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없는 거문고에 새긴 글
- 화담 서경덕-
거문고에 줄이 없는 것은 본체(體)는 놓아두고
작용(用)을 뺀 것이다.
정말로 작용을 뺀 것이 아니라 고요함(靜)에
움직임(動)을 함유하고 있는 것이다.
소리를 통하여 듣는 것은 소리 없음에서
듣는 것만 같지 못하며,
형체를 통하여 즐기는 것은
형체 없음에서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
형체가 없음에서 즐기므로
그 오묘함을 체득하게 되며,
소리 없음에서 그것을 들음으로써
그 미묘함을 체득하게 된다.
밖으로는 있음(有)에서 체득하지만,
안으로는 없음(無)에서 깨닫게 된다.
그 가운데에서 흥취를 얻음을 생각할 때
어찌 줄(絃)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가?
그 줄은 쓰지 않고
그 줄의 줄소리 밖의 가락을 쓴다.
나는 그 본연을 체득하고
소리로써 그것을 즐긴다.
그 소리를 즐긴다지만,
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요,
마음으로 듣는 것이다.
그것이 그대의 지표이거늘
내 어찌 거문고를 귀로 들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