言/젖지않을江

양수리

oldhabit 2008. 6. 6. 10:53

양수리

 

                박장원

 

양수리兩水里는 만나는 곳이다.

 

삼척군 대덕산에서 발원한 남한강과 강원도 금강산에서 용솟음한 북한강이 비슷한 수량으로 흘러와서 소리 없이 만나는 두물머리,

 

그 곳 사람들은 그 두머리에서 벌어지는 하루의 삶을, 바쁘게  보내지만, 두물머리의 산수는 두 강이 합치는 그득한 움직임을 조용히 펼쳐 낸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서 축제를 한바탕 벌이는 곳.

 

 한강은 그 곳에서 시작된다.

 

본류인 남한강은 강굽이가 발달되어 물 흐름이 느리고 강너비가 살쪄 있었던 까닭에 많은 선사 유적지를 품어 냈으니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고, 지류인 북한강은 곧고 물 흐름이 빠른 모양새가 아버지 체취가 물씬 묻어나는 물줄기이다. 이 물줄기들이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에서 만나서 서북방향으로 물줄기를 튼다.

 

그 물줄기는 팔당을 지나 다시 광나루 뚝섬 여의도 행주를 거쳐 황해도 서해로 빠져나가는데, 그 자취가 1,300여리에 이른다.

 

 두 흐름이 이 곳에서 하나로 만나면 한강이 용틀임한다. 웅장하게 벋쳐흐르는 한강은 포만한 젖 줄기를 만들어 내고야 만다.

 

그래서 양수리는 서울이라는 파노라마를 펼쳐내는 당당한 주연이 된다.

 

 

 이 양수리는 어린 시절 여름방학 때 찾아가던 외갓집 초입같이 정겹다.

 

깊어 가는 가을날 그 곳을 찾으면 색다른 맛이 난다.

 

단풍이 익을 대로 익어 흐므러지면 강물은 더욱 파래지면서 통통히 살찐다.

 

팔당댐이 물이 가득 차면서 더욱 커다란 호수를 만들어 내고, 이내 두부콩 삶아내는 둣한 진득진득한 물안개를 뿜어낸다.

 

 순식간에 자욱한 안개에 잠긴다. 청계산 옆의 벼락바위도 두 거리의 명물인 홰나무도 그 안개 앞에서는 위용이 무색해 진다.

 

그러한 안개는 초가을에 시작해서 길게는 다음해까지 이어지기도 하고, 가을 한철 내내 젖은 솔가지 태우는 듯한 진한 농무를 피워 내고야 만다.

 

 아스팔트에 진한 원색으로 누워있는 낙엽을 부숴대며 인가의 조그만 창문을 통하여 불거져 나오는 희뿌옇한 불빛을 가늠하고 안개에 유린당한 길을 걷고 있노라면 어깨를 움추리게 된다.

 

지척을 분간하지 못하는 상화에서 별안간 두런두런 거리면 지나치는 사람이라도 만날라치면 실루엣 뭉치가 걸어오는 것 같아 흠칫하지만, 그런 기분도 이내 짙은 안개 속에 묻히어 버린다.

 

 양수리의 안개는 뭐니뭐니 해도 새벽녘에 피워 오르는 자욱한 물안개가 으뜸이라고 하지만 천성이 게으른 사람이 새벽같이 일어나서 물가로 나가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니, 아무렴 당연히 아름답겠지 하는 상상만으로 지낸다.

 

 올 가을이 깊어지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곳에 가서 하룻밤을 꼴딱 새워야겠다. 혹 양수리 같은 아름다운 만남이 내게도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은 그리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양수리' 박장원수필집. 은혜미디어, 2000.

 

 

두껍지않아 손안에 잡히는 듯,

많은 시간이 아니더라도

내용이 맘에 만 들면 단숨에 읽을 수 있어,

맘이 뒤숭숭하긴 한데  딱히 이유는 잡히지 않아

서성여질때 ,

그 모양대로 읽어 낼 수 있어 좋은,

책인데,

아니,

고를 때 익숙한 지목에 집어 들었을 것이다.

양수리 언저리를 매주 기회만 주어지면 달리던,

너무도 잘 아는 곳,

모습이면 모습,

냄새면 냄새,

느낌이면 느낌,

익숙하기에 언제나 더 새로운 곳,

함께, 추억이 갈피마다인,

 

이 책에서 다 비켜 놓고 딱 한 단락만 그대로 올린다.

 

  '양수리'

 

   200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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