言/사는이치知

modernism

oldhabit 2008. 5. 24. 11:34

1. 모더니즘(modernism)의 개념

 

모더니즘은 현대주의 또는 근대주의로 번역될 수 있는 용어로서 일반적으로는 기성 도덕과 전통적 권위를 반대하고 자유와 평등 도시의 시민 생활과 기계문명을 구가하는 사상 예술적 사조를 의미한다. 문예사조로서 모더니즘은 대개 두개의 뜻을 가지는데 넓은 의미로는 상징주의 이후에 나타난 전위 예술 즉 인상주의 미래파 야수파 미래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주지주의 이미지즘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좁은 의미로는 주지주의적인 특성을 띠는 영국과 미국의 이미지즘과 모더니즘을 가리킨다.

 

2. 모더니즘의 시대적 조건

 

(1)사회적 배경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서구 사회는 자신들이 이룩한 문명에 대해 회의에 빠지고 사람들은 안정감을 잃는다. 사회적 갈등이 심각하게 전개됨으로써 구내와 국외적으로 큰 변란을 겪는다. 1차 세계 대전이나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은 서구가 직면한 위기를 단적으로 나타낸 징후들이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2차 산업 혁명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전화 라디오 항공기와 같은 새로운 기계와 그것의 출현에 따라 달라지기 시작한 사회 현상들로 말미암아 어떤 식으로든지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인식이 대두되었다.

 

(2)사상적 배경

모더니즘의 의미를 무엇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사상적 배경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대륙의 아방가르드주의나 영미의 주지주의나 다같이 일종의 지성주의 신비적 허무주의 불연속적 세계관 개인주의 사조 등에 의해서 일정하게 영향을 받고 있다. 대륙의 초현실주의의 경우 프로이트에 의해 개척된 정신 분석 이론에 의하여 인간의 내적 실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그것은 초월적 실재를 추구하던 상징주의와도 일맥 상통하는 점이 있다. 이에 비해 영미의 모더니즘은 T.E 흄의 불연속적 세계관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불연속적 세계관이란 종래의 유기적인 세계관을 거부하고 이 세계를 불연속적 기하학적 실재로 파악하는 관점을 말한다. 따라서 이들은 문학에서도 휴머니즘적인 입장을 버리고 작가가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는 지성적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3. 모더니즘의 문학이론

모더니즘은 그것이 전위 예술을 가리키느냐 주지주의적 경향을 가리키느냐에 따라 다른 문학 이론을 갖는다.

 

(1)아방가르드 이론

서구 대륙의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등에서 발생한 아방가르드주의는 현실의 삶에서 유리된 심미주의적 예술에 대해 반발하였다. 예술은 삶과 밀접하게 결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예술과 삶을 결합시키려는 예술 운동이 일어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운동은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초현실주의와 독일의 표현주의라고 볼 수 있는데 초현실주의자들은 프로이트의 발견에 힘입어 무의식의 중요성 성문제에 대한 명쾌한 접근 가능성 꿈과 욕망의 힘을 인식한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이러한 인식에 기반하여 정신세계에 완전한 자유를 부여하고자 하였고 이를 위해서 삶을 총체적으로 혁신하고자 한 정치적 혁명 운동에 가담하기도 하였다. 표현주의자들은 내면의 깊은 영혼에서 새로운 기점을 얻기 위해 비교적 내면적인 것을 추구한 파와 예리한 정신으로 현실의 개조를 지향하는 파가 있었다. 내면적으로 충일한 삶을 지향하여 시에서는 장엄하고 황홀한 것을 추구하였으며 드라마에서는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강조하였다.

 

(2)주지주의 이론

영미의 주지주의는 낭만주의의 유기적 세계관에 대한 반대로 볼 수 있다. 인간이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매우 한정되고 고정된 존재라는 인식하에 전통과 조직에 의존하는 것이 문학가의 적절한 태도라는 관점이었다. 이에 따라 감정의 분출보다.지성의 작용에 의해 이미지를 창조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 시인은 과거의 문학사에 대해 역사 의식을 가지고 시작에 임해야 한다는 이론을 내세웠다.이것은 엘리엇의 <전통과 개인의 재능>에서 전형적으로 표출된 이론으로서 낭만주의의 개성론에 대해서는 시인이 자신의 개성을 죽이고 전통과 권위에 의지해야 한다는 몰개성론을 주장하였고,시인의 인상을 낳은 원래의 사물에 등가물이 되는 시적 이미지를 창조해야 한다는 객관적 상관물 이론을 창작 방법론으로 새롭게 주장한다.

