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金正喜)의 산숭해심(山崇海深) 현판 및 탁본
이 현판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복각 현판 글씨로 "산은 높고 물은 깊다."는 의취만큼 그의 높은 정신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서체이다. 김정희(金正喜1786∼1856)는 조선말기의 문신 실학자이며 서화가로, 본관은 경주. 자는 원춘(元春) 호는 추사(秋史), 완당(阮堂), 예당(禮堂) 등 백여 가지에 이른다. 1819년(순조19) 문과에 급제하여 암행어사 예조참의 설서 검교 대교 시강원보덕을 지냈고, 1836년 병조참판 성균관대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그 뒤 1840년부터 9년간 제주도로 유배되었으며, 안동김씨가 득세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정계에 복귀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과천에 은거하면서 학예와 선리(禪理)에 몰두하다가 생을 마쳤다. 그는 금석학 연구에 몰두하였으며, 그의 경학(經學)은 옹방강의 <한송불분론(漢宋不分論)>을 따랐다. 음운학 천문학 지리학 등에도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있었고 예술에서도 재능을 발휘, 시 서 화를 두루 섭렵하였다. 특히 그의 서체는 청나라 고증학을 바탕으로 모든 서체의 장점을 살린 독창적인 추사체를 완성했다. 실학자로 그는 단순한 예술가 학자가 아니라 시대의 전환기를 산 신지식의 기수로서 새로운 학문과 사상을 받아들여 조선왕조 후기의 신문화 전개를 가능하게 한 선각자로 평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