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득의 「비 개고」
피천득(1910∼) 선생은 수필가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분이다.
그러나 그는 20대초부터 시를 써 왔고 『서정시집』(1947), 『금아시문선(琴兒詩文選』(1960) 등의 시집을 가진 시인이다.
80대에 시집 『생명』(1993)을 간행하여 문단의 이목을 끈 바도 있다.
「비 개고」는 『생명』에 수록되어 있는 4행의 짧은 시다.
햇빛에 물살이
잉어같이 뛴다
"날 들었다!" 부르는 소리
멀리 메아리친다
------―피천득 「비 개고」전문
겉보기엔 별로 대단한 작품처럼 생각되지 않는다.
비 갠 뒤 물가에서 벌어진 단순한 한 정경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작품 속에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배경과 인물들이 진술 밖에 감춰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배경이 물가인 것은 쉽게 짐작이 간다.
어떤 물가일까? 잔잔한 호수나 큰 강물 같지는 않다.
'물살이 잉어같이 뛴다'로 미루어 보아 여울로 보인다.
강보다는 작고 개울보다는 규모가 큰, 물살이 센 여울이다.
그 여울가에 목소리의 주인공은 무엇 하러 왔는가.
아마 물고기를 잡으러 왔으리라.
물살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을 '뛰는 잉어'를 빌어 표현한 것으로 이를 추측할 수 있다.
혼자 왔는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날 들었다'고 소리쳐 부르는 것을 보면 상대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상대는 화자가 있는 곳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는 듯하다.
이는 제4행의 '멀리'가 암시해 주고 있다.
그리고 멀리 메아리치게 하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마도 청년이리라.
이상의 짐작들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엮어낼 수 있다.
어느 평화로운 농촌의 초여름쯤이리라.
군대에 간 친구가 모처럼 휴가라도 얻어 왔는지 모른다.
그를 위로하기 위해 마을 친구들은 바쁜 일손을 잠시 멈추고 어느 하루를 잡아 천렵(川獵)을 나섰으리라.
그런데 그날 따라 이른 아침부터 하늘이 찌쁘리더니 여울에 이르자 드디어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가지고 간 투망이며 낚시 도구들을 여울가에 놓아둔 채 비를 피해 인근의 주막집에라도 잠시 들었으리라.
그리고 막걸리라도 한 사발씩 하면서 비가 긋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무료하니까 주모에게 화투를 빌어 벌써 고스톱판이라도 벌이고 있을 법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친구들과는 달리 화자(목소리의 주인공)는 조바심이 나서 그들과 함께 주막에 머물 수가 없다.
그는 추적추적 부슬비를 맞으면서 계속 여울가를 서성이고 있다.
그런데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비가 긋더니 검은 구름 사이로 맑은 햇살이 화사하게 쏟아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그는 '날(日) 들었다!'고 탄성을 지르며 친구들을 부르는 것이다.
이 얼마나 흥겨운 정경인가. 여기에는 평화와 희망 그리고 세계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다.
다음은 『생명』의 말미에 붙어 있는 석경징 교수의 탁월한 감상이다.
함께 음미해 보도록 하자.
얼핏 보기에 비 온 뒤의 광경을 어린이의 정서적 차원에서 그려놓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 점에서 묘사는 정확 그 자체입니다.
물살에 햇빛이 잉어같이 뛴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뛰는 것은 역시 물살입니다.
장마철에 물이 불어서 샛강이나 개울로 올라온 잉어를 마을 청년들이 잡을 때,
튀는 잉어와 쫓는 청년들이 이루는 힘차고 빠른 움직임을 연상케 합니다.
'햇살에 물살이/ 잉어같이 뛴다'라는 네 마디의 간결한 표현은 비 개인 뒤 햇빛의 선명함과 물살의 움직임이 어우러져 이루는 역동감을 극도로 절약된 언어적 표현, 즉 최대한의 효율성을 지니고 사용된 수사적 기법이 조화를 이루며 달성한 시적 형상화의 한 전범(典範)과 같습니다.
그러나 다음 두 행이 없었더라면 이 시는 일종의 광경 묘사에 그쳤을 것입니다.
앞의 두 행이 자연의 한 면을 대상으로 그린 것이라면
'"날 들었다!" 부르는 소리/ 멀리 메아리 친다'라는 두 행은 사람 사는 곳의 한 장면입니다.
---(중략)--- 날 들었다고 '외치지'를 않고 '부른다'라고 되어 있는 것도 주의해야 하리라고 봅니다.
부른다는 것은 누구를 부른다든가 노래를 부른다고 할 때의 '부른다'입니다.
결코 혼자서 상대 없이 지르는 '날 들었다!'란 소리가 아닙니다.
또 경악이나 공포를 반영할 수도 있는 '외침'이 아니라 이웃사람의 화답을 기대하는 '부름'이고 따라서 즐겁게 고양된 감정을 노래하는 '부름'입니다.
또 '멀리서' 메아리치는 것이 아니라 '멀리' 메아리친다고 한 것에도 주목할 만합니다.
메아리는 소리 낸 사람에게 돌아온 것이므로 '멀리 메아리친다'는 것은 '날 들었다!'고 노래부르듯, 또는 누군가를 부르듯 소리친 사람의 위치에서 떨어진 소위 제3자의 자리에서 서술하는 말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메아리가 이 제3자에게 돌아오는 소리로 그려져 있지는 않으므로, 이 대목은 말하자면 물살이 퍼져나가듯 한 사람의 "날 들었다!"란 말을 받아 다른 사람이 "날 들었다!"고 하고, 또 그 소리를 받아(원래 '부르며' 낸 소리였으니까) 제3의 사람이 응답하듯 불러나가는 것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앞의 두 행에 자연 변화의 일단을 담았다면 뒤의 두 행에는 사람 사는 세상의 한 정경을 담아서 결국 자연과 인간이 어울리는 리얼리티의 편린을 그려놓고 있습니다.
― 석경징의 해설 <진실의 아름다움> 중에서―
시는 그 분량이나 문체의 화사함으로 평가되는 글이 아니다.
시는 산문과는 달리 압축·간결함이 그 특징이 아닌가.
그러니 표현의 번거로움이 시의 장점이 될 리 없다.
물론 표현하고자 하는 시상이 웅대(雄大)·심원(深遠)하여 길어질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기는 하리라.
그러나 시적 표현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숨기면서 말하기'이다.
말하자면 표현의 이면에 감추어진 정황을 소중히 생각하면서도 그것을 직설적으로 언표(言表)하지 않는 기법이다.
그렇게 숨겨 담는 것이 작자의 능력이며 기쁨이고, 그것을 찾아 음미하는 것이 독자의 몫이며 또한 즐거움이다.
(원로시인 임보님의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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