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슬기로운門

낙관은 도장이 아니다

oldhabit 2008. 9. 12. 10:49

낙관(落款)은  도장이 아니다
 
<낙관(落款)이란 무엇이며 낙관과 인장(印章),인영(印影)은  무엇이 다른 것인가?>
 
雨頌 尹炳朝 (한국전각학연구회 감사)
 
    서론
1. 낙관(落款)의 용어풀이
2. 개자원화보에 나타난
   낙관의 정의
3. 낙관의 현대적 해석
4. 낙관의 발생과 변천
5. 낙관의 중요성

 6. 낙관의 종류 
7. 낙관의 중요 구성요소  
8. 화제(畵題)와 제발(題跋) 
9. 서화용 인장의 역사
10. 인장의 종류
     결론

 
 
 
서론
서화작품에 있어서 주제(主題)와 낙관(落款)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여기에서 주제란 표현하고자 하는 주된 문장, 또는 그림을 이야기하는 것으로써 주문(主文)이라고 불리운다.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역시 주문(主文) 또는 주제(主題)임에 틀림없지만 낙관이 이와 호응하지 못하면 그 작품은 미적(美的) 효과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는 작품의 주 내용을 제작하는데는 심혈을 기울이면서도 낙관에 대하여는 그 역할이 부수적이라 하여 큰 영향을 미치지 아니할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더구나 낙관 속에 포함되는 인영(印影. 도장흔적)에 대하여는 그 격의 높고 낮음을 알지 못함은 물론 심지어 낙관과 인장을 동일한 용어로 알고 사용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이에 관한 문제점을 지적하여 보다 격조높은 작품제작에 도움이 되게함은 물론,낙관(落款),인장(印章),인영(印影)에 관한 용어풀이를 명확히 함으로써 올바른 용어사용을 통한 서예문화 창달에 도움이 되도록 하고자 한다.
 
1. 낙관(落款)의 용어풀이

낙관이란 낙성관지(落成款識)의 준말인데 낙성관지라는 네 글자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낙(落)이라는 글자는 ①떨어지다 ②마을 ③완성하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고, 성(成)이란 이룬다는 말이니  두 글자를 합하여 낙성(落成)이라는 것은 완성,준공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관(款)이라는 글자에는 ①조목 ②파서 새긴 글자의 뜻이 있고, 지(識)라는 글자는 ①알다라는 뜻이 있어 ‘식‘이라 발음하고 ②돋을새김한 글자라는 뜻이 있어 ’지‘라 발음한다. 따라서 관과 지를 합하여 관지(款識)란 주로 과거 청동기인 종정(鐘鼎)이나 이기(彛器)에 새겨져있는 명문(銘文)을 말하는데 연구자에 따라 그 설에는 다소의 차이가 있다.

첫째, 음각한 글자가 '관', 양각한 글자가 '지'라는 설이 있고,  둘째,외부에 새긴 글자가 '관', 내부에 새긴 글자가 '지'라는 설, 셋째,도안이나 도형이 '관'이고 전각을 '지'라 한다는 설등 3가지가 있어 좀더 연구를 진전시켜야할 부분으로 판단되지만  서화 작품의 제작에 관한 고찰을 함에 있어서는 대체적으로 음각 양각의 문자를 총칭하는 말로서 이해하면 무리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唐 歐陽詢書 九成宮醴泉銘
낙관이 묵서(墨書)로만 되어있고 인영(印影)은 없다
 
 
2. 개자원화보에 나타난 낙관의 정의
낙관이 언제부터 행하여 졌는지,그리고 낙관이라는 용어는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에 대하여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당(唐)이나 육조(六朝)는 물론 한(漢)의 시대에도 일부 서화에 낙관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낙관에 관한 설명으로써 현재까지 확인된 최초의 것은 청대(淸代) 초기, 1679년에 발간된 개자원화보(芥子園畵譜)이다. 이 화보에서 낙관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이 정의 하고있다.

