言/오래묵을詩

붙잡아 둘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oldhabit 2010. 6. 16. 18:32

붙잡아 둘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도종환-

 

분명히 사랑한다고 믿었는데

사랑한다고 말한 그 사람도 없고

사랑도 없다.

 

사랑이 어떻게 사라지고 만 것인지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에도

사랑하는 사람은 점점 멀어져 가고

사랑도 빛을 잃어 간다.

 

시간 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은 없으며

낡고 때 묻고 시들지 않는 것은 없다.

 

세월의 달력 한 장을 찢으며

벌써 내가 이런 나이가 되다니,

하고 혼자 중얼거리는 날이 있다.

 

얼핏 스치는 감출 수 없는 주름 하나를 바라보며

거울에서 눈을 돌리는 때가 있다.

 

살면서 가장 잡을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나 자신이었다.

 

붙잡아 두지 못해

속절없이 바라보고 있어야 했던 것,

흘러가고 변해 가는 것을

그저 망연히 바라보고 있어야 했던 것이

바로 나 자신이었음을

늦게 깨닫는 날이 있다.

 

시간도 사랑도 나뭇잎 하나도 어제의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늘 흐르고

쉼 없이 변하고 항상 떠나간다.

 

이 초겨울 아침도,

첫 눈도,

그대 사랑도

붙잡아 둘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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