言/젖지않을江

브람스 첼로 소나타1번

oldhabit 2008. 12. 8. 11:48

  음악의 심연에 뜨는 배

  <<브람스 첼로 소나타1번>>

   아노스 슈타거 첼로

   죄르지 세복 피아노

 

 

                            -전략-

 

 얼마 전에 나는 산속에 땅을 한 자리 마련했다.

이백 평 남짓한 땅이니 내가 차지하기엔 과분하고 좀 큰 성싶은 땅이지만 붙어 있는 것이니 할 수 없다.

그곳은 또 너무 깊어서 보통 사람들이 선택하기엔 망설여지는 장소일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아주 좋았다.

나는 늘 세상에 패배한 은둔자의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깊이 숨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곳을 즐겁게 드나들며 나는 별의 운행을 공부하고,

식물들을 공부하고, 그럴 수 있다면 나무를 다루는 공부를 하고, 실컷 자고, 자고 일어나 꽃들을 키우고 싶다.

가난하고 게으른 자가 누릴 수 있는 호사를 보란 듯이 누리고 싶은 것이다.

 

 그곳으로 가려면 한강을 거슬러 올라 양수리를 지나고 다산의 생가를 지나가야 한다.

다산의 고향이 내가 은거하고 깊은 곳(사실 은거라는 걸 이러한 글로 옮기는 것은 이미 은거가 아니다.

차라리 나의 쉼터라고 하자) 근방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마음을 끄는 바가 크다.

그 위대한 학문의 세계와 지혜를 감히 들여다볼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가 밟았을 길과 지형을 내가 이백여 년이 지난 뒤에라도

밟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공부다.

그의 생가를 둘러보면서 그의 멋을 읽던 기억을 되살렸다.

좀 길지만 인용해 보겠다.

 

'중국 명나라의 원광도는 천금의 돈을 주고 배 하나를 사서 배안에다 북과 피리 그리고 관악기와 현악기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오락기구를

갖추어놓고 마음 내키는 대로 놀다가, 비록 이것으로 말미암아 망한다 하여도 후회하지 않겠노라고 했다.

이것은 미친 사람이나 방탕한 자가 할 일이지 나의 뜻은 그렇지 않다.

 

 나는 적은 돈으로 배 하나를 사서 배 안에 고기그물 네댓 개와 낚싯대 한두 개를 갖추어 놓고, 또 솥과 잔과 소반 같은 섭생에 필요한

여러 가지 기구를 준비하여 방 한 칸을 만들어 온돌을 놓고 싶다.

그리고 두 아이들에게 집을 지키게 하고, 늙은 아내와 어린 아이 및 어린 종 한 명을 이끌고 물에 떠다니면서 사는 배로 종산과 초수

사이를 왕래하며서 오늘은 오계의 연못에서 고기를 잡고, 내일은 석호에서 낚시질을 하며, 또 그 다음 날은 문암의 여울에서 고기를 잡는다.

바람을 맞으면 물 위에서 잠을 자고 마치 물결에 떠다니는 오리들 처럼 둥실둥실 떠다니다가, 때때로 짤막한 시가를 지어 스스로 팔자가 사나워 불우해진 정회를 읊고자 한다.

이것이 나의 소원이다.'

 

옛사람 중에 이런 일을 실행에 옮긴 자가 있으니,

은사 장지화가 그런 사람이다.

장지화는 본래 관각학사로서 만년에 물러나와 이렇게 지냈는데,

그는 연파조수라고 자호했다.

나는 그의 풍모를 흠모하여 초상연파조수지가라고 쓰고 이것을 나무에 새겨서 편액을 만들게 하여, 그것을 간직해 온 지 몇 년이 되었다.....

 

 이후 다신은 초산의 농막에서 막 이 배를 지으려고 하였는데 임금의 부름을 받는 바람에 그 편액을 정자에 달아놓고 떠났다고 한다.

그 일에 연연하면서 이 글을 적었다고 한다.

안타까워라, 다산이 그 배를 만들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과 시를 우리는 더욱 많이 가질 수 있었을 것인가.

 

나는 아직 젊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다산이 미치거나 방탕한 사람이라고 제쳐버린 원굉도 같은사람도 적잖이 매력 있어 보인다.

이런 솔직한 예술가야말로 지금 우리 시대, 이 너무 싱거운 시대의 소금과 같은 사람일지 모르겠다.

 나 또한 이러한 사람들의 학문은 꿈꿀 수 없을지언정 그 정조만은 일찍이 흠모해 왔다.

우리 시대에 다산의 꿈을 실현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 대안으로 나는 산골짜기를 선택한 것이고 그 속에서 나는 깊고 아늑한 계곡,

즉 오계에 낚시를 드리우는 대신 저  브람스의 곡에 낚시를

드리울 것이다.

 

야노스 슈타거yanos starker의 첼로와

죄르지 세복Gyorgy sebok의 피아노로 듣는

 "브람스 첼로 소나타1번"은 그대로 깊은 연못이다.

특히 도입부의 명상은 내 인식의 끈을 아무리 깊이 드리워도 끊임없이 감아 들인다.

그 음의 물 위에 배를 띄워서 나는 그 계곡으로 들어간다.

 

 

                          장석남 산문집 '물긷는 소리' 中 해토출판,2008

 

 

                                         2008.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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