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신화에 흐르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악곡
엔니오 모리코네와 ‘시네마 천국’ ‘말레나’ ‘언노운 우먼’ 등을 함께해온 이탈리아의 명장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대작 ‘피아니스트의 전설’(The Legend of 1900)은 5년여의 공백 끝에 완성됐다. 끝없는 바다 위를 영원히 순회하는 전설의 피아니스트 역할은 영국의 명배우 팀 로스가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주세페 감독은 그의 연기를 두고 “마치 찰리 채플린을 떠올리게 한다”며 극찬했다. 촬영은 ‘메피스토’의 라요슈 코르타이, 그리고 의상은 페데리코 펠리니의 ‘그리고 배는 항해한다’의 마우리치오 미레노티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일류 스태프는 완벽한 역할 분담을 통해 작품에 기여하고 있었다. 웅장한 세트 또한 거대한 시대의 흐름을 재연해내는 데 제 몫을 다한다.
대서양을 끝없이 왕복하는 호화여객선 버지니아 호의 댄스홀 피아노 위에 버려진 아기의 이름은 ‘1900’이라 지어진다. 여객선 안에서 키워지면서 일평생 단 한번도 배 밖으로 나오지 않고 성장하는 1900은 피아노에 재능을 보이며, 악보를 읽지 않고 승객들의 표정과 행동에 따라 감성에 포커스를 맞춘 연주를 하면서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육지에 대해 궁금해하며 즉흥 연주로 여러 재즈 명인들과의 대결을 펼치는 와중, 어느 아름다운 소녀에 매료돼 이전에 없던 감동적인 음악을 표현해낸다. 1900은 자신이 녹음한 레코드를 그 소녀에게 전하려 하지만 소녀는 사라지고, 수년 후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배에서 내리려는 결심을 한다.
피아니스트가 주인공이며, 게다가 모리코네가 음악을 담당한 터라 작품은 그 무엇보다도 음악에 집중돼 있다. 주세페 감독이 “영화의 모든 것은 모리코네와 음악을 만드는 일로부터 시작됐다”고 밝혔듯, 각본이 완결되기 이전부터 이미 음악은 완성돼 있었다. 8분여에 달하는 웅장한 메인 테마는 모리코네의 공연 초반부에 항상 연주되던 레퍼토리이기도 했다.
1900년대 초반의 재즈와 래그타임을 오가는 서정적인 피아노 반주는 모리코네와 오랜 시간 함께 해온 피아니스트 길다 부타의 연주이다. 이 피아노 곡들은 결국 따로 악보로도 발간됐으며, ‘매직 왈츠’와 ‘플레잉 러브’의 경우 많은 이들이 연주하기도 했다. 음반에는 핑크 플로이드의 로저 워터스가 모리코네의 곡에 가사를 붙이고 에디 벤 헤일런이 기타를 연주한 ‘로스트 보이즈 콜링’을 수록하고 있는데, 통일성이 떨어지는 배치이지만 가사가 있는 노래는 미묘한 여운을 남긴다. 참고로 이탈리아 발매판을 구해보면 더 많은 삽입곡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모리코네는 수백 편의 작품을 해왔지만 정작 이렇게 음악가가 주인공으로 대대적으로 부각되는 ‘음악영화’를 만든 적은 없었다. 이 때문에 엄청난 야심을 토대로 진행됐으리라 생각된다. 이는 곡의 편성에서도 대대적으로 비쳐진다. 결국 1990년대 후반 모리코네 최고의 걸작으로 완결돼,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서 작곡상 부문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룩한다. 하나의 배와 함께 태어나 끝나는 이름 모를 음악가의 슬픈 신화에 흐르는 모리코네의 악곡들은 다양한 감정선에 뜨거운 불을 점화한다.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선율, 그리고 바다 한가운데 사장된 이야기를 담은 비밀의 레코드가 바로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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