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설> 리쩌허우(이홍구)
중국식 발음으로 리쩌허우를 한국식으로 읽으면 이홍구다. 90년대 번역된 책은 거의 이홍구로 번역되어 있고, 2000년대에 나온 책들은 리저허우다. 나는 리쩌허우의 책을 읽었다. 그의 90년대 저작이다. 그러고보니 중국의 현대철학자를 나는 거의 모른다. 고작 임어당, 풍우란 정도밖에 몰랐다. 그러나 리쩌허우를 알면서 중국철학의 건재함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게 되었다.
이 책의 매력에 빠져 곧, 나는 그의 후속작인 <역사본체론>을 읽고 있다.
이 책에 실린 5편의 논문 모두 인상적이다. 리쩌허우의 무사론을 통해 중국철학과 역사가 통일성있게 꿰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중국철학의 근원을 무(무당)에서 잡는다. 거기에서 사(역사)로 발전하는 과정에 주역과 유가, 법가, 병가, 도가 등이 나옴을 추적한다. 그는 삶의 변화를 놓치지 않는다. 내가 찾고 있던 이론이었다. 나는 내내 무속(샤머니즘)에 관심을 갖고 있는 중이다.
첫 편에서 말하는 '유학 4기'라는 시대구분도 설득력 있다. 흔히 '원시유학-성리학-현대유학'으로 봤는데, 그는 원시유학과 성리학 사이에 동중서를 중심으로 한 한대유학을 복원시킨다. 그러니 원시유학과 성리학 간의 격차가 많이 해소된다. 그 점은 유학의 흐름을 잡는 결정적 혜안이 될 듯 싶다. 그가 말한 한대유학은 음양오행의 우주론으로 유학을 해석하고 현실적으로 적용한 데 의의를 둘 수 있다.
그 외 유가의 변화발전으로서 법가를 바라보는 것도 일리 있다. 그 징검다리가 순자다. 맹자의 성선설과 대비된 성악설을 제사한 순자의 입장차에서 외적 강제인 법치를 요구가 가능해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의 목적은 여전히 유가적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반면 그는 3기 유학인 송명유학을 그다지 높게 평가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주로 심학이라고 해서 내면과 도덕에 너무 치중해 현실을 놓쳤기 때문 아닐까?
더불어 그가 말하는 '자연의 인간화'라는 역사의 추이와 '인간의 자연화'라는 과제는 극단의 세계자본주의 시대의 과제가 될 것이다. 그의 말대로 인간의 역사는 '자연의 인간화'를 통해 동물과 다른 문화와 인식을 만들어 내었다. 하지만 현대가 직면한 혼돈을 바로잡을 수 있는 인간의 자연화의 그림은 아직 정확히 떠오르지 않고 있다. 물론 그라고 해서 뾰족한 대안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의 철학을 통해 서양인이 아닌 중국인 내지 한국인이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지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학설>은 공부하는 사람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 차례 =
들어가는 말
>유학의 4기를 말하다
기원
문제
동화同化
>무사전통을 말하다
무군합일巫君合一
'무'의 특징
무巫에서 史로
덕과 예
인仁과 성誠
도가와 중국문화의 기본 범주
>유가와 법가의 상호작용을 말하다
예와 법의 구별
예와 법의 상호 융합
역사를 거울삼다
>역사의 비극을 말하다
역사와 윤리
자유파와 민수파
도度의 예술
>자연의 인간화를 말하다
유래와 역사
자연의 인간화
인간의 자연화
나오는 말
옮긴이의 말
= 발췌 =
1. 유학 4기를 말하다
강건(剛健), 충력(庶力), 직각(直覺), 정감(情感), 이지논리(理智論理), 도덕본체(道德本體)에 관계없이 응십력, 양수명, 풍우란, 모종삼 등 모든 현대신유가는 생물의 성능과 에너지 그리고 존재를 뛰어넘는 인간의 본원적 존재를 제대로 탐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존재와 활동, 필연과 자연, 도덕과 본체의 진정한 관계를 결코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이러한 문제에서 송명리학만 주목하고 아울러 그것을 주축으로 삼아 유학 전통의 차이를 해설한 ‘3기’설에 대해 비판하고, 중국문화와 유학의 특징에 대한 탐구를 위해서는 마땅히 다시 한 번 선진시대의 원전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중국이 서양과 다른 근본 이유는 아주 오래된 무사(巫史)전통, 즉 원시무술의 직접적인 이성화에 있다고 여러 번 지적해왔다. 중국에서는 본래부터 하늘과 인간, 그리고 본성과 이치는 분리되지 않음을 중시해 천리(天理)와 인간사는 동일한 ‘도’와 ‘리’에 속했다. 따라서 도덕명령은 외부에 존재하는 이성의 명령이 아니며 이익, 고통, 즐거움과 관련된 공리적 경험으로 귀납할 수도 없다. 중국인의 ‘천명’ ‘천도’ ‘천의’는 모두 인간사와 인간의 감정태도(존경, 장중함, 사람다움, 성실함 등)와 관계된다. 이처럼 독립적이고 자족적인 초험(초월) 대상이 결핍되어 있었기 때문에 수준이 매우 높은 ‘무사전통’이 인간의 지위를 확인시켜주었고, “천지와 함께 병립하여 화육(化育)을 도울” 수 있는 데까지 이르게 했다. 성애(agape, 情)와 선험이성(理)으로 구성된 서양의 ‘두 세계’와 달리 중국의 무사전통은 ‘인류학 역사본체론’의 방향으로 발전하는 데 오늘날까지도 가장 적합한 세계관이다. 이것이 바로 유학 4기 학설에서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 ‘자연의 인간화’이다.
