 나도 모르게 성격이 점점 삭막해져 가는건 아닌지..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어른이 되려면 아직 멀었지만 주위의 여러 가지 환경으로 인해 나 또한 어린 왕자가 말한 숫자를 좋아하고 보아 뱀 을 설명해줘야 이해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가는건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어린왕자가 여행한 별들중 내마음에 속드는 별이있었다.


가로등하나와 그걸켜는 사람.... 비록 한사람 있을자리 밖에 되지 않은 아주 작은 별이지만 하루 스물 네시간 동안 무려 1천4백 40번이나 가로등을 끄고 켜고 하는 일을 반복한다.
그일은 참 의미있는 직업인듯 싶었다 가로등을 켠다는 것은 마치 별 한 개나 꽃 한 송이를 태어나게 하는거나 마찬가지 이고 그걸 끄는 것은 꽃이나 별을 잠들게 하는 참 직업다운 직업인 것같다.


만약 왕이나 허영심으로 가득찬 사람이 본다면 참 `저 사람 어리석군....누구하나 지나가는 사람없고 가로등이 필요 없다고 느낄텐데...참 시간을 어리석게 허비하는것같아 ` 하면서
분명히 핀잔을 주었을 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가 아닌 다른것에 열중하는게 얼마나 자기다운것인가!
마지막으로 모든 여행을 하고 자기별로 돌아가는 어린 왕자였지만 다른 사람들은 마지막에 많이도 울었다고 하는데 나는 지금까진 눈물은 나지 않았다.. 왜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아직느끼지 못한거 같다 다음에 읽을때는 다른사람들이 어떤 느낌을 받고 왜 울음을 참지못했는지 강열히 느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요즘은 이상한 버릇이 한가지 생겼다


심심하거나 할일을 다 마치고 나서 시간이 있으면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제일 빛이나는 별을 어린 왕자별이라고 생각하고 가끔 혼잣말로
"어린 왕자야 잘있니? 잠시 쉬고 있는 화산은 아직까지 폭발해버린건 아닌지 모르겠네..? 아직도 자기가 잘랐다고 위시대는 장미와 싸우고있진않고있니? 그리고 상자속의 양들이 아직 장미잎을 먹진 않았겠지? 무사할것이라고 믿고싶다 많은별들을 여행하면서 길들여진것도 어떤것이 흥미로운지 부끄러운지도 알았으니 말이야 내가 아는 어린 왕자 너의 마음이 아직까지도 고이 간직되었으라 믿고 싶다"
그러고 보니 생각하는 폭이 한층더 넓어진느낌을 받았다
다른친구들도 나처럼 책한권을 지정해서 해마다 읽고난다음 그느낌이 어떻게 다른지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생각처럼 귀찮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고 .. 얻어진것이 더많고 독서하는 습관을 한층더 업그레이드 할수있는것이 분명하기때문이다.-펌-

 

등신불

지은이:김동리

 

이 단편은 내가 읽은 단편 중에서 다른 것 보다 더 재미있게 봤던 단편인 것 같다.
이 단편의 시작은 태평양전쟁에 학병으로 끌려나간 주인공이 전쟁을 피하기 위해 불교에 몸을 담아 절에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일제 말기 학병으로 끌려가 남경이란 곳에 있다가, 진기수라는 대학선배에게서 혈서까지 써 보이며 허락을 받아 그의 도움으로 탈출하게 된다.
그래서 정원사란 절로 들어가 중이 되기로 한다. 그 곳에서 주인공은 청운이라는 스님과 돌아다니다가 금불각의 등신불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 불상은 여느 불상과는 달리 매우 기괴한 모양을 하고 있어 주인공은 그것을 보고 무서워한다. 근데 그 불상은 옛날 소신 공양으로 성불한 '만적'이란 스님의 타다 굳어진 몸에 금을 씌운 것이라고 주인공은 원혜 대사를 통하여 신비로운 성불의 역사를 듣게 된다. '만적'은 당나라 때의 인물로, 자기를 위하여 이복 형제를 독살하려는 어머니로 큰 갈등을 겪는다. 그리고 집을 나간 이복 형제 '신'을 찾아 집을 나와 불가에 몸을 맡긴다. 10년 후 어느 날, 자기가 찾던 '신'이 문둥이라는 천형에 고통받고 있음을 알고 충격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그런 문둥이들과 이복형제 '신'을 위해 소신 공양을 할 것을 결심한다. 그가 1년 동안의 준비 끝에 소신 공양하던 날 여러 가지 이상한일이 일어나게 된다. 온몸에 기름을 바른 천을 감고 불을 붙이고 그의 머리에 씌운 향로에서는 점점 많은 연기가 나오는데 이때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비는 타고있는 불을 끄지 않고 '만적'이 앉아있던 단위에는 내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후로 새전이 3년간 끊이지 않아 '만적'의 타다 굳어진 몸에 금을 씌우고 금불각을 짓게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주인공은 그 불상이 '만적'이 인간의 고뇌의 슬픔이 아로새겨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이야기를 마친 원혜 대사는 주인공에게, 남경에서 진기수씨에게 혈서를 바치느라 입으로 살을 물었던 오른손 식지를 들어 보라고 한다.
왜 그 손가락을 들어 보라고 했는지, 주인공은 의아해 하고 또 이 손가락과 '만적'의 소신 공양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궁금해 하지만 대사는 아무런 말이 없다. 그리고 북 소리와 목어 소리만 들려 온다.
이 책은 나에게 내가 확실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남을 위해 자진으로 소신공양을 했던 만적의 생각과 인간의 고뇌로 슬프면서도 종교적으로 좀더 나은 인간이 되는 교훈을 주는 것 같다. -펌-

