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에는 신새벽 건너오는 바람이더니
세시에는 적막을 뒤흔드는 대숲이더니
다섯시에는 만년설봉 타오르는 햇님이더니
일곱시에는 강물 위에 어리는 들판이더니
아홉시에는 길따라 손잡은 마을이더니
열한시에는 첫눈 내린 날의 석탄불이더니
열세시에는 더운 눈물 따라 붓는 술잔이더니
열다섯시에는 기다림 끌고 가는 썰물이더니
열일곱시에는 깃발 끝에 걸리는 노을이더니
열아홉시에는 어둠 속에 떠오르는 둥근 빛이더니
스물한시에는 불바다 달려가는 만경창파이더니
스물세시에는 빛으로 누빈 솜옷이더니
스물다섯시에는 따뜻하고 따뜻하고
따뜻한 먼 나라에서
아름다운 사람 하나 잠들고 있다.
슬픔의 바다에서 자비의 바다로
고정희 시인의 ‘그대의 시간’이라는 시입니다. 한시 세시 다섯시, 라고 시인이 한사코 홀수의 시간을 여미는 것은 아마도 그 기다림의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일 테지요. 이 몸으로는 가서 닿을 수 없는 거리인 탓일 테지요. 그대를 만나기 위해 어디에도 머무를 수 없다는 뜻일 테지요. 스물다섯시는 지금여기 이승의 시간이 아닙니다. 황지우 시인이 표현한 것처럼 “자기를 매질하여 일생일대의 물 위를 날아가는” 우리는 “이 바다와 닿은, 보이지 않는, 그러나 있는, 다만 머언, 또 다른 연안”에 가서야 만날 수 있는 그 따뜻하고 따뜻한 시간 안에서 그분을 만날 테지요. 그 나라에서 아름다운 사람 하나 만날 테지요. 그때는 이미 그 사람이 내가 되고, 내가 그 사람이 되어 한(恨)도 없이 부끄러움도 없이 잠들 수 있을 테지요.
그 나라에 이르기까지 건너야 할 바다가 있다면 그건 슬픔의 바다일 것입니다. 가련한 것들을 불쌍하다, 말하며 흘린 눈물들이 빛나는 구슬로 떨어지는 바다일 것입니다. 고정희 시인은 <지리산의 봄>이라는 시집을 엮으면서 이렇게 썼습니다. “흘릴 눈물이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시도 때도 없이 두 눈을 타고 내려와 내 완악한 마음을 다숩게 저미는 눈물, 세상에 남아 있는 것들과 세상 밖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게 하는 눈물, 언제부턴가 눈물은 내 시편의 밥이 되어 버렸고, 나는 그 눈물과 마주하여 지금 아득한 시간 앞에 서 있다”
예수가 그런 분이었죠. 슬픔의 사람이 되어 이승을 건너 하느님 자비의 바다로 훌쩍 넘어가신 분이었죠. 세상의 모든 아픔을 제 아픔으로 여기며, 모든 서러움을 껴안고 걸음을 옮기셨던 분, 그렇게 세상의 끝까지 가야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람이었죠. 슬픔이 낳은 눈물이 기쁨으로 젖어들 때 비로소 구원의 빛을 잡을 수 있다고 조근조근 말씀하시는 그대, 예수 말입니다.
그분의 동무가 되는 길
스스로 목수였던 유용주 시인은 예수가 “스스로 못박힘으로 세상에서 가장 큰 목수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도 처음 목수일을 배울 때에는 무수하게 자신의 손가락을 내리쳤으리라.”고 공감하며 전율합니다. 그분도 나처럼 “으깨어진 손가락을 장갑으로 감추고” 일당 사만오천원을 받으며 세상의 공사판을 떠돌아 다니셨을 것이라고 가늠하는 것이지요. 온몸으로 시(詩)를 쓰는 자의 눈빛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생애를 통해 이런 동무를 만날 수 있다면 그래요, 다행스럽고 다복한 일이겠지요.
