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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정물, 귤과 매화의 책꽂이
-브람스의'무언가無言歌-
-전략-
겨울이 깊어지면서부터는 음악을 틀어도 격렬한 것보다는 조심스런 소품들을 듣게 된다.
마치 깊은 산에 눈 덮인 소나무에 쌓인 눈들이 떨어질세라 조심하는 듯이,
이즈음 듣는 것이 브람스의 '무언가'다.
'종달새의 노래' '삼포의 송가' '노랫가락처럼 흘러 간다' '다시 너에게 가지 않으리' '사람의 아들들에게 임하는 바는'
'나는 모든 학대를 보았다' 죽음이여, 고퉁스런 죽음이여' '황무지를 건너서' 사랑의 진실' '내 잠은 점점 잦아드네'
'여운' 등등의 제목이 붙어 있지만 가사는 없는 곡이다.
마샤 마이스키의 첼로는 감미롭고 그래서 대중적이지만 그래도 이런 겨울날 저녁에는 좋다.
더 좋은 것은 반주다.
파벨 길릴로프의 피아노는 느리고 거기 언덕을 배경으로 떨어지는 눈발과도 같다.
때로는 짙고 때로는 가늘게 이어진다.
특히 '종달새의 노래' 를 시작하는 그 힘겨우며 꽉 찬 감정의 출발은 눈물겹다.
겨울의 슬쓸함 없이 이 노래만 들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창밖에 눈이 오는 날 나는 이, 제목에 어울리지 않게 쓸쓸한 곡을 틀어놓으려고 잔뜩 벼르고 있다.
백석을 꺼내 읽는다. '멧새 소리'라는 시다.
처마끝에 明太를 말린다
명태는 꽁꽁 얼었다
명태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
門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팔을 베고 누워서 이 서양 음악을 듣고 있지만,
저 서양 음악은 내 마음을 '멧새 소리' 들리는 저 적막한 산골로 안내한다.
춥고 외롭고 쓸슬한, 그러나 저 외로움의 높은 품격을 나는 브람스에게서도 받아 들이고 백석에게서도 받아들인다.
이런저런 이유로 음악에서 국적을 말하는 것은 어딘지 촌스러운 일인 것이다.
책꽂이에서는 '노자'가 유난히 도드라지게 빛니고 있다.
'물긷는 소리'中-장석남산문집-해토출판, 2008.
2008.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