落成款識之省略,  書畵完成時,  作者加寫姓名年月,  或詩句印鑑於其作品之上, 謂之落款
(낙성관지의 생략된 말로서 서화완성시 작가가 성명,연월일 등을 기재하고 혹 작품 위에 싯구나 인장을 날인하여 넣는 것을 일러 낙관이라 한다)
 
위의 표현을 좀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서화작품을 완성하면서 작품제작 시기나 성명등을 기재한 후 혹 싯구를 적거나 혹 인장을 날인하는 것을 낙관이라 한다는 풀이가 된다. 이 중 "或詩句印鑑於其作品之上"의 부분을 좀더 상세히 고찰해 보기로 한다. 개자원화보라는 책은 그림 그리는 요령을 설명한 책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싯구를 적는다 함은 바로 화제(畵題)의 기록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으며 인장을 날인한다 함은 성명인,아호인 또는 기타 인장으로 작품 제작자임을 확인하기 위하여 날인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개자원 화보에서 정의한 낙관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낙관이란 성명이나 시기등을 묵서(墨書)하는 것을 말하지만 혹 화제등의 싯구가 포함되기도 하고 성명인,아호인등의 인장 날인을 함께 병행할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黃山谷의 松風閣詩

낙관이 비교적 많이 행하여지던 시기의 작품이지만 낙관이 전혀 없다.중간과 말미에 무수한 인장이 날인되어있지만 황산곡 본인이 알인한 것이 아니고 후세인들의 감상인 또는 수장인 등이다. .
 작품에 나타나는 싯구에는 화제 이외에 제발(題跋)이란 것도 있는데 이 제발이 낙관의 일부인가 하는 문제는 단순하게 정의되어지기 어렵다. 최초에는 앞쪽의 것을 제(題)라 하고 뒤쪽의 것을 발(跋)이라 했으며 이를 합쳐서 제발이라고 하는데 현대에 와서 앞쪽에는 문장을 쓰지 않고 짧은 어구(語句)를 적어 제(題)대신 제목이라고도 하고 있다.

따라서 제(題)란 그림,글씨의 제목이므로 낙관이 아니라 주제(主題)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 발문(跋文)은 작품제작시 동시에 기록이 되기도 하지만 작품이 완성된 후 별도로 기록되기도 하고,후대에 기록되기도 하므로 역시 낙관으로 보는 것은 무리한 관계로 제발은 낙관과는 별도의 독립된 요소인 것이다.
 
 
작품에 날인된 인영(印影)에는 성명인,아호인 이외에  인수인(引首印),압각인(押脚印),감상인(鑑賞印),소장인(所藏印)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역시 개자원화보에서 낙관에 포함하는 인영(印影)은 성명인,아호인 또는 이와 동등한 역할을 하는 인장을 관기(款記)한 묵서(墨書)와 함께 날인하는 것에 국한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감상인,소장인 등은 타인의 인장이며 인수인,압각인은 장식성이 강하여 성명인,아호인과는 그 용도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제작자가 누구인가를 확인하는데 필요한 인영까지만 낙관에 포함시키는 것이 타당하다 하겠다. 참고로 전각에서는 인장의 측면에 방각(傍刻)된 것은 측관(側款)이라 하고, 서화 아닌 기물에서 보이는 서명도 낙관이라 할 수 있지만, 이것은 명(銘)이라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
 
서화작품에 인장을 날인한 것은 송대(宋代)에 시작하여  원대(元代)부터 활발하게 되었으나 당대(唐代) 말까지는 인장을 사용한 예가 드믈므로 당(唐) 시절의 서화에는 당연히 인장이 날인되어 있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낙관이란 묵서 부분에 대한 지칭인데 애초에는 그러하던 것이 점차 인장의 날인이 보편화되면서 기록과 인영(印影)의 유기성 때문에 인장의 날인이 낙관에 포함되어 정의된 것으로 판단된다. 싯구를 넣는 행위 역시 최초에는 행하여지지 않던 것이 차츰 보편화되면서 낙관의 일부로 인식되어지는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3. 낙관의 현대적 해석
개자원화보에 의한 낙관의 정의는 위와 같이 해석할 수 있거니와, 그 이후로 서화의 다양화와 더불어 낙관도 다양해져서 주제 이외에 부가되는 글귀나 인영이 여러가지의 유형을 보이고 있으니, 자연히 낙관에 대한 현대적 해석도 그리 간단하지는 않게되었다. 그러므로 현대에 와서 어느 부분까지 낙관에 포함되는지를 정의하는 것은 몹씨 어려운 것이며, 어떤 면에서 보면 그렇게 정확히 정의를 내려야 할 것인가 하는 의문도 있다.