눈앞의 가장 중요한 도전은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비롯했다.
무엇 때문일까? 헤겔이 말한 자본주의사회의 산문(散文)시대가 중국에서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전쟁도 없고, 혁명도 없고, 거대 서사도 없는 바로 ‘피비린내도 없는 무료한 생활’ 속에서 사람들이 개인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즐겁지 않은 퇴폐였다.
인생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가? 변화되는 것이 명확하지 않거나 뚜렷하지 않다. 보통 사람들은 두 죽는데 무엇 때문에 사는가? 그래서 넋을 잃고 위기에 처하게 된다. 모든 것은 다 허무하고, 아무것도 없는 것이니 '본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 모두 즐겁게 놀 뿐이다. 즐겁게 노는 것만이 생활의 허무에 저항할 수 있다.
‘텍스트 외에는 다른 것이 없다.’ 단지 개념(能指)만 있을 뿐 대상(所指)은 없다. 실재도, 객관도, 본질도 없다. 그리고 ‘개념’ 또한 권력의 지배 아래 있는 것이지 결코 객관적인 진리가 아니며 더욱이 진정한 확실성도 없다. 이른바 가치가 없다는 것에는 ‘자아’도 포함된다.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자아는 권력-지식의 지배 아래에 있는, 연관되지도 일치하지도 않는 과정과 파편 더미일 뿐이다. 인간(주체)은 죽었고, 죽음은 권력에 지배당하는 텍스트-언어의 네트워크 속에 있으며, 죽음은 모든 것이 이미 규범화되고 제압되고 권력에 의해 좌우되는 기계의 세계 속에 있다. 사람이 언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사람을 말한다. 보잘것없는 개체가 어떻게 강대한 저 소외 세력-매체, 광고, 정부, 체제, 국가, 민족 등에 맞설 수 있는가?
원전유학(原典儒學)(공자,맹자,순자)의 주제는 예악론(禮樂論)이고 기본 범부는 예(禮), 인(仁), 충(忠), 서(恕), 경(敬), 의(義), 성(誠) 등이다. 당시 개인은 여전히 원시 집단 속에서 제대로 분화되지 않았지만 원전유학은 ‘생명은 귀중하고, 하늘은 만물을 낳았고 인간은 (가장) 귀중하다’는중국 인본주의의 토대를 마련했다. 제2기 유학(한나라)의 주제는 천인론(天人論)이고 기본 범주는 음양(陰陽), 오행(五行), 감응(感應), 상류(相(類) 등으로 인간의 외재적인 시야와 생존의 수단을 최대한 개척했다. 그러나 개인은 인간이 만든 이러한 시스템의 닫힌 설계도 안에서 굴복하고 곤경에 처했다. 제3기 유학(송명리학)의 주제는 심성론(心性論)이고 기본 범주는 리(理), 기(氣), 심(心), 성(性), 천리인욕(天理人慾), 도심인심(道心人心) 등으로 인간의 윤리적 본체를 최대한 고양시켰지만 개인을 마음속의 율법이라는 속박과 통제 아래 복종하도록 만들어 인간의 자연성을 소홀히 다루었다. 그렇다면 내가 보기에 제4기 유학의 주제는 ‘인류학 역사본체론’이고 그것의 기본 범주는 자연의 인간과, 인간의 자연화, 침적, 정감, 문화심리구조, 두 가지 도덕, 역사 및 윤리의 이율배반 등이다. 제4기 유학에서 개인은 처음으로 자신을 다양하게 발전시키고 충분하게 실현시키는 자유인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유학 4기 학설은 도구본체(과학기술-사회발전인 ‘외왕’)와 심리본체(문화심리구조인 ‘내성’)를 근간으로 삼아 개체 생존의 독특함을 중시했고, 자유로운 직관(아름다움으로 참됨을 열다), 자유로운 의지(아름다움으로 선함을 쌓다), 자유로운 즐김(자연스러운 개체의 잠재력을 실현한다)을 해석했다. 그리고 다시 새롭게 ‘내성외왕의 이치’를 세워서 정감적인 ‘천지국친사’의 종교적 도덕을 충만하게 하고, 자유주의의 이성 원칙인 사회적 도덕을 본보기로 이끌어내어(규정하는 것이 아니다) ‘실용이성’ ‘낙감문화’ ‘하나의 세계’ ‘도(度)의 예술’이라는 중국의 오래된 전통을 계승했다.
2. 무사전통을 말하다
청컨대, 수(數)가 어디서 나왔는지 묻고자 합니다. 상고(南高)가 말하길, 수의 법(法)은 원과 사각형에서 나왔습니다. 원은 사각형에서 나왔고, 사각형은 곱자에서 나왔습니다. … 사각형은 땅에 속하고 원은 하늘에 속합니다. … 땅을 아는 자는 지혜롭고 하늘을 아는 자는 성스럽습니다. 지혜는 밑변에서 나왔고 밑변은 곱자에서 나왔습니다. <주비산경>
황천(皇天)은 친한 사람이 없어 오로지 덕이 있는 사람을 도와준다 <상서> ‘주서-채중지명’
성은 두 귀가 막힘 없이 뚫려 있는 상태이고 귀에 따른다(聖, 通也, 從耳). <설문해자>
王(왕자가 아님)(巫)자 또한 장인이 갖고 있는 걸음쇠와 곱자(規矩, 수학과 기하학의 도구)와 같은 도구를 지칭하는 것으로 상주(商周) 시대에 샤먼(巫)은 수학자였다. 전설에서 성인이 하도와 낙서를 만들었고 팔괘와 주역을 지었다는 것은 바로 무사(巫師)와 무술 자체가 변화 발전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무술의식이 숫자(筮, 卜, 易)를 통해서 이성화로 나아간 구체적인 역사의 길이다.
