言/간직하나人

[스크랩] 안개시인 기형도

oldhabit 2008. 5. 24.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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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시'에 기재된 기형도 시인의 약력을 소개합니다.

 

기형도(奇亨度: 1960~1989)

연세대 정외과 졸업. 중앙일보 기자 역임.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안개" 당선되어 등단함.

유고시집'잎속의 검은 잎"(1989)이 있음.  

 

참고 클릭 ■☞ 1920년 부터 신춘문예 당선자 명단  

 

그는 연세대 재학중 연세춘추에서 제정 시상하는 '박영준 문학상'과 '윤동주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당시는 주로 민중시, 노동시등 투쟁과 정치적인 詩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기형도 시인은 시류에 젖어들지 않고 자기만의 시세계를 다져나갔다. 

 

기형도 시인은 경기도 옹진군 연평도에서 태어나 다섯 살 (1965년) 때  당시 시흥군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로 이주해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는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래 시 '빈집' '안개' '정거장에서의 충고' 등 도시 배후의  전형적 농촌 모습을 가지고 있던 소하리를 배경으로 삼은 다수의 시를 발표했다. 

 

17년 전인 1989년 시집 출간을 준비하던 도중, 종로의 한 극장 안에서 뇌일혈로 숨진 채 발견됐다. 만 29세의 생일을 엿세 앞둔날이다.

 

그의 시집 ‘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 지성사) 은 90년대 젊은 시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으로 꼽힌다. 등단 5년차의 신참내기 기형도는 시집 한 권 없었다. 

그가 죽기 직전에 시집 출간을 위해 정리해 두었던 원고를 대학 시절 문예반 친구였던 소설가 성석제 원재길 등이 다시 추려서 평론가 김현이 시집 제목을 정했고 해설도 썼다.

기형도 17주기가 되는 올해까지 이 시집은 61쇄 40만부 찍었을 정도로 꾸준히 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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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푸른 저녁

          

                    -기형도-

1
그런 날이면 언제나
이상하기도 하지, 나는
어느새 처음 보는 푸른 저녁을 걷고
있는 것이다, 검고 마른 나무들
아래로 제각기 다른 얼굴들을 한
사람들은 무엇엔가 열중하며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혹은 좁은 낭하를 지나
이상하기도 하지, 가벼운 구름들같이
서로를 통과해가는

나는 그것을 예감이라 부른다, 모든 움직임은 홀연히 정지
하고, 거리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숨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그런 때를 조심해야 한다, 진공 속에서 진자는
곧,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검은 외투를 입은 그 사람들은 다시 저 아래로
태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씩 흔들리는
것은 무방하지 않은가
나는 그것을 본다

모랫더미 위에 몇몇 사내가 앉아 있다, 한 사내가
조심스럽게 얼굴을 쓰다듬어본다
공기는 푸른 유리병, 그러나
어둠이 내리면 곧 투명해질 것이다, 대기는
그 속에 둥글고 빈 통로를 얼마나 무수히 감추고 있는가!
누군가 천천히 속삭인다, 여보게
우리의 생활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
세상은 얼마나 많은 법칙들을 숨기고 있는가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느낌은 구체적으로
언제나 뒤늦게 온다, 아무리 빠른 예감이라도
이미 늦은 것이다 이미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2

가장 짧은 침묵 속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결정들을 한꺼번에 내리는 것일까
나는 까닭 없이 고개를 갸우뚱해본다
둥글게 무릎을 기운 차가운 나무들, 혹은
곧 유리창을 쏟아버릴 것 같은 검은 건물들 사이를 지나
낮은 소리들을 주고받으며
사람들은 걸어오는 것이다
몇몇은 딱딱해 보이는 모자를 썼다
이상하기도 하지, 가벼운 구름들같이
서로를 통과해가는
나는 그것을 습관이라 부른다, 또다시 모든 움직임은 홀연히 정지
하고, 거리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 그러나
안심하라, 감각이여!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검은 외투를 입은 그 사람들은 다시 저 아래로
태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느 투명한 저녁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모든 신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안개

                -기형도 -

 

1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이 읍에 처음 와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軍團은 샛강에서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다.

출근길에 늦은 여공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동안 보행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식구가 되고 멀리 송전탑이 희미한 동체를 드러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 듯이 흘러다닌다.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지나가고,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그러나 아주 드물다. 이곳은 안개의 聖域이기 때문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강 위에 한 겹씩 그의 빠른 옷을 벗어놓는다. 순식간에 공기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찬다. 그 속으로 식물들, 공장들이 빨려 들어가고

서너 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린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했다.

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겨울엔

방죽 위에서 醉客 하나가 얼어 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것이

쓰레기 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안개가 걷히고 굴뚝들은 일제히하늘을 향해 젖은 鋸身을 겨눈다, 상처입은 몇몇 사내들은 험악한 욕설을 해대며 이 폐수의 고장을 떠나갔지만

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났다. 그 누구도 다시 읍으로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2.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한국의산천

한국의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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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펌-

 

출처 : 빈 가슴으로 살 걸 그랬습니다!
글쓴이 : 노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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