단지,용어의 정의는 연구자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더라도 도장 또는 인장을 일러 낙관이라 하는 것은 전혀 그 근거를 확인할 수 없는 잘못임을 밝혀두며, 우리나라 전통문화의 거리인 인사동에서 도장을 새기는 점포에 "낙관 파드립니다"라고 써 붙여 놓았다던가 일부 서화가들이 인장 찍는 것을 "낙관 찍는다" 라고 표현하는 것 등은 바로 시정되어야 한다.
 

寫經殘券(安弘嵩). 六朝.
400-500년 경의 글로서 말미에 卷第五十五第卄八品 法師慧融經 比丘 安弘嵩란 관지가 쓰여져 있다.
 
 
4. 낙관의 발생과 변천

낙관이란 앞의 정의에서도 밝혔듯이 서화의 주제를 보완하는 부수적 위치에 있는 글이다. 그런데 당(唐) 이전의 여러 대가들의 작품에서는 낙관 찾기가 쉽지 않다. 낙관이 보편화 되기 시작한 것은 송(宋) 이후의 일이기 때문에 그 전에는 특별히 낙관이라 할만한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손과정(孫過庭)의 서보나 당(唐) 말기의 장언원(張彦遠)이 화론(畵論)과 화인전(畵人傳)을 합하여 835년에 편집한 책 역대명화기(歷代名畵記)에도 그림 감식과 감정, 감상, 용필법,모사법 등에 관한 내용은 있어도 낙관에 관한 언급은 없다.

서보에는 서예 이론이 상세히 기술되어있고, 역대명화기는 이 책으로 인해 당시까지 의문시 되던 당(唐) 및 그 이전의 회화사가 명백해졌다는 정도의 수준 높은 저술인 만큼 여기에 낙관에 대한 기술이 없다는 것은 곧 결국 당나라까지는 낙관이라 할만한 것이 많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된다.
 
이후 송(宋)에 이르러 서화작품에 명사들이 자신의 감회를 나타내는 글과 시문을 기록하는 풍류가 유행하기 시작하였으며, 이 것이 널리 퍼져 오늘날의 낙관으로 발전한 것으로 본다. 원말(元末) 4대가의 한 사람인 예찬(倪瓚 1301-1374 )은 제관(題款)을 길게 하거나 화찬(畵讚)을 기록한 다음 자신의 인장을 찍었는데 이에 영향을 받아 후세 서화가들이 따라 하므로 서화작품에 낙관하는 것이 유행하게 되었다. 명(明)의 문팽(文彭  1498- 1573)이 자기 도장을 스스로 새겨 사용한 이후 서예가들은 서화용 인장의 활용에 눈을 돌리게 되었으며,  이러듯 작품의 부가적 설명과 제작자의 신표(信標)가 필수적으로 구비되기 시작하면서 낙관은 서화형식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이후 서화에 점차 미학적 개념이 증가되면서 낙관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쪽으로 변모하여 왔는데, 현대에는 설명이나 확인의 의미 보다는 미적요소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 하겠다. 낙관의 별칭으로서 관(款), 관기(款記), 관서(款書), 관지(款識), 제관(題款), 제기(題記) 등이 함께 사용되고 있다.
 