무(巫)와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거북점과 시초점은 군왕의 활동, 특히 정치활동과의 연K계와 더욱 두드러졌기 때문에 기록과 보존은 중대한 정치 군사적 사건의 경험을 널리 전파했다. 다시 말해서 불가사의하고 해석하기 어려운 ‘신의 뜻(神意)’과 ‘하늘의 계시(天示)’가 인간(씨족, 부락, 추장의 나라)의 역사와 경험에 스며들고 조합될수록 ‘하늘의 뜻’과 ‘신의 계시’에는 점점 더 많은 이성적 범례와 해설이 붙게 되었다. <주역>의 효사(爻辭)와 괘사(卦辭)에는 많은 역사적 사실이 보존되어 있는데, 그것은 이미 ‘신의 계시’, ‘하늘의 뜻’과 혼연일체가 된 역사적 경험이다. 이것이 바로 ‘무(巫)에서 사(史)로’ 나아가는 이성화 과정의 구체적인 표현이다. 무술의 세계가 변해서 기호(상징)의 세계, 숫자의 세계, 역사적 사건의 세계가 되었다. 복서(卜筮), 수(數), 역(易) 및 예제(禮制) 체계의 출현은 무에서 사로 나아가는 중요한 단계이다.
공자는 인(仁)으로 예(禮)를 해석하여 외재적인 사회 규범을 내재적인 개체의 자각으로 변화시켰다. …… 가장 중요하고 주목할 만한 것은 심리감정의 원칙인데, 그것은 공학유가(孔學儒家)가 그밖의 학설이나 학파와 구별되게 하는 매우 중요한 점이다. <중국고대사상사론>
<노자>와 도가는 매우 복잡하다. 곽점에서 출토된 죽간과 마왕퇴 백서에 근거하면 오늘날의 판본인 <노자>는 끊임없이 보태어지거나 고쳐졌고 시간적으로 수백 년을거쳐온 모음집이다. 비록 그 내용 가운데 서로 어긋난 모순이 적지 않지만 전체적으로는 스스로 체계를 이룬 것이 도가가 되었다.
만약에 <손자병법>이 상고시대 이래의 풍부한 군사적 경험을 개괄하고 총결산했다고 한다면 <노자>는 상고시대 이래의 수천 수만 나라들의 흥망의 역사를 개괄하고 총결산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노자는 일찍이 사관(史官)이 되어 성패와 존망의 이치를 두루 훑어보았다고 하는데 마땅히 근거가 있는 말이다. 상고시대에 성페와 존망은 대부분 군사적 승패와 관련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일찍이 <노자>가 병가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멸망한 나라가 수천 수만이고 부귀와 영화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는 역사적 경험 속에서 깨달음을 느껴야만 비로소 “온갖 금은보화로 집안을 가득 채우지만 그것을 지킬 수가 없고, 부유하고 높은 자리에 있다 하여 교만하면 스스로 허물을 남기는 꼴이다”라는 등의 무정변증법(無情辨證法)의 관념에 도달할 수 있다.
나의 졸저인 <중국고대사상사론>에서는 <노자>를 세 가지 측면에서 나누어 설명했다. 사회적 측면에서는 원시씨족사회의 환상으로 되돌아갔고, 정치적 측면에서는 “흰 것을 알고 검은 것을 지키며”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고 하는 등 전쟁의 경험으로부터 전략과 전술을 끌어올렸다. 철학적인 측면에서는 앞에서 말한 ‘무정변증법’ 외에도 매우 난해하고 신비한 많은 단락을 보존하고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골짜기의 신은 죽지 않으니 이것을 현묘한 암컷이라 한다. 현묘한 암컷의 문이 천지의 근원이 된다. 면면이 이어져오면서 겨우 존재하는 것 같지만 그 작용은 그치지 않는다.”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으니 어슴푸레하다(微),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으니 어렴풋하다(希)고 하며 만지려 해도 만져지지 않으니 두루 뭉실하다(夷)고 한다. …… 끊임없이 이어져 있어 이름 지을 수가 없으니 무물(無物)로 돌아간다.” “없는 듯(惚) 있는 듯(恍)한 그 가운데 형상이 있고, 있는 듯 없는 듯한 그 가운데 사물이 있다.” “어둡고 컴컴한 듯한 가운데 시정이 있으니 그 실정은 매우 참되어서 그 가운데 미더움이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신비한 무술의례의 원시적인 면모를 찬란하게 드러낸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본체와 실재’로 해석되는 것이 바로 <노자>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도(道)’와 ‘무(無)’인데, 그것의 실질적인 근원은 바로 무술예의에 있다. ‘무(無)’는 바로 무(巫)이며 무(舞)이다. 그것은 원시적인 무무(巫舞)에서 나타난 천지신명이다. 샤먼이 춤을 추는 가운데 천지신명이 강림하니 보려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지만 효험은 스스로 드러난다.
무술예의는 유가와 도가뿐 아니라 모든 중국문화의 원천이다. 이미 언급했던 역수(曆數), 방술, 의약, 기예 등을 제외하고도 중국문화의 각 영역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일련의 기본 범주 또한 이와 같다. 다음에서 간략하게 언급한 네 가지 항목이 중국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범주이다.
