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등
-정성수-
불빛 아래서 검은 잎을 갉아먹는 벌레였다. 그 여자는
노란 우산 속으로 내 팔을 끌더니
오빠, 놀다 가. 오늘 밤 쥑여 줄게
가을비 주적주적 삶을 적시고 있었다.
내 얼굴을 바라보던 그 여자의 얼굴이
지나가는 자동차 라이트에 덴 것처럼 흠찔하더니
잡은 손을 놓고 어둠 속으로 황망히 사라진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 희미하다.
나만 보면 괜히 택택거리던 계집애. 초등학교 육학년
내 옆자리에 앉았으면서도 유달리 나만 미워하던
그래서, 늘 나를 화나게 했던
내 학습장에 너는 나쁜 놈이라고 수 없이 쓰고도
시치미를 떼던
내가 왜, 나쁜 놈이었는지 숙제 같은
화인火印 하나 가슴에 찍어 준 생각할수록 얄미운
막걸리 집에서 숟가락을 들고 노래하는 것을
보았다는 말도 들렸고
진즉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는 소문도 들리는
사내 이름 같았던 그 희남이가 아니기를
여자가 사라진 골목에서
나는 오랫동안 홍등이 되어 비를 맞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