言/간직하나人

어거스틴

oldhabit 2008. 5. 24. 14:32

네 마음의 빛이 어둡지 않은가 점검하라
                - 성 어거스틴의 영성순례 이야기-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영혼의 탐험가

성 어거스틴(354-430)의 이름은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기독교인이든 타종교인이든 한번쯤 들어본적 있을 만큼 인류정신사의 한 거성 이었다. 그는 AD. 4세기 후반에 태어나서 5세기 중반까지 74세를 살았던 기독교 교부였지만, 그의 사상적 영향은 그의 죽음이후에도 기독교역사 1500년동안 큰 영향을 미쳤고, 또한 지금도 영향을 주고 있는 놀라운 사상가이다. 그는 진리를 탐구하는 진지한 철학자요, 신앙인으로서 교회의 성직자이며, 수도사적인 영성가였고, 현대 분석심리학자들도 놀라워하는 인간의 심층심리를 다룬 영혼의 치유자였다. 어거스틴은 중세 스콜라 신학의 최대 사상가인 토마스 아퀴나스와 마이스테르 엑하르트에 게 깊은 영향을 끼쳤고,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이 의지하는 큰 스승이었으며, 현대 사상가들에게도  샘솟는 영감의 원천이었다.  
  어거스틴은 북아프리카 타가스테(Thagaste, 오늘날 알제리아의 작은도시 수크아라스)에서 경건한 기독교인 어머니 모니카(Monika)와 출세지향적인 이교도 아버지 파트리키우스(Patricius) 사이에 태어났다. 우리는 지금 아프리카라고 말하면 가장 문명화가 덜된 흑인들이 사는 검은대륙 이라고 알고 있지만, 고대 지중해 연안의 아프리카는 고도로 발달한 문명사회를 영위하고 있었다. 당시 로마제국은, 지중해 연안을 점령하고 ‘로마의 평화’를 구가하면서도 안으로는 도덕적 타락․권력투쟁․노예반란으로 무너져가고 있었으며, 밖으로는 유럽 북쪽으로부터 내려오는 야만족의 침입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거스틴이 활동하던 시대 로마제국은 쇠퇴해가고 있던 시대였지만, 북아프리카 큰 도시 카르다고(Carthage) 항구를 통해 제국의수도 로마를 거쳐 이탈리아 북부도시 밀란(Milan)까지 로마제국의 중심부로 통하는 해양통로와 육로가 발달하고 있었다.
  아프리카태생의 큰 불꽃 어거스틴은 천재성을 지닌 청년이면서, 정력도 또한 절륜하여 그의 성적 에너지는 단순히 육체적 에너지의 근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그칠줄 모르는 정신적 진리추구의 에너지 원천이었으며, 마침네 그 성적 에너지가 승화되고  변화되자, 창조적 사상과 불휴의 명작들로 쏟아져 나오게되는  생명의 힘을 가졌다. 그는 31세 때(385년) 밀란의 수사학 교수가 될 수 있었으며, 32세때(386년) 회심을 경험하고, 37세때(391년) 히포의 감독이 되었으며,  그의 장년기 절정이던 43세때(397년)  인류역사의 불휴의 고전이라고 평가받는 『고백록』(Confession)을 저술하였다. 『고백록』은 단순히 개인의 종교적 참회록이 아니라, 자기 생애를 회상하면서 인간, 역사, 진리, 어둠, 시간, 영원, 구원, 신등 삶의 근원적인 문제를 깊은 통찰력을 보이면서 진술한 영성적 명상철학서라 할 수 있겠다.
  어거스틴이 우리에게 가깝게 와닿고, 과거의 사상가가 아니라 현대적 사상가로 느껴질만큼 생생한 이유는, 그의 천재성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긴 구도자로서의 치열한 삶의 고뇌와 진솔한 자기 성찰이 우리 자신들의 내면적 영혼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단번에 기독교 신앙을 수용한 회심가가 아니였다. “자녀를 위해 눈물의 기도를 올리는 어머니를 가진 자식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라는 속담이 생길 정도로 그의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의 덕만은 아니다. 어거스틴은 육체의 정욕에 탐익하면서 쾌락을 즐긴 경험도 있으며, 깊은 회의주의에  빠져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대주의에 전락한 경험도 있으며, 삶의 모순을 선악 이원론으로 구별하여 흑백논리로 합리화 시켜버리려는 이단종파 마니교에 빠진 적도 있으며, 신풀라톤주의  철학에 심취한 적도 있었다.
  마침네 그가 도달한 마음의 평안은 자기 밖에서만 찾던 진리가 사실은 자기 영혼 안에 이미 빛으로 있음을 깨닫게 된 때부터 였다.  밖에서 찾던 하나님이 자기보다 더 가까이 자기와 가깝게 계시면서 빛과 생명과 진리로 자기영혼을 감싸고 비추심을 깨닫게 된 때였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그의 『고백록』 첫페이지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당신은 우리 인간의 마음을 움직여 당신을 찬양하고 즐기게 하십니다.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향해서 살도록 창조하셨으므로 우리마음이 당신 안에서 안식 할 때까지는
    평안하지 않습니다. (고백록 1:1)