가장 위대한 목수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수직으로 내리꽂아 점점이 머리만 남은 못처럼, 목수는 쉴 새 없이 집을 짓지만 그 집을 소유하지도 않습니다. 연장 가방만 챙기면 어디든 떠날 수 있는 것이지요. 예수는 평생 떠돌아 다녔지만, 제 집을 지은 적이 없습니다. 다만 그 길에서 만난 동무들이 그분을 그리워하며 그가 걷던 길을 마저 걷기를 갈망할 따름입니다. 예수는 그들을 ‘내 사람’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다만 ‘벗’이라 부를 뿐입니다. 서로 이름을 불러주며, 가까이 무릎을 대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동무로 살자고 초대합니다. 그 길을 걷는 동안, 그대가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성인도 되고 현자도 되고, 전사도 되고, 하느님 안에서 벗이요 형제요 자매가 되는 것이지요.
▲ 사진/최충언 |
스물여섯살의 청년으로 1942년 겨울에 더블백 하나를 손에 들고 홀로 겟세마니 수도원에 도착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칠층산>이라는 자서전으로 유명해진 토마스 머튼입니다. 1915년 프랑스의 프라드에서 태어난 머튼은 열네 살 되던 해에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컬럼비아 대학에서 공부하며 젊은 공산주의자 모임에 참석하며 사회적 참상에 눈을 뜨기도 했지만, 1938년에 무어 신부에게 종교교육을 받고 가톨릭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뉴욕 올린에 있는 보나벤투라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머튼이 갑자기 수도원에 찾아가게 된 것은 뉴욕에서 만난 친구 로버트 랙스 때문이었지요. <칠층산>을 읽어보면, 가톨릭신자도 아닌 유대인 출신의 랙스와 어느 봄날 뉴욕 6번가를 걷다가 이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답니다.
랙스가 느닷없이 돌아서더니 내게 물었다.
“그런데 자넨 대체 뭐가 되고 싶은 건가?”
“모르겠어. 그저 좋은 가톨릭신자가 되고 싶다고 해두지.”
“뭐야, 좋은 가톨릭신자가 되고 싶다고? ... 성인이 되고 싶다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니냐?”
“어떻게 성인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바람으로써”
“내가 성인 되다니, 말도 안 돼...”
“성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성인이 되기를 바라는 것뿐이야. 자네가 동의하기만 한다면 하느님은 당신의 뜻대로 자네를 빚어주실 거라는 사실을 믿지 않나? 자네가 할 일은 그저 그것을 원하는 것뿐이야.”
하느님은 이렇게 엉뚱한 방법으로 예수의 길벗을 부르시는 모양입니다. “네가 친구가 되어달라”고 우리에게 청하는 것이지요. 오히려 나중에야 가톨릭신자가 되었던 유대인, 랙스가 하느님의 초대를 전하는 예언자가 되어 머튼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대 보지 않아도 나 그대 곁에
우리는 그분을 갈망함으로, 그분의 길을 따라 걷게 되고, 그 길 끝자락에서 그분을 만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과 하나가 될 것입니다. 고정희 시인의 ‘하늘에 쓰네’라는 시처럼, 이윽고 사랑이 뭔지 문득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대 보지 않아도 나 그대 곁에 있다고
하늘에 쓰네
그대 오지 않아도 나 그대 속에 산다고
하늘에 쓰네
내 먼저 그대를 사랑함은
더 나중의 기쁨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내 나중까지 그대를 사랑함은
그대보다 더 먼저 즐거움의 싹을 땄기 때문이리니
가슴 속 천봉에 눈물 젖는 사람이여
억조창생 물굽이에 달뜨는 사람이여
...(중략)..
그대 보지 않아도 나 그대 곁에 있다고
동트는 하늘에 쓰네
그대 오지 않아도 나 그대 속에 산다고
해지는 하늘에 쓰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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