 


제목 :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지은이 : 최순우
출판사 : 학고재


MBC의 인기 프로그램 '느낌표'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코너에서 네 번째 선정도서로 선정되면서 나도 읽게 되었다. 평생을 박물관인으로 살았으며 이제는 고인이 된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선집 중에서 전문적인 논문이나 논술을 제외하고 사색적으로 한국미의 현장을 터치한 글들을 모았다. 난해하지 않으면서 저자의 심미안과 우리 문화에 대한 애정이 돋보이는 글들이다. 이 책에는 선생이 살아 생전 이 땅의 산천과 이 땅에 남아 있는 우리 문화유산들을 얼마나
따뜻하고 지극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쓰다듬으며 사셨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은 지식으로 눈길로 쓴 글들이 아니다. 모든 글은 이 나라 백성들의 순박하고 그지없이 아름다운 삶과 역사를, 이 나라 산천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않고는 쓸 수 없는 글들이다. 이 나라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시냇물 한 줄기, 산모퉁이 하나, 무심하게 뜬 달빛 아래 흔한 산능선, 가을 햇살 아래 샛노랗게 익어 가는 산골짜기 벼들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고 거기에 사는 우리 조상들의 순박하고 고왔던 정을 이해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다. 그러한 정겨운 산천의 모습들이 아름다운 예술로 피어났음을 이 책은 차분하게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부석사를 좋아하다 보니 무량수전은 늘 낯설지 않게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는 몇 안되는 정신의 휴양쳐 이다. 부석사로 들어가는 사과밭들이 주는 정겨움도 잊을 수 없는 일이다. 첨엔 차로 입구까지 들어가다 보니 그 맛을 못느꼈지만 한날 오래된 친구와 같이 그 길을 걸어 들어가 보자해서 걸어 들어가면서 우린 어딘가에 동화된 듯 금방 나이를 벗고 깔깔거리면서 익을대로 익은 사과향이 주는 매력속에서 동심으로 돌아가곤 했다. 인심 좋은 할머니가 건네주는 사과를 그냥 쓱쓱 닦아 먹으면서 걸으면서 생긴 갈증을 그렇게 한숨에 날려버렸다.
그 즐거움이란 그렇게 자주 오는 즐거움은 아닐 것 같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것은 '선묘각'이였다. 무량수전 뒤에 작은 각인데 그 안에 선묘도는 정말이지 너무도 동양적이고 아름답다. 그리고 대나무 숲에서 느껴지는 바람소리도 눈 감으면 선명해 진다. 이 책은 아주 읽기에 좋은 단어들을 선정하고 아름다운 우리말들이 많아서 읽는 내내 참 곱다라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옛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한국인 만이 느낄수 있는 아름다움과 그 아름다움이 지금 현대에 와서도 전혀 손댈곳 없이 세련되고 아름답다는건 가까운 박물관만 가 보아도 알수있다. 서양이나 주변 국가들에서 보이던 화려하고 수다스러운 표현 방법들과 요란한 색들에서는 느낄수 없는 잔잔하고 평온하고 그러면서 수다스럽지 않게 표현되어 온 많은 옛 것들을 볼때면 저절로 지금의 우리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감출길이 없다. 우리 민족들은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고 자연을 헤치지 않으면서 건물들을 세웠고 건물의 모습은 자연과 자연스럽게 같이 흘러가서 보는 이로 하여금 눈과 마음을 편안하고 맛드러지게 표현해 내던 나라였는데 지금의 우리의 모습은 그나마 있는
산이라도 깍아서 집들을 지으려는 몰지각한 행위를 하고 있다니 반대하는 시민들의 가슴에 못질이나 하면서 왜 그렇게 눈들이 어두워진것인지 안타깝기 그지 없다.

예전에도 그 좋은 문화재들을 헐 값에 주변국가에 팔아먹고 룰루랄라했던 몰지각하고 아둔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가 다른 국가에서 타국의 낯선 공기안에 있어야 하는 비극을 낳기도 했지만 이제 더 이상은 그렇게 우리 스스로 우리의 것을 버려서야 되겠는가? 이 책을 통해 우리들의 눈과 마음이 정화되길 나는 이 책의 모든 글을 아껴가며 읽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짧은 글인 분청사기철회초문대접이란 글을 제일 좋아한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선생이 우리 것을 그 얼마나 지극하고도 소중하게 마음으로 쓰다듬으셨는지 가슴이 다 찡해지곤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앎이 사람의 마음에 가서 사람을 가다듬어 사람의 그윽한 향기가 은은하게 풍겨져 나올 수도 있구나 하는 참으로 고귀한 생각을 얻었다. 나는 이 땅에 태어난 것을 늘 고맙게 생각하며 산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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