위의 짧은 한 문장은 『고백록』의 전체 사상을 나타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거스틴의 전체 사상을 대표하는 문장이라고 『고백록』을 한국어로 번역한 선한용교수는 바르게 지적한다.

  존재는 비존재 보다  선하고 아름답고 근원적이다

어거스틴의 영적 순례과정에서 항상 부딪혔던 근본 문제는, 인간본성 안에서와 역사 현실 속에서 무서운 파괴적 힘으로 경험되는 어두운 세력들 또는 악의 현실들이 어디에서 연원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인간은 삶의 과정에서 개인의 힘으로  처리 할수 없는 ‘운명의 힘’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하고, 어떤 악령의 힘들이 개인과 집단을 조종하는 듯한 착각을 느끼기도 한다. 삶의 부조리와 역사의 어두운 세력들을 용납하지 못하는 선남선녀들은 자기들이 삶 속에서 경험하는 이 어두운 힘들의 실재를 어떻게 하던지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러한 노력들중 가장 오랜 해결방식은 ‘선악의 두원리’가 우주 속에는 있으며, 우주와 역사와 인간의 마음은 그러한 선악 두원리의 싸움터라고 보는 이해이다.
 그러한 이원론적 세계관은 일찍이 페르샤의 조로아스터 종교에도 있었고,   영지주의 신비 철학에도 있었고, 어거스틴 시대 풍미했던 마니교도 그런 생각이며, 현대 한국 보수적 기독교인들의 사탄론로 그런 입장이다. 선악이원론을 가지고 보면 일단 세상이 왜 이렇게 악한 일들이 횡횡하는지 어느정도 합리적으로 설명이 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런 사이비 합리주의 사상이 치뤄야하는  댓가는 크다. 우선 개인과 사회의 악한 현실에 대한 책임을 자기가 분담하려는 책임의식이 없으며, 모든 책임을 내 밖에 있는 악의 세력들, 사탄의 세력들에게 돌려버린다. 그리고, 악한 힘들의 횡포 앞에서 인간의 선한 의지는 매우 약하고 무능력하다는 패배주의가 지배한다. 자기 운명을 개척하고, 역사의 죄과를 개선해가려는 적극적 노력이 결여된다. 쉽사리 숙명론에 빠지고, 역사현실 도피주의자가 된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마침네 그럴듯한 선악이원론을 부정한다. 그런 생각은 인생과 역사현실에 대한 심원한 통찰을 포기하고, 쉽게 모든 문제를 풀어버리려는 싸구려 합리주의적 사고이다. 여기서 합리주의라 함은 이성적 합리주의가 아니라, 세계관의 형이상학적 기본가설에 입각한 논리적 합리주의를 의미한다. 어거스틴은 인간존재는 유한하지만 인격적 책임을 지는 ‘의지적 존재’라고 파악하였다. 그는 인간성의 저 깊은 무의식 안에 자리잡은 어두운 의지를 간파해 냈다. 그는 자기의 경험을 통하여 ‘악한 습관’의 힘이 얼마나 끈질기고 강력한지를 경험하였다. 인간의 잠재의식적 또는 무의식적 마음의 깊이에서 일어나는 힘들을 인간의 의식이 모두 맘대로 통재하기 어렵다는 것을 어거스틴은 알고있지만, 그렇다고해서 그 어두운 파괴적 힘이 악마의 작난이거나 악령들의 소행이 아니라, 인간이 책임져야 할 죄의 힘이라고 보았다.
  어거스틴은 무엇이 존재한다는 사실, 내가 산자의 땅에서 햇빛을 받으며 오늘 여기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선한 것이고 좋은 것이고 아름답고 찬양할 신비한 일이라고 본 사람이다.  내가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가의 여부,  내가 얼마나 성공한 사회적 신분을 누리고 있는가의 평가등은 둘째문제라는 것이다. 어거스틴의 영성은 ‘여기․ 현재’에 내가 존재한다는 그 사실자체를 놀라움과 감탄으로 다시 생각해보라고 우리를 권고한다. 현대인들은 내 손에 얼마나 많은 소유물이 들려있는가에 따라서, 내 존재의 확실성이 보장된다는 착각으로 살고 있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알고보면, 과거시간은 이미 흘러가 버려서 이미 없고, 미래시간은 아직 오지 않아서 내겐 없고, 무한 공간 속에서 지금 순간을 살고있는 것이 유한한 생명의 실상이라는 것이다. 사업에 실패했다고, 입학시험에 떨어졌다고, 가난과 질병에 쪼들리고 시달린다고  생명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본다. 한국 카톨릭시인 구상시인의 시한줄을 인용해서 말한다면 어거스틴의 사상이 도리혀  현대적 감각으로 되살아 난다.