5. 낙관의 중요성

낙관에는 제작시기,작가의 성명이나 아호 등이 있으니 우선 어느 때 누가 이 작품을 제작하였는가 하는 의문이 해소될 수 있다. 특히 세월이 많이 흐른 후에 제작자를 판단하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인 관계로 낙관이 있음으로 해서 진위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作  忍無辱
낙관할 위치를 고려하여 주문(主文)을 작성하고 낙관을 채워 균형을 맞춘 경우이다.
 또한 하나의 작품에 주제(主題)만 표현되었을 때엔 단조로움이 있을 수도 있지만 부제(副題)에 해당하는 낙관이 존재하므로써 음과 양, 허와 실이 대비되어 입체감 있는 평면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중세기 이후의 서양미술은 온통 색의 마술인양 현란하게 빛과 색이 율동한다. 이 과정에서 혹은 원근법이 없어지기도 하고, 명암법이 없어지는가 하면 대상 자체가 보이지 않기도 한다.

대상이 요동치지 않으면 변화를 구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양의 서화는 낙관이 동원되므로서 주제와 낙관이 잘 어우러지기만 하면 주제 자체를 전혀 일그러 뜨리지 않고서도 여러 가지 변화가 구사되는 것이다. 특히 붓글씨작품의 경우 가독성이 중시되는 관계로 마음 내키는대로 형태를 변경할 수 없는 것이기에 낙관을 적절히 활용한다는 것은 대단히 의미있는 일이다.
 
 
낙관에는 인장의 날인이 포함된다. 인장이 찍혀 보이는 자국을 인영(印影) 또는 도서(圖署)라고 하는데 검은색으로 작업한 한 쪽에 빨간 색 인영이 빛나고 있을 때 그 조화로움은 신비스럽기까지 한 것이다. 필요에 따라서는 낙관의 모든 묵서(墨書)는 생락하고 인장만 한 방(方) 찍어 주문과 어울리게 하는 경우도 생기는데 넓은 여백에 단 하나의 붉은색 인영이 주는 미학적 가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중국의 상류층 인사는 관어(官語)을 알아야 하고 금석(金石)을 알아야 한다고 한다. 그만치 전각은 문화인의 필수적인 교양인 것이다. 수준 높은 인장을 소장하였다가 검인(鈐印 도장 찍는 행위) 하였을 때 감상할 수 있는 품격있는 도법(刀法)은 동양의 서화작품 아니면 감상할 수 없는 서예술의 진수이다.
 
송(宋),원(元),명(明),청(淸) 시대처럼 작품제작자의 성명을 밝히고,그 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하여 검인(鈐印)되는 것이 낙관의 주 목적이라면 낙관은 더 이상 현대미술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현대는 정보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이 방법 말고도 이 정도의 욕구를 충족시킬 만한 방법은 얼마든지 많기 때문이다. 서화작품이 하나의 완성된 실체로서 감상자 앞에 놓이기 위해서는 주제와 낙관이 통일적으로 구성되어 어울려야 한다. 다시 말해서 주제는 말할 것도 없고 이의 부수적 존재인 낙관까지도 미의 창조를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상호 유기적 결합을 통하여 미적 효과가 상승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낙관을 소홀히 다룬다면 결국 서화작품은 미래를 향하여 나아갈 수 없게 될 것이다. 한 작품 위의 모든 요소들은 그 전달하고자하는 내용의 중요도에 관계없이 동등한 수준의 미적 가치를 지니면서 어울려야 현대인에게 호소력을 갖는 것이다.
 

왕형렬作 겨울나기 1994 한지 먹 혼합재료
서양회화 양식을 따라 그린 그림대상만 표현되어있고 낙관은 전혀 없다
 
 
6. 낙관의 종류   

낙관의 형태에는 그 분류기준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다. 작품제작의 동기나 시기, 성명, 아호 등 제작자 자신에 관한 사항만 기재하였을 때는 이를 단관(單款)이라 하고, 받을 사람에 관한 내용까지 함께 적으면 쌍관(雙款)이라 한다.  쌍관일 경우 받는 사람에 관한 기록을 먼저하게 되므로 상관(上款), 제작자 자신에 관한 기록을 하관(下款) 이라 한다. 관기(款記)의 길이가 길면 장관(長款), 짧으면 단관(短款)이라 하는데 길고 짧은 기준은 별도로 정해놓을 수가 없는 문제여서 작품 주문(主文)의 길이, 작품의 크기나 글자의 대소등 제반 여건을 감안하여 판단하게 된다.

