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록/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24년 1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작품 전문]
참회록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는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우선 4연 5연을 한 번 봅시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
아 보자." 손바닥만으로 부족하니 발바닥까지 이용해서 닦으려 하고 있습니
다. 사지(四肢)를 동원해서 확실히 닦으려는 모습 속에서 자아(自我)성찰(省
察)을 위한 확실한 노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그 결
과로 다음 연에 깊이 있는 한 마디를 남기고 있습니다. "슬픈 사람의 뒷모양
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이건 자기의 본 모습을 발견한다는 의미이며,
순결성 회복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걸 풀어서 주제문으로 만들어 보면 '자아 성찰을 위해 힘써 노력하면 참
된 자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제를 마냥 외우려 하지 마세요. '참회록'의 주제는 '자아 성찰을 통한 순
결성 추구'인데 그것을 외우면 며칠 지나면 잊어버리고 맙니다. 인간은 망각
의 기능이 발달해 있으니까요. 자, 4연과 5연이 주제연인 걸 안다면 흐름을
잡고 의미만 잡으면 주제는 그저 낚을 수 있습니다. 한 번 낚아보세요. 피라
미 정도가 잉어 정도는 낚시줄에 끌려 올라올 겁니다. 즉, 지문에 나오는 내
용을 보고 궁극적인 작가의 생각을 잡아내도록 노력한다면, 많은 분량의 시
라 할지라도 지문만 보면 작가가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바를 읽을 수 있고
그와 동시에 시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시인 윤동주님의 삶의 태도를 한 번 옅볼까요. 2연과 3연을 살펴보면 '역
시 이 분은 반성의 대가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분에게 만
이십사년 4개월은 평생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1917년에 태어나서 1945년
에 감옥에서 돌아가셨으니 이분은 27년 정도 사신 분이니 여기에 24년 정
도는 평생에 해당되지요. 평생을 압축에서 반성문을 한 줄에 쓸 수 있는 정
도라면 굉장한 실력이지요. 요사이 시를 많이 쓰시는 유명 작가는 시도 압축
해서 두 줄 또는 몇 줄로 줄인답니다. 평생 반성을 많이 하니 그 분야에 전
문가가 되었다고 봅니다. 이 정도로 반성은 끝나지 않습니다. 3연에 보면
미래에도 반성문을 쓰겠답니다. 미래'그 어느 즐거운 날' 즉 광복의 날에도 '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한다.' 고 합니다. 미래에 반성문 쓸 계획까지 세운
분이니 '반성의 대가'라는 칭호를 붙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반성문을 쓰면서도 자아 성찰을 민족사에 대한 참회까지 끌어 올렸으
니 참으로 위대한 시인이라 하겠습니다.
한가지 기억할 것은 윤동주 님이 반성만 하는 시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윤동주 님의 또 다른 시를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마지막 연을 여기 소개하겠습니다.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보면 순결하고 숭고한 희생을, '조용히 흘리겠습니
다.'를 통해서는 희생 각오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이 분은 반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제에 대한 항거와 그에 따른 희생을 각오하는 시인입니다. 그
런 점에서 우리는 이육사와 함께 저항시인이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비록
젊은 나이에 감옥에서 돌아가셨지만 정말 그 정신은 살아서 민족의 횃불로
영원히 타오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