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는 곧은 절벽(絶壁)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規定)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向)하여 떨어진다는 의미(意味)도 없이
계절(季節)과 주야(晝夜)를 가리지 않고
고매(高邁)한 정신(精神)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金盞花)도 인가(人家)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瀑布)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醉)할 순간(瞬間)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安定)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幅)도 없이
떨어진다.
(시집 {달나라의 장난}, 1959)
성격 : 주지적, 관념적, 상징적, 참여적, 산문적
심상 : 굉장한 기세의 폭포의 역동적 심상
특징 : '떨어진다'는 반복에 의한 운율 형성
구성 :
① 폭포의 외형적 모습(제1연)
② 폭포의 내적 속성 ―고매한 정신(제2연)
③ 폭포의 소리와 선구자적 행동성(제3,4연)
④ 폭포의 정신 ―나타(懶惰)와 안정의 부정(제5연)
제재 : 폭포
주제 : 부정적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의지적 삶의 추구
1. '폭포'는 사회 현실의 부조리와 불의에 대해 항상 깨어있는 지성인으로 일신상의 안일만을 탐하여 양심을 저버리고 사회 현실을 외면하는 소시민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선구자적 인물로 비유되어 있다.
2. 곧은 소리는 양심의 소리. (부정한 현실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 외침)폭포(瀑布)
[이해와 감상]
절벽으로부터 두려움 없이 곧게 떨어지는 폭포의 모습에서 어떤 타협도 망설임도 없는 올곧은 정신의 자세를 생각하는 시이다.
김수영은 1950년대 시에서 도시 지식인의 복잡한 의식 세계를 다루는 모더니즘 경향을 띠다가 1960년대 이후로는 현실 의식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러한 변화의 자취가 엿보인다.
이 시에서 그는 단순하고도 힘찬 언어로써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고자 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계절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절벽을 곧게 떨어져 내리는 폭포의 모습, 그것은 곧 타협 없는 양심의 자세에서 굴종이나 무기력을 용납하지 않는 투철한 정신의 기상이다. 김수영은 이를 노래하면서 자신이 역사 앞에서 걸어야 할 길이 무엇이며, 지켜야 할 자세는 어떤 것인가를 생각했던 듯하다.
이 작품에는 `떨어진다'는 말이 여섯 차례나 쓰였다. 그만큼 그것은 폭포의 본질적 속성으로서 중요하다는 뜻으로 일단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이 말을 통해 시인이 드러내고자 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떨어짐'은 `부서짐'과 직결되어 있다는 점이 해석의 열쇠가 된다. 폭포는 떨어지는 물이며, 떨어져 부서지는 물이다. 그 물에 생명이 있다면, 그것이 사람과 같은 존재라면, 이처럼 떨어져 부서진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것은 곧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것, 그리고 산산조각 나는 고통을 받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포는 `무서운 기색도 없이' 곧은 절벽을 떨어진다. 이렇게 의인화된 폭포는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자신을 내던질 수 있는 강렬한 영혼의 이미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폭포를 가리켜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울려 나오는 `곧은 소리'는 그 스스로만이 곧을 뿐 아니라 이 세상 안의 모든 `곧은 소리'를 부르는 것처럼 들린다.
마지막 연의 `나타(懶惰)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라는 구절은 이 점을 좀 더 분명히 해 준다. 시인은 폭포를 단순한 구경거리가 아니라 삶의 자세에 관한 준열한 의지의 전형으로 생각하고, 자기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의 안이하고 타협적인 삶을 각성시키는 실천적 행동으로 보는 것이다. [해설: 김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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