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나무
시바타 산키치
대화라는 나무
라고 불리는 큰 나무가 있어
햇빛이 한창인 양지
나무 그늘에서 사람들은
현안 사항을 대화로 푼다고 한다
거기 모인 여러 명의 화자들은
서로 마주 보지 않고
같은 방향을 향해 나란히 앉는다
지나간 시간을 반복해서 새기는
사바나 사람들의 풍습
부족에 전해지는 불문율은
진실만을 보아라
라는 것이다
나무를 똑같이 짊어지는 것으로
그들은
언어의 길을 조종하는 자유를
잡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들보다 적은 어휘
북소리 같은 리듬으로
옳고 그름을 가리는 사람들
언제부턴가 나도
대지에 앉아 기다리는 인간으로서의
신앙을 길러 왔다
풀의 물가에서 침묵이
남자들의 발을 적시고 있다
일어서는 한 마디
주고받는 약속은
손바닥의 과실이 되어 마을에
들고 돌아오는 것이다
나도 언젠가
어디에선가
(바람이 부는 곳이면 좋겠다)
대화하는 나무를 심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무가
전하는 말의 수만큼 잎사귀가 달리면
그 아래서 사랑하는 사람과
단 한 마디만을
계속 속삭이는 것이다
비유
사거리 교차로 앞에서
여자 아이를 태운 자전거가 앞질렀다
그 순간
말이 내 귀를 때렸다
"가만 안 있으면 입이 돌아가도록 세게 때릴 거야"
젊은 어머니에게 매달린
아이의 작은 등이 보였다
신호가 바뀌어
나는 멈춰 섰다
말이 지면에 떨어져
똑똑 튀고 있다
입이 돌아갈 만큼
정말로
여자 아이는 얻어맞을 것인가
아니
집에 도착할 무렵엔 어머니의 화도 가라앉을 것이다
이미 떨리는 뺨은
비유의 손으로 얻어맞았으니까
입이 돌아갈 만큼
시큼한 것을 상상하며
구르는 말을 발가락 끝으로 찼다
세상은 바로 그러한 비유로 가득 차 있다
부젓가락과 같은, 바늘과 같은
오늘은 이제 그만, 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책상을 향해 앉는 일도
말을 적는 일도 할 수 없다고
문
지하실 벽에
집게손가락의 손톱으로
문을 그린다
새끼고양이가 낮잠을 자고 있다
양지 쪽 골목 막다른 곳에
내가 빠져나갈 수 있을 만한 문을 그린다
종달새 둥지가 있는 빈터의
풀숲에 주저앉아
알 형태의
문을 그린다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향해
거꾸로 서서
비행기구름 같은
문을 그린다
당신의 가슴에
열쇠가 없는 문을 그린다
이야기의 마지막 페이지
후기를 지우고
문을 그린다
나가기 위해서가 아니다
세상의 안쪽으로
들어가기 위해
- <나를 조율한다>시바타 산키치,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