 

4. 모더니즘의 전개

 

(1)아방가르드 운동

20세기에 들어서 전위 예술을 선도한 것은 피카소에 의해 주도된 입체파 운동이었다.사물을 원래의 형태와 닮게 그리지 않고 입방체로 표현하면서 예술은 재현이 아니라 표현이 되기 시작하였다.이 운동에 자극 받아 문학에서도 전위적인 활동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그 최초의 형태는 이탈리아의 마리네티가 주도한 미래주의로 세계의 본질이 운동과 생명력에 있다는 관점에서 기존의 고전주의적 규범을 버리고 현대적 경험을 시에 도입하려고 하였다.자동차나 기관총 소리 기계의 소음을 시의 재료로 하여 폭력,모험 등의 원시적 감정을 되살리려고 하였다. 현대의 역동적인 삶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기존 예술의 완결된 구조를 버리고 통사법의 해체,단어들의 변형,인쇄 활자의 혼용,자유어의 창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1차 세계대전 중 스위스에서 탄생한 다다이즘은 기존 예술의 모든 규범과 이념들을 버리고 '광란시'를 시도했으며 작품의 유기적 구성이나 주제 의식 이미지 창조 작업을 거부했다. 초현실주의는1924년 아들레브르통이 초현실주의 선언을 통해 운동의 강령을 발표하고 출발한 사조로서 삶의 조건을 개혁하려는 지향과 상상력의 자! 유를 확보함으로써 새로운 문학을 창조하자 하였다. 아방가르드 운동 가운데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초현실주의는 억압된 욕망과 꿈 무의식을 직접적으로 드러내 줄 수 있는 방법으로 자동기술법 등을 창안하기도 하였으며 브르통, 엘뤼아르, 루이 아라공 같은 작가들의 활동에 의해 현대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독일을 중심으로 전개된 표현주의는 문학보다도 미술에서 더 많은 성과를 이룩한 사조로서 자연주의적인 묘사나 인상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도시적인 감수성을 드러내는 개인적인 비전을 강력하게 표현하는 데 힘을 쏟았다 즉 사물을 감각에 지각되는 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정신이 확장되어 형성된 세계를 거두는데 트라클, 고트프리트 벤, 게오르그 하임 같은 운동의 주역들 외에도 모더니즘의 서눅자로 분류되는 뷔흐너, 카프카와 간츤 작가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

 

(2)주지주의 문학

영미의 주지주의 문학을 선도한 흄은 자신의 불연속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문학의 창작에서 지성적 태도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사물의 개성적인 측면을 인지하고 표현하려고 할 때 시인이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여 솔직한 말의 사용은 항상 개성적인 것을 잃어버리게 하므로 그 뜻이 없어지지 않고 명확히 독자의 관심을 끌도록 하기 위해서 새로운 은유와 새로운 성질 형용사 명사등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흄은 사물에 대한 인상의 신선함을 전달하는 이미지를 창조하는 것이 시인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했다. 흄의 이러한 생각에 바탕을 두고 에즈라파운드는 이미지즘 운동을 펼친다. 지성에 의해 파악된 사물에 대한 인식을 전달하기에 적합한 시각적 이미지를 중시하는 이미지즘은 엘리엇에 이르러 모더니즘론으로 발전한다. 엘리엇은 흄과 파운드의 이론을 계승하면서 나름대로 이론을 체계화하였다. 시인은 자기의 개성을 표현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신보다 더 우월한 무엇에 종속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예술의 기능은 인생에 존재하는 질서를 깨닫게 한는 것인데 시인조차! 복잡한 사회의 현상에 매몰되어 있는 현대사회에서 현실의 총체적 구조를 발견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시인의 내면성의 표현만으로는 진실을 확보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시인은 과거의 문학에 대한 역사 의식을 가지고 그 질서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시인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서 자신의 역할을 찾을 것이 아니라 익숙한 정서이건 경험하지 않은 정서이건 그것을 적절히 이용해서 보편적인 정서를 표현하는데 자신의 정신이 원숙한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엘리엇은 이러한 이론적 입장에서 현대 문명을 비판한 황무지를 썼던 것이다 이후 모더니즘은 오든 스트븐 스펜데 루이스 등의 시인에게서 새로운 영미시의 전통을 형성하게 된다.한편 소설 쪽에서는 엘리엇의 황무지와 같은 연대에 발표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비롯하여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와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등이 모더니즘적인 경향을 보여 준다.

