言/젖지않을江

然書

oldhabit 2008. 5. 24. 11:25

 

              然書

 

*봉숭아물

 

봉숭아 꽃잎 따 조약돌로 콩콩 찧어 손톱 위에 얹어서 헝겊으로 처맸습니다.

하룻밤 자고나서 풀어봤더니 열손가락 손톱에 고운 봉숭아 몰빛이 들었습니다.

그리운 이여, .

문득 내 사랑도 이 같은 게 아닐까 여겨졌습니다.

한 때 난 당신에게 간절하였고 당신은 내게 무심하셨지요,.

당신에 대한 그 상처 난 마음을 처매놓은 자리마다 가슴에 분홍빛 물들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주황색으로 바래지던 그 분홍빛이 간절한 부끄러움이고 안타까움이란 것을 그때 처음 알았었지요.

그리운 이여,

그렇게 당신에 대한 사랑은 마음 물들게 하고 제 삶도 곱게 물들입니다.

노을 질 때마다 빠짐없이 당신 그리워졌던 이유가 내 가슴에서 번져 나온 빛깔이 그처럼 아름답게 하늘 물들인다는 걸 알았습니다.

 

 

*꿈

 

밝은 달 뜨는 밤 벚꽃나무 아래로 가 당신과 함께 한 사랑을 길게 펴고 나란히 눕고 싶습니다.

당신이 벗은 버드나무를 만지면 저는 봉긋하고 몽실거리는 수국처럼 바람에 흔들리지요.

당신이 제 몸으로 걸어 들어오는 동안 전 당신 마음속 맑은 물길로 흐르며 달빛 띄운 물소리를 냅니다.

아....... .그렇게 당신과 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내 몸속으로 맘 들이는 순간

거대한 벚꽃나무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해서

당신이 가쁜 숨결로만

내 마음에서 당신 몸을 거둬들이는 그 순간

하늘에 떠 있는 별보다 많은 벚꽃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그 꽃들이 전부 다 내 몸속으로 떨어져 내려 내 마음이 너무나 눈부시게 향기로워지는......  .

그런 꿈을 꾸었습니다.

당신과너무나 깊게 자고 싶은지

꿈 밖에서도 내 몸에서 흩어진 내 마음이

수없이 떨어져 내렸습니다.

 

 

*이별

 

당신........., 이제 우린 마지막이군요.

그럼 우린 다신 못 만난다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당신 내게 원하는 거 있으시면 지금 다 가져가세요.

당신이 늘 보기 좋아하시던 내 미소도 가져가고

내 긴 손가락과 내 뒷모습도 가져가세요.

원하시면 당신이 가득한 내 마음도 상자에 담아 꾸려주고

당신이 한때 열렬하게 사랑했던 내 몸도 리본 묶어

당신께 드릴게요.

당신이 날 영원히 떠나겠다는데 내가 무엇인들 아낌없이

못 드리겠어요? 내 목숨도 기꺼이 드릴 수 있지만 그건 당신이

너무 부담스러워 하실 테고....... .

날 깨끗이 잊겠다니 내 마지막 인사까지 가져가세요.

정말이지 신의 가호를 빌어요.

난 걱정이 돼요.

분명한 건 당신이 그 어떤 사람의 세상에 이주해 산다 해도

나와 함께 한 세계만큼 편하고 넉넉하지 못할 거예요.

우리가 함께한 세계는 공기만큼 내 사랑이 흔하고 풍부했지요.

내가 당신 너무 사랑한 탓으로 당신 삶이 무미건조해져 날 떠나는 거라면...... .

그래요.

삶도 사랑도 모험이 필요하겠죠.

다른 사람과의 한세상을 살아가심에 앞서 신의 가호를 당신께 빌어드려요.

 

                               김하인의 Love Letter'戀書' 中

 

                                          2008.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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