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의 신탄진 강변은 언제나 잔잔하고 평화로웠다.
일 끝내고 씻으로 내려가면 어두워지기 시작한 강변의 숲과 거울처럼 맑은
수면 위로 가끔씩 물고기들이 뛰어오르는 소리와 함께 작은 파문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보곤 했다.. 그럴 때면 물속에 텀벙대며 들어가기가 아까워서 잠시
서 있곤 했다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대위가 헛기침을 하고 나서 노래를 흥얼거리면 나는 좀 가만 있으라고 짜증을
냈다. 땅거미 질 무렵의 아름다운 고즈넉함을 더욱 연장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라, 저놈 나왔네
대위가 중얼거리자 나는 두리번거렸다. 그가 손가락으로 저물어버린 서쪽 하늘을
가리켰다.
저기........ 개밥바라기 보이지?
비어 있는 서쪽 하늘에 지고 있는 초승달 옆에 밝은 별 하나가 떠 있었다.그가 덧붙였다.
잘 나갈 때는 샛별, 저렇게 우리처럼 쏠리고 몰릴 때면 개밥바라기.
나는 어쩐지 쓸쓸하고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황석영소설 '개밥바리기별'중에서
*'개밥바라기별'은 금성의 또 다른 이름이다.
태양계에서 두번째로 가깝게 태양을 공전하는 금성은 새벽 동쪽에 나타날 적에는 "샛별"이라고 부르지만
저녁에 나타날 때에는 '개밥바라기'라 부른다고 한다.
식구들이 밥을 다 먹고 개가 밥을 줬으면 하고 바랄 즈음에 서쪽 하늘에 나타난다 해서 그리 이름이 붙혀진 것이라고 한다.
*저자소개
황석영
1943년 만주 장춘에서 태어나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고교 재학 중 단편 「입석 부근」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한일회담반대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서 유치장에 갇히게 되고 그곳에서 만난 일용직 노동자를 따라 전국의 공사판을 떠돈다. 공사판과 오징어잡이배, 빵공장 등에서 일하며 떠돌다가 승려가 되기 위해 입산, 행자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후 해병대에 입대,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이때의 체험을 담은 단편소설 「탑」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다시 문학으로 돌아온다. 이후 그는 「객지」 「한씨연대기」 「삼포 가는 길」 등을 차례로 발표하면서 한국 리얼리즘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특히 1974년부터 1984년까지 한국일보에 연재한 『장길산』은 지금까지도 한국 민중의 정신사를 탁월한 역사적 상상력으로 풀어낸 대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1989년 방북 후 독일 미국 등지에서 체류했으며 1993년 귀국하여 방북사건으로 5년여를 복역하고 1998년 석방되었다. 이후 장편 『오래된 정원』 『손님』『심청, 연꽃의 길』 『바리데기』 를 발표하며 불꽃 같은 창작열을 보여주고 있다.『무기의 그늘』로 만해문학상을, 『오래된 정원』으로 단재상과 이산문학상을, 『손님』으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중국, 일본, 대만,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 『장길산』 『오래된 정원』 『객지』『무기의 그늘』『한씨연대기』『삼포 가는 길』 등이 번역 출간되었다.
주요 작품으로 『객지』『가객』『삼포 가는 길』『한씨연대기』『무기의 그늘』『장길산』『오래된 정원』『손님』『모랫말 아이들』『심청, 연꽃의 길』『바리데기』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