 

*학습자료

자동기술법: 무의식적 자동 작용,브르통이 창시한 초현실주의의 시와 회화의 중요한 기법,의식이나 의도가 없이 무의식의 세계를 무의식적 상태로 대할 때 거기서 속구쳐 오르는 이미지를 그대로 기술하는 방법 정신 분석학에서 정신병 환자가 무의식적으로 지껄이는 상태를 자기 자신에게 응용해서 가능한 한 빠른 속도로 지껄이는 독백.입에 오른 사고를 비판이나 수정 없이 그대로 기록하는 것 1919년 브르통과 수뽀의 합작으로 자장이 창작되었다. 이 작품은 초현실주의의 최초의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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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 (postmodernism)

 

 

이 운동은 미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학생운동 ·여성운동 ·흑인민권운동 ·제3세계운동 등의 사회운동과 전위예술, 그리고 해체(Deconstruction) 혹은 후기구조주의 사상으로 시작되었으며, 1970년대 중반 점검과 반성을 거쳐 오늘날에 이른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알기 위해서는 모더니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서구에서 근대 혹은 모던(modern) 시대라고 하면 18세기 계몽주의로부터 시작된 이성중심주의 시대를 일컫는다. 종교나 외적인 힘보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던 계몽사상은 합리적 사고를 중시했으나 지나친 객관성의 주장으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도전받기 시작하였다. 니체,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를 거친 후 포스트모던 시대는 J.데리다, M.푸코, J.라캉, J.리오타르에 이르러 시작된다.

니체와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계몽주의 이후 서구의 합리주의를 되돌아보며 하나의 논리가 서기 위해 어떻게 반대논리를 억압해왔는지 드러낸다. 데리다는 어떻게 말하기가 글쓰기를 억압했고, 이성이 감성을, 백인이 흑인을, 남성이 여성을 억압했는지 이분법을 해체시켜 보여주었다. 푸코는 지식이 권력에 저항해왔다는 계몽주의 이후 발전논리의 허상을 보여주고 지식과 권력은 적이 아니라 동반자라고 말하였다. 둘다 인간에 내재된 본능으로 권력은 위에서의 억압이 아니라 밑으로부터 생겨나는 생산이어서 이성으로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라캉은 데카르트의 합리적 절대자아에 반기를 들고 프로이트를 귀환시켜 주체를 해체한다. 주체는 상상계와 상징계로 되어 있고 그 차이 때문에 이성에는 환상이 개입된다는 것이다. 리오타르 역시 숭엄(the Sublime)이라는 설명할 수 없는 힘으로 합리주의의 도그마를 해체한다. 따라서 철학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의 도그마에 대한 반기였다.

문학에서는 저자가 객관적인 실재를 그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줄거리가 인물을 조정하여 원근법과 같은 효과를 나타내었다. 이런 사실주의는 20세기에 들어서 베르그송의 시간의 철학 ·실존주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등 객관진리, 단 하나의 재현에 대한 회의가 일어나면서 도전받는다. 대상은 보는 자의 주관에 따라 다르다는 전제도 미술에서는 인상주의로부터 시작되어 입체파 등 구상보다 추상으로 옮아가고 문학에서는 저자의 서술 대신 인물의 서술인 독백(‘의식의 흐름’이라고도 함)형식이 나온다.

문학에서는 인물의 독백이 사라지고 다시 저자가 등장하는데 더이상 19세기 사실주의와 같은 절대재현을 못 한다. 작가가 자신의 서술을 되돌아보고 의심하는 자의식적 서술(메타 픽션), 현실과 허구의 경계와해, 인물과 독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열린 소설, 보도가 그대로 허구가 되는 뉴저널리즘, 작가의 권한을 최소화한 미니멀리즘 기법 등이 쓰인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철학적.이론적 논의는 유럽을 중심으로 전개 되었지만 작품활동은 주로 미대륙, 특히 남미대륙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런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처음으로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문예사로라 볼 수 있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은 소설을 중심으로 전개된 문예사조라 볼 수 있는데, 남미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 많이 나온 것도 눈길을 끈다.