 

7. 낙관의 중요 구성요소

전술한 바와 같이 낙관에 포함되는 요소는 여러가지가 있다.  그 중 중요하고 많이 쓰이는 부분에 대하여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세시(歲時)

낙관에서 성명과 아호 이외에 가장 많이 쓰여지는 것이 제작년도와 세시(歲時)인데 이의 경우는 한자어로 된 별칭들이 매우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어  이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월
 정월(正月) 상월(上月) 원춘(元春 ) 초세(初歲) 원월(元月)  춘수(春首)  춘시(春始) 조춘(肇春) 맹춘(孟春) 초춘(初春) 신춘(新春) 상춘 (上春) 단월(端月) 건인(建寅) 왕월(王月)   인월(寅月)  맹양(孟陽) 초월(初月)  시춘(始春)  개세(開歲)  근월(謹月)  신양(新陽) 태양(泰陽)  삼원(三元)  축월(祝月)  단월(端月)
 
2월
 중춘(仲春) 여월(如月) 여월(麗月) 협종(夾鐘) 중양(仲陽) 영월(令月)  중화월(中和月) 매월(梅月)
 
3월
 계춘(季春) 고세(姑洗) 모춘(暮春) 설월(楔月) 잠월(蠶月)  화월(花月)  도리월(桃李月) 가월(嘉月) 양춘(陽春) 춘화(春和) 춘난(春暖)  화우(花雨)  도화(桃花) 가절(佳節)
 
4월
 조하(肇夏) 여월(餘月) 청하월(淸和月)중려(仲呂) 맹하(孟夏) 초하(初夏) 매월(梅月) 맥추월(麥秋月) 양월(陽月)

정양월(正陽月) 농월(農月)  묘월(卯月) 시하(始夏)  맥량(麥凉)
 
5월
 중하(仲夏) 고월(皐月) 초하(超下) 류월(榴月) 포월(蒲月) 단양월(端陽月) 단양(端陽) 신록(新綠) 유하(榴하)
 
6월
 계하(季夏) 장림(長霖)차월(且月) 임종(林鐘) 만하(晩夏) 초월(秒月) 하월(荷月)  복월(伏月)
 
7월
 조추(肇秋) 상월(相月) 이칙(夷則) 맹추(孟秋) 상추(上秋) 초추(初秋) 신추(新秋) 과월 (瓜月) 난월(蘭月) 칠석월(七夕月)  양월(凉月)  난추(蘭秋) 염서(炎暑)  성하(盛夏)
 
8월
 중추(仲秋) 안래월(雁來月) 청추(淸秋) 장월(壯月) 남려(南呂) 계월(桂月) 중상(仲商) 엽월(葉月) 유월(酉月)
입추(立秋) 오추(梧秋)
 
9월
 계추(季秋) 현월(玄月) 무사(無射) 만추(晩秋) 모추(暮秋) 초추(秒秋) 계상(季商) 국월 (菊月) 궁추(窮秋)소추(素秋)  상월(霜月)  국추(菊秋) 신추(新秋) 중양(重陽) 풍진(楓辰) 추양(秋陽)
 
10월
 조동(粗銅) 양월(陽月) 응종(應鐘) 맹동(孟冬) 양월(良月) 초동(初冬) 해월(亥月) 길월(吉月)  소춘(小春)  만추(晩秋) 국향(菊香)  추심(秋深) 상천(霜天
 
11월
 중동(仲冬) 고월(辜月) 황종(黃鐘) 자월(子月) 상월(霜月) 상강월(霜降月) 초한(初寒) 백국(白菊) 상동(上冬)
 