(1) ‘음양(陰陽)’
나는 음양이 최초에는 무술조작(巫術操作)의 동(動)과 정(靜)이라는 두 가지 기본 태도에서 유래했다고 생각한다. 동정은 구별되고 대립하면서도 또한 서로 의지하고, 연결되고, 보충하고, 서로 도와 일이 잘 되도록 하며 아울러 영원히 변동하여 고정되지 않는 활동 속에 놓여 있다. 이후 숫자로 ‘음양’을 설명하거나 ‘음양’이 점복(占卜)으로 진입한 것 등은 무술예의가 기호 체계로 진화한 이후에 나타난 현상이다.
(2) ‘오행’.
나는 하늘과 인간이 교감하는 피드백 체계로서 ‘오행’은 바로 무술활동에서 보편적으로 따르는 상사율(相似律)이 추상화된 이성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주역>에서 “같은 소리가 서로 반응하고 같은 기운이 서로 요구한다.”라고 말한 것이 점차적으로 “형태가 같은 것은 서로 부른다(同類相召)”는 오행 모델의 사유 방식을 구성했는데, 그것은 논리사유인 유비연상( 類比聯想)의 체계화와 다른 것이다.
(3) ‘기’.
지금까지도 이 말을 영어로 정확하게 번역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몸이면서 마음이고, 사람이면서 하늘이고, 물질이면서 정신이다. 영혼soul, 이성reason, 의지will, 형식form도 아니고 또한 물질matter, 질료material, 경험experience, 공기air도 아니다. 그러나 이 말은 이렇게 양분된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다. 그것은 '천지의 기‘이면서 인간과 관련된 인기(仁氣), 의기(義氣) 등이기도 하다. 요컨대 그것은 이미 자연, 천지와 관련되어 있으면서 또한 인간관계, 인간의 감정과 연계되어 있다. 그것은 이미 윤리에 속하면서 또한 자연에 속한다. 그것의 기본적인 특징은 어디에나 다 있으면서 또한 유동하여 고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릇 사물 속의 정기는 결합하게 되면 생장할 수 있다. 아래(땅)에서는 오곡이 생장하고 위(하늘)에서는 뭇별들이 배열해 있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옮겨 다니는 것을 귀신이라 하는데, 그것을 가슴속에 숨길 수 있는 사람이 성인이다. 따라서 기라고 이름한다. 그것이 어떤 때는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밝고, 어떤 때는 깊은 못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어둡고, 어떤 때는 큰 바다처럼 광활하여 홀연히 자신의 몸에 있는 것 같다.”<관자>‘내업’
그것은 실제로 무술활동에서 느끼고 파악한 것으로 신비하면서도 현실적인 생명의 힘을 이성적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4) ‘도(度)’.
이것이 바로 내가 항상 언급하는 ‘중국변증법’이다.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과 같다’라고 생각한 것이 바로 ‘중용’이다. 그것은 개념을 명확하게 하는 언어의 변론술(예컨대 그리스 철학)이 아니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오히려 파악할 수 있는 실용의 진리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기예의 실천에서 파악하고 깨달은 합리성이다. 이른바 ‘운용의 묘는 (기지와 융통성이 있는) 마음 하나에 달려 있다.’ 그것이 이와 같을 수 있는 까닭은 그 뿌리가 무술활동에서 기원한 아주 어려운 동작이기 때문이다. 단지 이렇게 꼭 들어맞는 아주 어려운 동작을 통해서만 비로소 천지신명과 소통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도(度)의 근본이다.
나는 줄곧 그것이 실천활동에서의 변증법이지 언어나 사유에서의 변증법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3. 유가와 법가의 상호작용을 말한다.
‘내성외왕(內聖外王)’은 유학의 중요한 과제이다.
먼 옛날 씨족의 우두머리는 본래 대무사(大巫師)였다. 그들은 천지신명과 소통하며 신통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늘과 인간을 소통시키고,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고, 병을 치유하도록 돕고,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내려서 씨족의 생존과 발전을 이끌 수 있었다. 이렇게 천명을 듣고(귀), 명령을 내려 시행하는 것(입)이 바로 내성외왕의 본래 의미이다.
상고시대인 하나라와 은나라를 거쳐 주공에 이르기까지 천 년 이상 연습하고 변화하는 가운데 점차 이성화, 인문화된 무사의 ‘내성’ 기능은 정치지도자의 품격과 재능에 대한 규범과 요구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덕’이다. 덕은 본래 자신을 희생해서 천지신명을 받을어 모신다는 의미다. 이후 ‘수신’을 시작으로 하여 지(智), 인(仁), 용(勇) 등 이른바 ‘세 가지 변함 없는 도덕(三達德)’으로 계속 진화되었다. 또한 씨족, 부락, 부족의 우두머리는 자신의 뛰어난 도덕, 재능의 수양을 바탕으로 씨족 성원의 충심어린 추대를 얻어 지도와 지배를 행했다. 원래 무술의 요소인 신통력은 날로 퇴색해갔다. <상서>‘금등’에서 무왕의 병이 낫길 기도한 것처럼 주공에게는 무사巫師가 행하는 일의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숭고한 인품과 덕성, 걸출한 재능과 지혜를 갖추어 ‘예와 음악의 제작’이라는 세속적인 형상을 분명하게 드러낸 점이 중요하다.
