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버림받아서가 아니라 내가 잡을 수 없는 것들이
하나 둘 늘어간다는 사실에 참을 수 없어 더 이를 악물고 붙잡는다.
사람들은 가질 수 없는 것에 분노한다.
당신이 그랬다.
당신은 그를 '한번 더 보려고'가 아닌
당신의 확고한 열정을 자랑하기 위해 그를 찾아다니는 것 같았다.
그걸 전투적으로 포장했고,
간혹 인간적인 순정으로 위장하기도 했다.
모든 것이 끝나버린 후, 그 끝 지점을 확인하는 순간
큰 눈처럼 닥쳐올 현실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당신은. 그런 당신에게 어울리는 건
한참 느슨하고 모자란, 나 같은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
허나, 당신은 몇 년째 그대로였다.
어떻게, 사랑을 거둬버린 그를 향해
다시 사랑을 채우겠다고, 네 살 난 아이처럼 억지 부리는 일로
세상 모든 시간을 소진할 수 있단 말인가.
당신은 고장난 장난감처럼
덜그럭덜그럭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낯선 곳에 가 있으면서 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균형을 잃은 지 오래이면서도 그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고양이처럼 돌아왔으면 좋겠다.
하지만 어찌 될 것인지, 어찌해야 할 것인지를
결코 당신이라는 고양이는 알려주지 않는다.
...
햇빛 비치는 길을 걷는 것과 그늘진 길을 걷는 것,
어느 길을 좋아하지?
내가 한 사랑이 그랬다.
햇빛 비치는 길과 그늘진 길.
늘 두 길 가운데 어느 길을 걸을까 고민하고 힘들어했다.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두 길 다 사랑은 사랑이였는데, 두 길 다 내 길이였는데,
왜 그걸 두고 다른 한쪽 눈치를 보면서
미안해하고 안타까워했을까?
지금 당장 먹고 싶은 게 레몬인지 오렌지인지 그걸 모르겠을 때,
맛이 조금 아쉬운데 소금을 넣어야 할지
설탕을 넣어야 할지 모르겠을 때,
어젠 분명히 그게 좋았는데 오늘은 그게 정말로 싫을 때,
기껏 잘 다려놓기까지 한 옷을 빨래감이라고 생각하고
세탁기에 넣고 빨고 있을 때,
이렇게 손을 쓰려야 쓸 수 없는 난감한 상황이 오면 떠나는 거다。
여행을 하면서 만난 선배 격의 많은 여행자들에게서 수도 없이 들은 소리는
'이제 당신도 사막을 여행해야 할 때'라는 소리였다.
사막에 앉아서 밤을 응시하라는 소리들이었다.
세계 각국의 고수들이 늘어놓는 사막 여행담은 가히 눈시울을 붉힐 만큼,
가슴에 무늬를 만들어놓는 그 무엇이 있었다.
너무 강렬해서 약간은 서글프기도 한 그 무엇.
살아 있는 생명들을 모조리 삼켜버릴 듯한 밤의 푸르름,
별의 느린 동선까지도 잡아챌 수 있는 기적에 가까운 시력,
그리고 절대의 고요, 절대의 침묵, 강박에 의한 외로움ㅡ.
그것들이 후배 여행자에게 들려주었던 수다스런 '사막'이었다.
사막에 가자.
우리가 발 디디고 사는 이곳 또한 사막이지 않겠냐며 살고는 있지만,
그래도 사막에 가서 제대로 울다 오자.
이병률 산문집, 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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