       나는 그 풀꽃과 더불어 / 영원과 무한의 한 표현으로 / 영원과 무한의 한 부분으로 / 영원과 무한의 한 사랑으로 / 이제 여기 존재한다.

                                  - 구상의 시 「풀꽃과 더불어」마지막 절에서-

 진리자체이신 하나님을 네 밖에서 차지말고 네 영혼 안에서 만나라

 어거스틴은 그의 생애 후기에 신풀라톤주의 사상과 접맥하였다. 신풀라톤사상은 고대 헬라철학자 플라톤의 기본사상이 알렉산드리아의 프로티누스(Plotinus, 205-270)라는 철학자에 의해서 다시 조명된 사상이다. 플로티누스는 우주만물은 ‘근원적 일자’(一者)의 유출(流出)로 인해 만물이 생겨났고, 만물은 다시 자신의 본원인 일자에로 환원하려는 운동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은 본래 자기의 본향을 찾아가려는 열망으로 넘쳐나며, 진리의 빛의 조명을 받아 육신적 감각의 제약을 극복하고 영혼의 본향을 찾아가려 한다고 설명했다. 
  신플라톤 철학사상은 어거스틴이 마니교의 이원론을 극복한는데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특히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나타나는   이데아 세계로부터 오는 ‘빛의 조명설’과 ‘영혼의 상기설’은 어거스틴이 기독교신앙으로 전향하는데 중간다리 역할을 해주었다. 어거스틴의 영성수련 경험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점은 진리 또는 종교의 궁극적 실재를(그 이름이 하나님, 불성, 알라, 존재자체등 그 무엇이든), 인간의 마음 밖에서 찾지말고, 자신의 영혼 안에서 찾으라는 경고이다. 진리자체는 이미 내 영혼 안에서 진리의 빛으로 빛나고 있지만,  내 영혼이 욕심과 어리석음 때문에 그 빛을 보지못하고 있는 것 뿐이다.
  현대 한국 종교적 상황은 궁극적 진리를 종교경전, 종교의례와 전통, 교리체계, 세계질서, 우주 에너지나 법칙등등 밖에서 찾으려고 모든 에너지를  탕진하고 있는  형국이다. 예수는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않은가 살펴보라”(눅11:36)고 경고했고, 부처님은 마지막 입적할 때 “각각 자기의 마음을 등불삼아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고 제자들에게 타일렀다. 어거스틴은 바로 그것을 다시 그가 살던 제4세기 사람들에게, 그리고 문명의 휘황찬란한 빛 때문에 도리혀 인간 내면적 빛이 가장 어두운 시대에 살고있는 현대인들에게 “네 영혼의 빛을 점검하라”고 다시한번 충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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