적어도 1만 년 전의 기나긴 신석기시대부터 이러한 현상은 계속해서 발전하여 굉장히 잘 갖추어졌으며 아울러 이전부터 무(巫)문화 속에 있었던 ‘내성외왕의 도’를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修齊治平)”로 철저하게 이성화하고 이론화하여 먼 옛날을 계승해서 미래를 열었던 유가의 유일한 법문(法門)이자 최고의 종지(宗旨)가 되었다. 공자가 “자기 자신이 바르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행해지고, 자신이 바르지 않으면 비록 명령을 내리더라도 따르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뿐만 아니라 <대학>에서 말한 ‘3강령 8조목’ 또는 <중용>에서 말한 ‘성(誠)’도 이와 같았다. 공자가 ‘서술하지 창작하지 않았다(述而不作)’라고 말한 것이 바로 여실하게 이러한 씨족지배체제라는 커다란 역사적 배경을 근거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풍속이 변하여 이미 먼 옛날 무사(巫師)의 신비한 신통력은 사라져버렸고 상고시대 우두머리의 도덕적인 성품 또한 다시 지니기가 어려웠으며 ‘내성’이 ‘외왕’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공자 학문의 위대한 전승자인 순자를 포함해서 이들 모두는 다른 형태, 방식과 언어로 복잡하면서도 탄력적이고, 이성적이면서도 감정적인 요소를 띠는 전통적인 예제를 비교적 정연하고 한결같으며 명확하고 간단명료한 것, 즉 형식성이 강한 ‘법’으로 바꾸었다. 순자는 ‘정치와 형벌’을 ‘예와 악’과 함께 논했는데 그의 제자였던 한비(韓非)와 이사(李斯)는 이론이나 실천에서 그것을 구분하여 법가를 집대성했다. 그들은 진시황을 도와 군사적인 정벌을 통해 중국을 통일했고 고도로 중앙집권적이며 강대한 중화전제제국을 세웠으며, 끝내는 먼 옛날부터 상고시대(하(夏), 은(殷), 주(周))에까지 지속되었던 씨족통치인 ‘예치’의 체계와 이별을 고했다.
한나라 시대의 유학이 완성한 ‘유가와 법가의 상호작용’은 오히려 앞에서 말한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원전유학은 아버지와 아들의 감정을 핵심축으로 삼아 사람들 사이의 등급관계와 인성의 적극적인 감정에 대한 양성과 규범을 강조했다. 이러한 정신이 한나라 시대의 정치와 형벌 체제 속으로 받아들여져 이른바 ‘효(孝)로 천하를 다르린다’고 하는 독특한 표지를 구성했다. 본래 대일통(大一統)의 전제 제국에서 신하와 백성들은 황제와 조정에 충성(忠)해야만 했다. 그러나 한나라 시대의 통치자가 가장 크게 비중을 두었던 것은 오히려 ‘효’였다.
본래 중성적인 음양가와 도법가의 천, 도, 음양에 유학의 정감성을 부여했다는 점이 그것의 전환적인 ‘창조’이다. 다시 말해서 정감성이 아주 강한 공자 학문의 주요 범주인 ‘인’을 천, 도, 음양 속에 주입시켜 인정화(人情化)된 우주체계를 개척한 것이 유학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동중서는 다음과 같이 거듭 강조했다.
“인(仁)은 하늘의 마음이다.”
“하늘은 인이다. … 하늘의 뜻을 살펴보니 무한한 인을 포함하고 있다. 사람은 하늘에서 명을 받고 하늘에서 인을 획득하여 인을 표현한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군주와 신화의 관계 역시 오행의 모델 안에 있기 때문에 총과 효의 연계는 우주론에서의 일치성과 본체 관계를 띠고 있다.
‘<춘추>로 소송을 결정한다’는 동중서의 판결은 법의 보편적인 형식으로 ‘효도’를 억지로 추진할 때라도 실제로 친밀한 감정의 토대 위에서 조사하고 평가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드러내었다. 따라서 내재적인 인간의 마음과 실제적인 감정에 근거한 구체적인 추론은 융통성 없이 형식의 원칙(법의 명문 규졍)을 고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합리적이므로 여기에서 요구한 것은 감정(인간의 감정)과 이치(사물의 이치)의 통일이다. 이것이 바로 중국인이 늘 말하는 ‘공평하고 합리적인 것(合情合理)’이거나 ‘이치에 맞는다(合乎情理)’는 것이다.
‘반드시 송사가 없어야 한다’는 유학의 요구는 후대에까지 계속되었다. 예컨대 청나라 시대에도 형제가 재산을놓고 다툰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형제가 송사를 다투자 현관(縣官)은 묻지도 않고 “누가 옳고 그르고 간에 형제들로 하여금 서로를 소리내어 부르게 했다. 이쪽에서 아우야 하고 부르면 저쪽에서 형님 하고 부르게 했다. 오십 번도 되지 않아 저마다 눈물로 옷깃을 적시며 스스로 송사를 그만두기를 원했다.” 판결 문서에서는 “몸 밖의 재산으로 부모 형제간의 지극한 감정을 해칠 수는 없다”고 강조했으니 이러한 것은 모두 혈육의 관계와 형제의 감정으로 인간의 마음을 감화시켜서 소송을 그칠 것을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법’은 마땅히 지니고 있어야 할 보편적인 이성의 가치를 상실하여 감정의 원칙으로 유지되는 윤리관계와 사회질서 아래 종속되었고 실제적인 운용에서 유학의 교화를 시행하는 수단이 될 것을 요구받았다.