12월
 계동(季冬) 가평(嘉平) 대려(大呂) 만동(晩冬) 계월(季月) 모동(暮冬) 초동(秒冬) 궁동 (窮冬) 극월(極月) 납월(蠟月) 궁음(窮陰) 삼동월(三冬月)  여월(餘月) 제월(除月)  엄월(嚴月) 빙동(氷冬)  제랍(除臘) 심동(深冬)
 

날자별
 1일 - 삭(朔)    15일-망(望)    16일-기망(旣望)
8일이전 - 상현(上弦)     23일 이후 - 하현(下弦)

1-10일: 상순(上旬)  상한(上澣)  상완(上浣)
11-20일 : 중순(中旬) 중한(中澣)  중완(中浣)
21-말일 : 하순(下旬) 하한(下澣)  하완(下浣)
 

 
 
<2> 존칭(尊稱), 겸칭(謙稱), 겸사(謙辭)

상대방에 관한 존칭과 자기 자신에 관한 겸칭(謙稱)을 사용함에 실수가 있으면 상대방에게 결례가 되며 작품의 격을 손상시키므로 각별 유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손윗분에
대한 존칭

 일반적으로 ○○先生, ○○方家 ○○女士 ○○老師  ○○大方家  ○○先生大人  ○○法家  ○○道家  ○○老   OO翁이라 쓰는 것이 좋으며 이어 指正 法正 敎正 正字 正腕 正之 淸賞 淸鑑 淸覽 雅屬 雅正 斧正 正筆 正書 慈鑑 등의 겸사(謙辭)를 쓰면 무난하다. 
 
동년배에
대한 존칭
 ○○同志 ○○書友  ○○仁兄 ○○同窓   ○○大兄  ○○仁友 등의 존칭을 쓰며 그 뒤에 存念  惠存 留念 留存  淸賞 囑書 命書 雅屬등의 겸사(謙辭)를 쓸 수도 있다.자기 자신에 대하여는 小妹○○ 小弟○○ 등을 적절히 쓴다.
 
연하자에
대한 호칭

 ○○君  ○○孃   ○○學生  ○○賢弟  ○○賢侄  ○○愛孫 ○○愛女 등의 호칭을 쓴다.
 
 
8. 화제(畵題)와 제발(題跋) 

그림을 그렸을 경우 흔히 화제(畵題)라 하는 글을 병기하는데, 화제란 그림 주제(主題)에 관하여 그 위에 쓰는 시문, 또는 그림의 제목을 말하는 것으로써 역시 낙관의 일부로 해석하고자 한다. 중국 후한(後漢)의 희평석경(熹平石經)으로 유명한 서화가 채옹은 영제(靈帝)의 명에 의하여 적가후오대장상도(赤家侯五代將相圖)를 그리고, 여기에 찬문(撰文)까지 쓰게 되었는데 이 찬문이 오늘날 동양화에 있어서 보이는 화제(畵題)의 시초라 할 수 있다.

물론 화제가 없는 그림도 있고, 오직 그림과 인영(印影)만이 존재하는 그림도 있다. 요즈음은 서양미술의 영향을 받아 전통회화 영역 안에서도 그림 이외의 부수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그림도 많이 보인다. 특히 현대성을 강조하는 그림,글씨의 경우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작품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는 환영할 일로 보지만, 글씨에 자신이 없어 꼭 필요한 기록마저 생략하는 경우가 있다면 이는 전통문화의 특징을 잘 소화하지 못한 결과이므로 매우 염려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글씨나 그림의 주제를 완성한 후 화제나 인영을 적절히 보완하였을 때 비로소 동양미술의 독특한 아름다움이 잘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화제와는 달리 제발(題跋)이라는 것이 있다. 중국에는 서적 ·법첩,·금석탁본,·서화 등의 앞뒤 여백에 그 유래, 소장가나 감정인의 소견, 감상문, 비평 등을 적는 풍습이 있으며 그러한 특별한 문장을 제발이라고 한다. 따라서 제발은 서화 작품이 완성된 후 별도로 기록되게 마련이다.낙관의 일부라는 견해도 있긴하나 작품이 완성된 후 수백년 후에 기록되는 경우도 있고 별도로 써서 붙여놓기도 하여 작품의 일부로 인정하기 어려운 점도 있는 관계로 낙관의 한 부분으로 보는 것은 무리하다 하겠다.
 