중남미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의 선구자는 아르헨티나의 시인이며 소설가인 보르헤스( Borges, Jorge Luis, 1899~)이다. 또한 중남미의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에서 또하나 중요한 작가로 꼽아야 할 작가는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이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백년 동안의 고독]은 1967년 아르헨티나에서 출판되어 많은 사람에게 읽혀오다가 1982년 노벨 문학상을 받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오늘날의 주목할 만한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으로는 이탈리아의 기호학자이기도 한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의 [장미의 이름]과 체코 출심의 작가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의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꼽히고 있다. 한편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 시인으로는 보르헤스와 옥타비오 파스 등이 있지만 대표적인 인물로는 옥타비오 파스가 꼽히고 있다. 그가 훨씬 더 본격적인 포스트모더니스트라는 것이다.


 

다다이즘

 

1916년 일차대전 중에 스위스 취리히에서 몇몇 시인과
화가들이 그들의 전위적 예술에다 붙인 이름으로 세계
대전의 잔인성에 대한 항변으로서 비인간화를 조장하는
부르조아 산업주의와 거기에 동조하거나 방관적인 예술,
특히 사실주의나 자연주의 문학에 반발하여 엉뚱한
방법을 동원하여 그들의 비합리성을 드러내려고 하였다.

1922년에 공식적으로 다다이즘의 사명을 다한 것으로
포고하고 그 추종자들은 대부분 좀더 이론적 근거가
확실한 초현실주의에 흡수되었다.
그들은 비합리성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도록, 전통적인
인쇄물의 방법만을 택하지 않고 몸짓, 육성으로 문확과
예술을 공연하였고 아무렇게나 주워 모은 듯한 사물이나
낱말들을 아무렇게나 연결시켜 완전한 무의미, 비사실적
창작물을 만들었다.

이러한 광태 밑에는 사회의 병폐에 대한 반항과 인간정
신의 자유에 대한 갈구가 숨어 있으며 그 자체로서는
위대한 예술가와 다다이즘

 

 

 

카타르시스


보통 정화작용으로 번역되는 이 낱말은 아리스토탈레스가 <시학> 6장 '연민과 공포를 통하여 비극은 그 감정들의 카타르시스를 초래한다'는 대목에서 한 번만 사용하고 더 설명을 가한 일이 없다. 그러나 비극이. 나아가서는 문학이 독자에게 주는 직접적인 영향을 설명하는 개념으로서는 최고로 적절한 것으로 인정되어 역사적으로 많은 해석이 생겨났다.
아리스토탈레스가 문학의 심리적 효과를 중요한 대목에서 언급한 동기는, 그의 스승 플라톤이 비극은 이성적 생활에 방해가 되는 감정을 억눌러 없애는 대신 조장한다고 비난한 데 대하여 대답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이성적 생활의 혼란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억압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정을 적절히 표현, 배출해야 한다고 그는 믿었던 것이다. 비극이 바로 그런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카타르시스는 단순히 심리적 효과만이 아니고 또한 비극의 고통 저너머에 보이는 듯한 어떤 직관에 순간적으로 도달하게도 한다. 비극이 단지 무섭고 슬프지만 않고 심각하고도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것은 카타르시스가 심리적 효과를 넘어서 인식의 체험까지 마련하기 때문이다.
카타르시스에 대한 역사적 해석을 보면, 르네상스 이론가들은 그것을 주로 교훈주의의 입장에서 해석하여, 불행에 대한 인내의 정신을 길러주는 것이라고도 하고, 또는 세상의 부귀영화가 하루 아침에 무너질 수 있음을 보고 영혼이 구원받아야 할 필요를 절감하게 해주는 것이라고도 했다. 또는 격렬한 열정이 비극의 원이 되는 것을 보고 자기의 열정을 순화, 억제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도 했고, 무서움과 슬픔이라는 불쾌한 감정을 무섭고도 슬픈 사실을 목격함으로써 몰아내는 것이라고도 했다.
낭만주의자들은 그러한 명백한 교훈주의를 배격하고 카타르시를 우주적인 비극의 그 막막함과 숭엄함으로 압도되어 세속적인 공포와 연민을 잊는 것, 인간으로서의 동류의식을 느껴 무조건적으로 비;극에 같이 참여하는 것 등으로 해석했다.
현대의 심리주의 비평가 리처즈는 비극적 공포는 대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고자 하는 감정이고, 연민은 반대로 거기에 가까이 가고자 하는 감정이라고 보고. 비극작품의 구조는 이런 상극하는 감정을 함부로 억누르지 않고 순조럽게 조화시킴으로써 정서적 안정을 준다는 심리적 해석을 내세웠다. 이 점을 강조하면 비극적 카타르시스는 극의 끝장에 가서 관중을 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비극의 과정을 통해서 주인공 자신도 정화되고 관중도 정화를 체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비극은 정화작용에 의하여 안정 상태를 조성하지 않고 오히려 흥분시킨다고도 볼 수 있다. 흥분이란 말 대신 고양시킨다고 해도 좋다. 비극의 웅장함으로 보고 신명이 난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쾌적한 흥분이지 괴로운 흥분은 아니다. 현대 비극은 카타르시스를 조장하지 못하다는 평을 듣는다. 이것은 카타르시스가 불가능한 현대의 상황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도 있고 현대 문학의 병통을 나타내는 것으로도 볼 수 있겠다.