유학의 전통에서 이른바 윤상(倫常)의 교화는 장유(長幼), 존비(尊卑), 친소(親疎), 원근(遠近)의 윤리관계와 사회질서라는 현실적인 측면을 거듭 확인한 것 외에도 이러한 관계와 질서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적 정체성, 즉 감정과 이치가 합일된 도덕관념과 도덕감정을 있는 힘을 다해 기르게 했다. 그것은 중국에서 ‘인간 감정’의 핵심요소를 구성했다. 중국의 전통사회는 아버지와 아들, 형과 동생, 가족을 핵심으로 삼았고 이것이 확대 발전하여 가정, 종족, 동성, 동향, 동학, 동성족(同省籍)(청나라 시대 각 성의 회관(會館), 민국 시대 각 성과 현의 동향회(同鄕會)) 관계의 정체성과 감정의 정체성으로 나아갔으며 지금까지도 여전히 미약하게나마 잔존하고 있다. 그러나 공당(公堂)에서 심문을 받는 것보다 가족, 종족, 친척과 친구를 통해 ‘자체적으로 처벌하고’ ‘민간에서 조정하는 것’을 중시하는 것이 중국사회의 전통적인 특징이 되었다.
예는 장차 그렇게 되기 전에 금지하는 것이지만 법은 이미 그렇게 된 뒤에 금지하는 것이다. <대대례기大戴禮記>
호(號) : 고대의 성인이 큰 소리로 천지를 볻받을 것을 외친 것
4. 역사의 비극을 말하다
역사는 비극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는데 사람들은 이러한 점을 거의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나는 이십 년 동안 이러한 점에 주의 깊게 주목했고 반복해서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나는 오히려 기계로 (밭에) 물을 대서 사람의 힘을 줄이는 것에 반대한 장자의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이러한 역사의 비극의 서막으로 삼았다.
‘자공이 말하길, 여기에 기계가 있으면 하루에 백 이랑도 물을 줄 수 있으니 조금만 수고해도 효과가 큽니다. 그대는 그렇게 해보실 생각이 없습니까? 밭일을 하던 노인은 고개를 들어 그를 보고 말했다. 어떻게 하는 거요? 자공이 말하길, 나무에 구멍을 뚫어 기계를 만들고 뒤쪽은 무겁게 앞쪽은 가볍게 합니다. 그러면 흐르듯이 물을 떠내는데 콸콸 넘치도록 빠릅니다. 그 기계 이름을 두레박이라고 하죠. 밭일을 하던 노인은 불끈 낯빛을 붉혔다가 웃으면서 말하길, 나는 내 스승에게서 들었소만 기계를 갖는다면 기계에 의한 일이 반드시 생겨나고 그런 일이 생기면 반드시 기계에 사로잡히는 마음이 생겨나오. 그런 마음이 가슴속에 있으면 곧 순진하고 결백한 것이 없어지게 되고 이것이 없어지면 정신이나 본성의 작용이 불안정하게 되오. 정신과 본성이 불안정한 자에게는 도가 깃들지 않소. 나는 모르는 것이 아니라 부끄러워 쓰지 않을 뿐이라오.’
로크와 루소(‘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하다’)에서 칸트(‘인간이 목적이다’)와 롤스(‘무지의 장막’과 ‘원초의 상태’)에 이르기까지 자유파의 ‘자유의지’라는 개체존재 및 사회계약, 자유선택, 자아결정, 원자 개인 등이 모두 비역사적인 사회관·역사관이라는 점에서 그것의 근본 이론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그것들은 어쩌면 근대에 비로소 존재하게 된 순수한 이론적 가설과 이상이거나 아마도 역사의 특정한 시기에 발생한 구호와 문구일 것이다.
5.자연의 인간화를 말한다
자연의 여러 소리는 가지런하지 않지만 모두 나에게 맞아 새롭지 않은 것이 없구나-왕희지
‘자연의 인간화’와 ‘인간의 자연화’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유학 4기설’의 새로운 의미, 즉 전통유학이나 전체 중화문화의 핵심 명제인 ‘천인합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천인합일’에는 그 본래의 ‘자세한 의미’가 있다. 그 시기는 대체적으로 ‘고대’와 ‘현대’로 나눌 수 있는데, 고대로 말하면 기원, 한나라, 송나라의 3기로 나눌 수 있다.
고대
(1) 나는 ‘천인합일’의 근원이 먼 옛날 무사巫史가 신령과 소통하고 조상을 맞이하는 것에서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이전에 어떤 사람은 “고문에 천(天)이라는 글자는 본래 사람의 형태와 비슷하고, …제(帝)라는 글자는 꽃받침 형태와 비슷해서 마치 조(祖)라는 글자가 생식기를 닮은 것과 똑같이 번성한 생식(生殖)의 의미를 나타낸다”라고 말했다. 조상, 신, 신령, 하늘은 먼 옛날(하·은·주 이전)에 사람, 인간관계, 자손, 사회(씨족, 부락)와 무술(巫術)을 통하여 소통하거나 교류해서 서로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천’과 ‘제’는 모두 인간의 일과 관련된 것이지 경험을 초월하거나 독립적인 어떤 주재자가 아니다. 무술활동에서 기원한 이런 관념은 예의제도의 이성화를 거쳐 이후 몇 천 년 동안 ‘인간의 길(人道)이 바로 하늘의 길(天道)이고, 하늘의 길이 바로 인간의 길’이라는 - 천제(天帝), 귀신, 자연과 인간의 상호제약, 화목공존을 준칙으로 삼은- 중국 종교-철학의 기본 구조를 안정시켰다. 이것이 바로 ‘천인합일’의 진실한 근원이다. 유가와 도가의 기본 범주와 개념들은 이러한 무술예의에서 ‘천인합일’의 원시적 관념을 인문화하고 이성화한 결과다.
