言/사는이치知

당신이 별입니다

oldhabit 2008. 5. 24. 12:21

당신이 별입니다  
  
 
퇴근 시간 빡빡한 지하철 안,

하루의 피곤에 그 무엇에도 집중하고 싶지 않지만 무료하고 의미 없게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을 때,

다정한 말을 건넬 줄 아는 친구처럼 다가온 책이 있었다.

그것도 내가 미처 느끼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 일상의 의미들을 맑고 통찰력 있는 눈으로 관찰하고 얘기해 주는 속 깊은 친구.

"무화과나무는 꽃을 피우지 않고 열매를 맺는다고 해서 무화과입니다.

그 열매의 향기는 어느 꽃보다도 향기롭고 은은하고 오래가고 멀리 갑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을 뿐이지 실제로는 내부에서 꽃을 피우는 열매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살아가는 일도 무화과나무 같을 때가 있습니다.

분명 자신 안에 꽃이 피어 있는데, 활짝 속이 꽃이 피어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다른 꽃들을 부러워하며 겉으로만 피워내려고 안간힘 쓰고 있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일까요?" -작가 서문 중에서

애니메이션 <마리 이야기> 작가의 글이라고 하면, 누구나 한번쯤 이 책을 다시 펴볼지도 모르겠다.

이미 두 권의 시집과 두 권의 에세이집을 낸 권대웅 작가는 위 서문에서 <당신이 별입니다>의 모든 이야기를 일축하고 있다.

권대웅 작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에 관심을 갖고 침묵 속에서 들으려 하는 특이한 습관을 가진 사람이다.

인간의 심장은 하루 평균 10만 번 뛴다고 합니다.
70세까지 산다고 계산했을 때
한평생 심장은 모두 26억 번을 뛰는 셈입니다.
쉬지도 않고 지치지도 않으며, 이토록 뜨겁고도
열정적인 심장을 가슴속에 품고 산다는 생각을 하면
그야말로 삶이란 가슴 뛰는 일입니다.
기쁨입니다. (중략)

가슴에 손을 대보세요.
그것이 바로 희망입니다.
하루에도 10만 번씩
당신의 마음속에는 희망이 뛰고 있습니다.
가끔씩 혹은 자주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심장은 뛰고 있습니다.

<가슴 뛰는 삶> 중에서

이 시를 읽으면서 과학책이나 백과사전 또는 의학 기사를 읽으며 메모를 하고 있을 것 같은 작가의 모습을 떠올렸다.

가시광선 외에는 어떠한 빛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의 눈, 씨를 터뜨리는 나무의 소리는 너무 작아 들을 수 없고,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는 너무 커서 들을 수 없는 사람의 귀...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듣는 것이 다 인 것처럼 판단하고 배움을 한정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작가는 그 보이지 않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들에게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며, 그들의 삶에서 감동을 느낀다.

세상은 하나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여러 겹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치 투명한 유리 회전문이 돌아가듯이 서로 겹쳐지지도 않고 부딪치지도 않으며 그 공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중략)
바람이 꽃가루 향기를 몰고 와 건너편 나뭇잎을 흔드는 것이 바람과 나무의 사랑 행위라는 것을 안다면,

꽃잎이 지고 씨앗이 맺히는 순간이 꽃에게는 사랑의 최고 절정기라는 것을 안다면,

그리고 꽃이 탄성을 지르며 꽃잎을 떨어뜨리고 씨앗을 맺는 것을 주변 꽃들이 뜨겁게 흥분한 채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이 경이로운 세상, 당신은 이미 그들의 사랑만이 아닌 그들의 표현과 언어까지 들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더불어 다른 공간이 그 무엇도 무심코 놓치고 지나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중략)

<공간을 뛰어넘는 연습> 중에서

우리는 자연에 대해 너무나 단편적인 앎만을 추구하며 살지는 않았는가?

자연을 조금만 오래 관찰하고 생각한다면 삶의 매 순간은 긴장감과 재미, 때로는 감동과 환희가 넘칠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한 편 작품 속에서 작가는 자연을 대할 때, 매우 인간적인 관점으로 자연을 인간에 삶에 맞춘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어쩌면 이것 역시 인간이 가진 상상력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삶 너머의 자연의 삶을 이해한다면 더욱 놀라운 창조주의 세계를 엿볼 수 있지는 않을까?

헤어졌다고 서로가 지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의 모습이, 당신이 했던 말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영원히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잊혀진다는 것은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많이 걸어서 신발이 닳듯이
낙엽이 떨어져 흙이 되듯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듯이
스며들었다는 것입니다.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시간 속으로 세상 속으로
그리고 내 속 어딘가에
당신도 그렇게 이어졌겠지요?
어우러졌겠지요?

<잊혀진다는 것> 전문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집중은 다만 자연에 국한 된 것은 아니다.

잘 안다고 하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인간의 세상 역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이 많을 것이다.

이 책에 아내를 잃은 한 중년 남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딸이 아버지를 찾아와 보니 아버지가 집 마당에 탐스럽게 꽃이 핀 화분을 사다 놓았다고 한다.

딸은 일부러 더 주절주절 예쁘다는 둥, 어머니가 살아계셨으면 좋아하셨을 거라는 둥 말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아버지는 "응, 그래서 샀어. 엄마 보여주려고.

 네 엄마 봄이면 꽃 보고 싶어 했잖아.

세상 떠날 무렵 꽃이 막 피어나기 시작했는데 그걸 못 보고…"라고 말했다.

아내가 살아있을 때는 돈 쓰는 것에 인색해 제대로 꽃 한번 사주지 못하고,

보여주지 못한 것이 미안해서 아내가 떠난 후에 철쭉꽃 화분을 사다놓은 남자.

비록 아내가 떠났지만 그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아내와 24시간 내내 사랑을 나누고 있던 것이다.

우리는 때로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잊혀지는 것에 대해 두려워 할 수 있고,

또 누군가를 잊어간다는 것에 아픔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는 이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 같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을 뿐이지 그 존재는 사라지지 않고 우리의 삶 구석구석에서 묻어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삶은 몇몇 시기를 제외하면 우리는 항상 외로운 것 같다.

그리고 현재는 언제나 벅차고 힘든 것 같다.

그러나 진정으로 강하다는 것은 외로움과 절망을 느끼는 순간에 자신 안에서, 세상의 모든 만물 속에서 끊임없이 대화를 청해오는 분의 음성을 듣고 위로를 받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렇게 믿는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이 순간이 자신의 인생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시간이라고...
마음이 한없이 가난해져있고 가슴으로 많이 울고 있는 누군가에게, 또는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 보자. 당신이 바로 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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