 

하이퍼 리얼리즘

 

 


유럽에서 앙포르멜 추상 이후 누보 레알리슴(신사실주의)이 행해졌듯이, 미국에서는 1960년대 말 팝의 소요가 한 자락 걷힐 무렵부터 팝 작가들이 팝 이미지의 사진을 면밀히 복사한 것처럼 도시 주변의 흔한 이미지나 인물사진을 지독하리만큼 면밀하게 기계처럼 하이퍼 리얼리즘이 한창 대두되고 있다.

카츠(Alex Katz)는 1950년대 말에 기계화된 기법으로 숙고적인 사실을 하고 있었다. <칵텔파티>(1965)는 단순화되었으면서도 사진 복사적인 사실이다. 팝 작가인 멜 라모스(Mel Ramos)와 티에보우드(Wayne Thiebaud)도 광고 이미지를 다소 단순화한 사실적 기법으로 그리고 있었다. 이러한 기운이 하이퍼 리얼리즘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듯하다. 즉 사진이나 광고 이미지를 히드엣즈적인 명쾌한 형태적 구성으로 사실적인 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전통적인 사실주의의 회화에의 복귀가 아니다. 사진 같은 평면적인 명쾌한 사실이 기계 본위로 추구되고 있는 것이다. 카노비츠(Kanovitz)의 <뉴요커>(1966)는 보는 이와 피사물간에 미적거리(asethetic distance)를 두고 야무진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이때의 화가의 역할을 '배우를 적절히 쓰고, 이러한 행동과 극적인 장면들을 적절히 배치하는 역할'과 같이 보고 있다. 피어스타인(Philip Pearstein)은 우직하게 강해 보이고 추해 보이는 누드를 명함을 구사하려면서 강직하게 묘사한다. 비얼(Jack Beal)의 누드는 문양이 호화로운 가구와 악세서리, 타오르는 색채의 피륙 등을 써서 오히려 인물이 상실되게 하고 있다. 모얼리(Malcan Morley)는 아주 평범한 색채 사진을 재생하여 보여주고 있다. 가령 <로텔담의 로텔담>(1966)은 항구에 들어오는 순항선을 사진과 꼭 같이 재생하고 있다. 레슬리(Alfred Leslie)는 강하고 모뉴먼탈한 인물을 확대하듯 위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클로즈(Chuck Close)도 <자화상>(1968)에서 카메라 렌즈 앞에 클로우즈업 된 자신의 얼굴을 복사해서 보여준다. 이때의 이미지는 사람의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카메라 렌즈로 본 기계화한 이미지이다. 드 앙드레아(De Andrea)의 클라크스(John Clen Clarkes)는 초점이 뚜렷이 드리워진 누드를 세밀하게 묘사한다.

현대 문화에 있어서의 기계적 매체를 통하여 들여다본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이러한 하이퍼 리얼리즘은 인간적, 서정적 변모를 표현하던 전통적인 사실에의 복귀가 결코 아니다. 차디찬 제이차의 눈(렌즈)으로 현실의 주변을 가늠해 보는 조회의 과정이다. 요약컨데 하이퍼 리얼리즘은 샘 헌트가 지적하고 있듯이, 하나의 새로운 포스트팝 리얼리즘으로서, 인간성을 탐구하되 주관성을 억제하고 실존하는 사회〔세계〕를 현상학적으로 보고자 하는 새로운 노력의 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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