(2) 두 번째 단계의 ‘천인합일’은 음양오행을 기본구조로 삼은 한나라 시대의 천인감응의 우주 모델이다. 여기에서도 여전히 ‘하늘의 길이 바로 인간의 길이고 인간의 길이 바로 하늘의 길이었다.’ 동중서의 <춘추번로>와 의약의 성전인 <황제내경>은 모두 ‘하늘’과 ‘인간’의 소통과 일치를 크게 언급했다. 한나라 유학은 “인(仁)은 하늘의 마음이고, 하늘은 인(仁)이다”라고 말했다. 하늘과 인간은 생명, 생존 및 사회제제와 도덕풍습의 측면에서 손발이 맞는 동일한 구조이며 교류하고 감응해서 거대한 피드백 체계를 구성했는데, 이것이 사회와 정치의 측면에서 인간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근본적인 바탕이었다.
한나라 시대의 문화는 천인합일을 관념으로 당시 중국인이 이룬 외부적인 활동에서의 자유의 한계, 즉 세계를 이해하고 자연에 순응하여 자연을 이용하고 자연을 지배하는 데에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그것은 외적인 자연(環境)과 내적인 자연(心身)을 포함하고 있다. 그때부터 이러한 음양오행과 천인감응의 관계는 줄곧 중국의 크고 작은 전통 속에서 세차게 연속되고 있다.
(3) 세 번째 단계의 ‘천인합일’은 송명리학이다.
“만약에 한나라 유학의 ‘천인합일’이 인간의 외적인 행동의 자유를 수립하기 위한 우주 모델이라고 한다면 여기에서 ‘천’은 실질적으로 ‘기(氣) ’이고 자연이며 신체의 언어이다. 그렇다면 송나라 유학의 ‘천인합일’은 내재적인 도덕윤리의 자유를 수립하기 위한 인성사상(人性思想)으로 여기에서의 ‘천’은 주로 ‘리(理)’이고 정신이자 심성이다. 따라서 전자는 우주론, 즉 자연본체론이고 후자는 윤리학, 도덕형이상학이다. 전자의 ‘천인합일’은 현실적인 행동세계에 있으며 ‘낳고 또 낳는 것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 가리키는 것은 이러한 감성세계의 존재, 변화 및 발전(순환)이다. 후자의 ‘천인합일’은 심령의 도덕세계에 있으며 ‘낳고 또 낳는 것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온전한 세계가 만든 심령에 대한 정감적인 긍정이고 실제로는 어떤 주관의식의 투사(投射)인데 이러한 투사를 도덕본체의 높이로 끌어올린 것, 즉 본체로서의 윤리와 우주자연이 서로 통하여 하나로 결합된 것이다.”
추상적인 아름다움과 형식적인 아름다움은 먼 옛날 인류가 노동하고 조직하는 실천활동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러한 활동은 주체적으로 조성한 갖가지 형식구조(도구와 도구를 사용한 활동의 구조, 집단적인 협동조직의 구조 등)와 각종 인과관계 속에 있기 때문에 동물의 활동과 다르며, 동물과 생존경쟁 속에서도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다른 측면에서 이러한 활동을 통해 외재적인 자연계의 잡다함, 변환, 혼란, 무질서가 정리되고 안정되고 정돈됨으로써 자연계의 법칙과 질서가 날로 드러나게 되었으며 인간의 의식(인식)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예컨대 리듬은 바로 생산과 생활 그리고 다양한 대상의 구체적인 형태에서 추출하여 균등화, 동질화시킨 것이기 때문에 질서를 세우는 기본 형식이 되었다. 비례, 균형, 대칭은 인간이 객관세계를 처리(실천)함으로써 이해(인식)된 기본 범주다. 요컨대 여러 가지 형식구조, 각종 비례, 균형, 리듬, 질서, 즉 형식의 법칙과 아름다움은 우선 인간의 노동과 조작 및 기술활동(도구를 사용하고 제조하는 활동)을 통해서 파악되고 발견되고 전개되고 이해된 것이다. 그것은 결코 정신과 관념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인류의 역사적 실천에 의해 형성되고 건립된 감성 속의 구조이자 감성 속의 이성이다. 바로 이러한 과정 속에서 그것들은 비로소 ‘의미 있는 형식’일 수 있다.
인간은 또한 이러한 형식의 구조와 법칙의 발견 및 파악을 통해서 거대한 물질적 힘을 획득했기 때문에 다시는 자연생물계의 단순한 구성원에 머물지 않고 그것의 주제자가 되었다. 인간은 이러한 형식의 구조와 법칙에서 생존과 연속성을 획득했는데, 이것이 바로 인간이 형식의 아름다움에서 획득한 안전감(安全感, 안전하다는 느낌)과 가원감(家園感, 고향의 정서)의 진정한 근원이다.
자연물의 기능(생장, 운동, 발전 등)과 형식(대칭, 조화, 질서 등)은 물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주체적인 활동이 법칙에 부합하는 기능과 형식으로부터 발생한 동일한 구조이자 동일한 형식이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생물 생리적으로 발생한 동일한 형태와 구조이기 때문에 비로소 아름다움의 영역으로 진입한 것이다.
자유(인간의 본질)와 자유의 형식(아름다움의 본질)은 결코 하늘이 준 것이 아니고 또한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어떤 주관적인 상징이 아니라 인류와 개체가 오랫동안 실천을 통해서 스스로 세운 객관적인 힘이자 활동이다. 인류로 말하면 그것은 몇 십만 년에 걸쳐 축적된 것이다. 개체로 말하면 그것 또한 하루아침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다. 아름다움의 본질과 근원으로서 자유의 형식은 바로 이러한 인류가 실천을 통해 획득한 역사적 성과이다.
