言/젖지않을江

당분간은 나를 위하여

oldhabit 2008. 5. 24. 11:22

  *진실과 고백

 

 누군가와 오랫동안 눈을 맞추는 일은 정말 고역이다

2초 정도 상대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면 몸이 더워진다

체온이 3도 정도는 올라가는 것 같다.

볼도 홧홧해진다.

그러다가 얼른 눈을 피해버린다.

 

함백산 근처였다.

자작나무가 성큼 다가왔다.

소금에 절인 정어리처럼 공허한 눈동자를 가진 자작나무,

내게 물었다.

 

'네 평생 단1분이라도 진실하게 고백해 본 적이 있더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바람이 '휘익' 하고 숲을 빠져나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

자작나무의 눈동자는 계속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실과

고백.

 

나는 때로 나에게 묻는다.

'나는 왜 진실해야 하며 네게 고백해야 할 이유는 무엇이냐?'

 

적당히 떨어져서 살자.

가까이 오지 마라.

 

 

*-이런-풍경과 만나면

 

기어이 너를 사랑해야겠다는 다짐은

소금창고처럼 스르륵 허물어져 내리고

인생은 내내 이별 쪽으로만 향하는 것이 아닌가 하며

부질없어진다

 

풍경은 우리를 어루만지지만

때로는 아득히 밀어낸다.

 

 

*홀연한 여행

 

여행은 홀연했다

바람이 불어오면 떠났고

비가 그치면 길을 나섰다.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당연히 당연했으며

그렇기에 맹목적이었다.

돌아오겠다는 기약 따위는 없었다.

위험하다고 했지만

위험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었다.

나는 너에게 홀연히 건너갔으며

나는 두렵지 않았고

주저하지 않았다.

나는 다만 너를 여행중일 뿐이다.

잠시 깃들다 가겠다.

 

 

*기다리는 자세

 

사랑은 버티는 거다

너를 가지겠다는,

기어이 너를 내 손에 넣고 말겠다는 의지 하나로

버티는 거다

소금창고는 제 몸이 썩는 줄도 모른 채 소금을 안고 서 있다

그 자세는 집요하고 고요하다

그래서 외롭다.

나는 너의 얼굴을 안고 오늘 하루를 견딘다.

나의 연애는 언제나 애원조이지만

너는 언젠가는 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라는 실낱같은 가능성, 그것이 나를 가장 힘들게 하지만

기다려야 한다면 망하지 않고 기다릴 것이다.

네가 문을 열고 내 앞에 나타나는 그때까지

나는 내 사랑의 의지로 인해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소금창고는 속으로 울고 있다.

소금이 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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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분간은 나를 위하여'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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