추사 김정희의 歲寒圖.
작품 제작시 본인이 직접 써넣은 장문의 제발이 유명하다. 인영이 여러군데 보인다.
 
제발이 성행한 것은 송나라 때부터이며 문학에서는 구양수(歐陽修) ·소동파(蘇東坡) ·황정견(黃庭堅)의 글이 많다. 제발은 주로 제작자 아닌 사람들에 의해 기록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종종 작가 자신이 써 넣는 경우도 있다. 제주도에 유배당한 추사 김정희는 세한도에 그의 제자 이상적(李尙迪)에 대하여 고마움을 표하고 아울러 의로움을 칭송하는 장문의 발문을 달아 그가 지닌 지조론의 편린을 보여주고 있다. 제발은 또 다른 말로 발문(跋文),화발(畵跋), 제시(題詩), 화찬(畵讚)이라고도 한다.
 
 
 

왕형렬作 겨울나기  1993. 한지. 먹. 담채
한국화이지만 거의 여백을 두지 않은 그림으로서 우측 하단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의 인영만 보인다.
 9. 서화용 인장의 역사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인장은 은주(殷周)시대의 것이다. 그 후 춘추전국시대와 한(漢)시대에 많은 인장들이 사용되었지만 모두가 실용적인 일상사에 사용되기 위한 인장들이었다.그 만치 인장의 역사가 깊으며  수많은 각종 인장들이 출토되어왔다. 인장이 가장 발달하였던 시기는 한대(漢代)였지만 작품에 찍은 것은 보이지 않고 그러한 현상은 당(唐)의 말기까지 계속된다. 송대(宋代)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인장은 서화용으로도 사용하게 되었다. 관기(款記)와 아울러 인장이 서화작품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현대적 의미를 지닌 인장의 초기의 창시자는 명(明)의 문팽(文彭)과 하진(何震)으로서 실용적인 용도에 국한하던 인장을 자신이 직접 새겨서 서화작품에 찍기 시작하였는데 이 것이 형식화 되었다. 이후 인장이 서화에 예술적 필수품으로 등장하면서 오늘날처럼 당연히 서화작품에는 인장이 날인되게 된 것이다.

또한 수장인, 당호인 등이 다양하게 사용되므로써 인장 및 인영 자체가 서화와 함께 감상의 대상물이 되었다. 더욱이 원대(元代)에 들어서는 아름다운 화유석(花乳石)과 청전석(靑田石)이, 명대에는 수산석(壽山石)이 인장의 재료로 개발되어 서화가들의 애호를 촉진하게 되었으며 또한 작가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인장을 새기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예술로서의 인장, 즉 전각이 발전해 가는데 중요한 바탕이 되었고 이 바탕이 서화 작품의 예술성 향상에도 일조를 하게 되었다. 
 
 
10. 인장의 종류
인장을 구분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공무에 사용하는가 아니면 사무에 사용하는가에 따라 관인(官印)과 사인(私印)으로 구분한다. 그 중 서화에 쓰이는 인장을 사인이라 하는데 그 종류는 다음과 같다.
 
1.새겨진 내용에 의한 구분

 
성명인(姓名印)
 서화 제작자의 성명을 새기며 주로 백문(白文. 음각)으로 새긴다.
 
아호인(雅號印)
 서화 제작자의 호를 새기며 주로 주문(朱文. 양각)으로 새긴다.
 
당호인(堂號印)
 서화제작자의 당호(堂號)를 새기며 헌당인(軒堂印) 또는 재관인(齋館印)이라고도 한다
 
길어인(吉語印)
 주로 작품의 여백에 찍게 되며 아름다운 문구를 새긴다.
 