이러한 ‘형식미’와 ‘형식감’은 구체적이고 구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원시예술의 등장 이전에 나타났다. 이것이 바로 모든 ‘외재적 자연의 인간화’에서 중요한 핵심이다. 왜냐하면 아직도 한창 ‘외재적인 자연의 인간화’의 소프트웨어가 ‘내재적 자연의 인간화’의 소프트웨어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재적 자연의 인간화’의 ‘소프트웨어’는 인류의 내재적인 심리상태를 가리킨다.
인간은 동물에 속하고 동물의 심리와 완전히 일치하는 기본적인 메커니즘과 기능이 있지만 인간은 결국 불완전한 동물이기 때문에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고 사회집단을 조직하는 오랜역사를 거쳐 인간 심리의 메터니즘과 기능이 동물과 다른 특이점을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특이점은 바로 동물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이 이미 하나로 잘 섞여서 혼합된 점에 있다. 즉 동물의 심리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어떤 문화적 성과가 그 안에 침적되었으며, 사회성(문화성·이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또한 개체성(동물성·감성)을 지니고 있다. 나는 그것을 ‘문화심리구조’라고 일컫는다. 이것이 바로 ‘내재적 자연의 인간화’의 ‘소프트웨어’다.
나는 인류의 윤리적 행위의 중요한 형식은 ‘자유의지’이며 그것의 기본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인류는 자신의 개체적인 감성존재와 집단의 사회적인 이성존재가 첨예한 모순과 충돌 속에 위치하고 있을 때 결국 개체는 스스로 자신의 이익, 권력, 행복 및 생존과 생명을 희생해서 어떤 집단(가정, 씨족, 국가, 민족, 계급, 집단, 종교, 문화 등)의 요구, 의무, 명령과 태도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유의지는 개체 스스로 느끼는 의식적인 행동, 행위와 태도임을 알 수 있다. 동물 또한 집단의 생존을 위해서 개체를 희생하는 사례가 있지만 이렇게 스스로 느끼는 ‘의지’가 있을 수가 없다. 또한 자유의지는 언제나 개체 생존의 이익이나 쾌락과 서로 모순되기 때문에 원인과 결과, 이로움과 해로움을 고려하지 않고 이와 같이 행동하는 것이다. 바로 원인과 결과, 이로움과 해로움을 포함한 현상계에 굴복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자유의지’라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동물에게는 이러한 ‘자유의지’가 없다. 여기에서 관건은 인간의 ‘자유의지’에는 본래 숭고한 가치가 있고, 자신과 타인(후대 사람들 포함한)을 양육하는 인류의 문화에는 보편적인 심리형식을 내포하고 있어서 인간이 동물계와 다른 사회적 생존을 획득하게 만들었다는 점에 있다. 이것이 바로 이른바 현상계보다 우선하는 ‘윤리본체’다.
나는 일찍이 <비판>에서 아동교육을 예로 들면서 ‘해서는 안 되는 것’(걸신들린 듯 먹어서는 안 되고, 노는 데만 열중해서는 안 되는 것 등)을 가르치는 것은 개체의 행위에 대한 사회의 윤리적 요구인데 이는 어릴적부터 이성의 자각의식으로 자아를 주재하고, 제압하고, 지배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중국인이 말하는 ‘배워서 사람되기’라고 지적했다. 공자가 ‘자아를 단속해서 예로 돌아간다(克己復禮)’, ‘예에서 우뚝 선다(立於禮)’라고 말한 것에서 오늘날 수많은 중국인이 자녀를 가르치고 타이름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러한 의미를 갖고 있다. 즉 인간human being이란 단순한 생물체가 아니므로 하나의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재적이고 자각적인 이성의 인품과 덕성을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철학적으로 개괄하면 이것은 곧 윤리본체로서의 인성심리를 형상화하여 만드는 것이고, 또한 ‘내재적 자연의 인간화’의 ‘소프트웨어’에서의 ‘자유의지’다. 이러한 자유의지는 하늘의 이치(天理)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人心)에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마음’은 결코 신비한 감화, 선험적 이성 또는 하늘이 부여한 양지(良知)가 아니라 역사(인류에 대해서 말한 것)와 교육(개체에 대해서 말한 것)을 통해 형성된 문화심리의 침적이다.
칸트의 중요한 공헌은 이성이 주재하는 이러한 인간의 윤리행위를 ‘절대명령Categorical Imperative'의 숭고한 언어로 표현한 점과 아울러 그것을 원인과 결과의 현상계를 뛰어넘는 선험적인 보편법칙으로 삼은 데 있다. 따라서 윤리언어에는 신과 같은 명령이 있으므로 억지스럽게 느껴지더라도 반드시 복종해야만 한다. 윤리가 있어서 인간은 두려워하지 않고, 바라는 것도 없고, 변화에 처해도 놀라지 않고, 용감하게 나아가니 “부귀도 그의 마음을 음탕하게 할 수 없고, 빈천도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으며, 위세나 무력도 그의 마음을 굴복시킬 수는 없다.”
칸트가 윤리학을 언급할 때 청중들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왜냐하면 바로 칸트가 이처럼 인간이 인간되는 이유는 위대하고 장엄한 ‘자유의지’에 있다고 매우 정확하게 지적하면서, 이러한 ‘윤리본체’는 개체의 어떤 감성적 행복, 쾌락 및 어떠한 공적과 사업보다도 훨씬 더 위에 있는 것임을 표방했기 때문이다. 오직 우주 자체만이 윤리본체와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내 머리 위에서 별들이 반짝이고 도덕법칙은 내 마음 속에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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