言/젖지않을江

어머니

oldhabit 2008. 6. 6. 11:53

어머니

                  -황지우-


저를 이, 시간 속으로 들여넣어주시고
당신을 생각하면 늘, 시간이 없던 분

틀니를 하시느라
치과에 다녀오신 직후의,
이를 몽땅 뺀
시간의 끔찍한 모습
당신은 그 모습이 미안하시었던지
자꾸 나를 피하시었으나
아니, 우리 어머니가 저리 되시다니!
목구멍에까지 차오른 술처럼
넘치려는 시간이 컥, 눈물 되네

안방에서 당신은 거울을 피하시고
나는 눈물을 안 보이려고 등을 돌리고

흑백 텔레비전 시절 어느 연속극에서
최불암씨가 늙으신 어머니를 등에 업고
“어머니, 왜 이리 가벼워지셨어요?” 하고
역정내듯 말할 때도 바보같이
막 울어버린 적 있지

저에게 이, 시간을 주시었으되
저와 함께 어느덧
시간이 있는 분
아직은 저와 당신, 은밀한 것이 있어
아내 몰래 더 드리는 용돈에 대하여
당신 스스로 제 앞에서 애써 기뻐하시지만
그러니까, 아직은 시간이 좀 있을까

연립주택 붉은 벽돌벽에 그늘을 옮기는 흰 목련,
그 테두리를 저는 오래오래 보고 있어요

현대문학, 19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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