화압인(花押印)
 이름을 새기되 문자를 약간 흘려서 도형처럼 새기며 서압인(署押印)이라고도 한다. 주로 초서나 행서 등으로 써서 새긴 것인데 오늘날의 사인(signature)과 같은 형식으로 사용되었다. 한편 관리들이 많은 문건에 일일이 수결(手決)하기가 번거로우므로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새긴 인장이 있는데 이를 수결인(手決印)이라 하며 결재 등 공무에 사용하였다. 수결인은 화압인과 모양은 유사하나 화압인은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용도는 구분이 분명하다.
 
초형인(肖形印)
 사물의 모양을 새겨넣은 인장이다.
 
장서인(藏書印)
 책을 획득하였을 때 소유주임을 표시하기 위하여 찍는 인장이며 수장인(收藏印)과도 거의 동일한 용도로 쓰인다.
 
감정인(鑑定印)
 서화용품을 감정하였음을 확인하기 위하여 찍는 인장이다
 
감상인(鑑賞印)
 화용품을 감상하였음을 확인하기 위하여 찍는 인장이다.
 
이 이외에도 여러가지 용도의 인장들이 있으나 그 사용이 흔치 않거나 서화용이 아닌 관계로 일일이 열거하지 않는다.
 
 
2. 찍히는 위치에 의한 구분
 
작품을 제작한 후 기본적으로 찍는 인장은 성명인이나 아호인이다. 대개의 경우 이 인장을 날인하고나면 제작이 마쳐지지만, 여백이 남아 그 자리에 인장을 날인하여야만 작품성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가 있다. 이 때 당호인등 적절한 인장을 골라서 찍게 되는데 그 찍히는 위치에 따라 명칭이 달리 주어진다.
 
인수인(引首印)

 주로 작품의 오른쪽 상단에 찍으며 수인(首印)이라고도 한다. 원대(元代) 이비(李泌)가 단거실(端居室)이라는 당호인(堂號印)을 찍은 것이 그 효시(嚆矢)인데 당호인 이외의 인장을 날인하는 것은 격이 높지 못하다는 주장도 있다.
 
요압각인(腰押脚印)

 작품의 허리 부분에 찍히면 요압각인이다.
 
압각인(押脚印)

 작품의 아래 부분에 찍히면 압각인이라 한다.
 
이와 같이 자유롭게 위치를 선정하여 찍을 수 있는 관계로 위의 3가지 인을 총칭하여 유인(遊印)이라 한다는 설이 있으나, 일본에서 만들어진 용어로써 학문적 품격이 높지 못하다는 견해가 일본 서예계에서도 발표된 적이 있는 용어이다. 
 
 
3. 인장에 관한 용어
인장은 인(印), 신(信), 인신(印信), 도장(圖章), 새(璽), 인감(印鑑),도서(圖書)등의 별칭을 가지고 있다.도서(圖書)와 인장(印章)의 합성어로서 도장(圖章),  또는 인(印)과 장(章)의 합성어로서 인장(印章)이라는 용어도 사용한다. 인장을 찍는 행위를 날인(捺印),압날(押捺) 또는 검인(鈐印)이라 하며, 찍혀있는 흔적에 대하여는 인영(印影), 인흔(印痕)등의 말로 표현한다.
 
결론
낙관은 어디까지나 서화의 주제(主題)에 부수적으로 존재하는 첨가장치였으나 서예가 현대화 되어감에 따라 점차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져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닥아오는 세계에서 요구하는 서예는 보편성을 갖추고 정통성을 자랑하는 서예가 아니라, 개인의 심성을 중시하고 새로운 실험을 중시하는 맞춤형 서예가 될 것이다. 따라서 서화작품의 내용은 과거에 비해 많이 시각미술로 변모해야할 것이며 따라서 화폭의 주 내용의 변화만 가지고 만족할 수는 없는 관계로  낙관을 적극적으로 개선하여 미의 창조에 활용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에 대해 충분히 익히고 미래를 대비하지 않으면 자칫 귀중한 소재를 표현대상에서 제외하고 넘어가는 우를 범할지도 모르는 일이며, 이러한 자기 성찰에는 서예용어의 올바른 사용도 포함되어있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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